경제
경리단길·연남동 수제맥주 캔으로 즐기고 한국판 `기네스`도 가능해져
입력 2020-05-19 16:20  | 수정 2020-05-19 16:29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건대점에서 직원이 `성수동 페일에일` 맥주를 따르는 모습. [사진 제공 =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앞으로 경리단길·연남동 등 이른바 '핫 플레이스'에 자리잡은 소규모 브루어리(맥주양조장)의 수제맥주를 캔 제품으로 만날 수 있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부가 그간 제한했던 주류 제조업체 사이의 위탁제조(OEM)를 올 연말 주세법 개정을 통해 풀기로 했기 때문이다. 맛있는 수제맥주 레시피를 완성하고도 설비 투자비용이 부담스러워 대량 생산을 하지 못했던 업체는 다른 맥주 제조업체 시설을 활용해 생산량을 늘릴 수 있게 된다. 맥주를 캔에 담는 설비를 갖추지 못해 생맥주 형태로만 팔아야 했던 업체들도 포장만 다른 곳에 맡겨 캔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됐다.
한국판 '기네스'가 탄생할 길도 열렸다. 주류 첨가재료에 질소가스를 포함시키는 방안이 추진된다. 질소가스를 활용해 부드러운 목넘김을 살린 일부 외국산 맥주 같은 제품을 내년부터는 국내에서도 개발할 수 있을 전망이다.
19일 기획재정부·국세청은 이같은 내용의 주류 규제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주세법과 주세법 시행령 개정 사항은 세법 개정안이 처리되는 올 연말 정기국회에서 입법을 시도한다. 국세청 고시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은 당장 올 3분기 시행을 추진한다.
기존에는 주류 제조장별로 제조면허를 발급했기 때문에 다른 제조장에 생산을 위탁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주세법 개정을 통해 이같은 규제를 푼다. 주세법 상 제조시설 기준을 갖춰 특정 주류의 제조면허를 받은 사업자에 한해 같은 종류의 주류를 생산하는 업체에게 생산 위탁을 할 수 있다. 수제맥주 업체 카브루 관계자는 "설비 투자 여력이 없는 작은 브루펍이 전국에 100개 이상인데, 이곳들이 중규모 브루어리와 협업해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며 "시장 성장속도에 비해 생산설비가 과하게 투자된 탓에 가동률이 높지 않았던 업체들도 OEM 수주로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류 제조방법을 바꾸는 경우 승인을 받도록 했던 주세법 시행령도 손질한다. 제품의 안정성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선에서 경미하게 제조방법을 바꾸는 경우에 한해 신고만 하면 되도록 바꾼다. 단순히 원료의 배합 비율을 바꾸거나, 알코올 도수를 조정하는 것 등이 해당한다. 막걸리를 만들면서 나온 '술 지게미' 등 부산물을 활용해 양조장에서 빵이나 화장품 등을 생산하는 것도 허용한다. 주세사무처리규정을 손봐 올 3분기부터 적용할 방침이다. 최근 커피업계에서 유행한 '니트로 콜드브루'처럼 질소가스를 맥주 등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주세법 시행령도 손본다. 신제품을 만들 때마다 거쳐야 하는 제조방법 승인 및 주질 감정 절차 소요기간은 절반으로 단축한다. 지금은 두 절차를 순차적으로 진행해 약 30일이 걸리지만, 앞으로는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으로 15일이면 끝나게 할 계획이다.
다만 주류의 통신 판매는 여전히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음식과 함께 배달하는 주류는 음식 가격보다 낮은 선에서만 구입할 수 있도록 못박는다. 예를 들어 '치킨 4만원에 맥주 3만9000원'을 전화 주문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맥주 4만원에 치킨 3만8000원 어치'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국세청은 2017년 7월 '음식에 부수하여 주류를 배달하는 경우'에 한해 전화·스마트폰 앱 주문으로 술을 판매하는 것을 허용한 바 있다.이번 개선 방안은 불분명했던 이 기준을 명확화 하는 선에 그쳤다. '맥주 구독경제' 등 술만 판매하는 경우도 여전히 막혔다.
주류 위탁제조가 가능해지는 것을 두고 업계에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막대한 자본을 등에 업은 해외 대형 맥주회사들이 공격적인 OEM 전략으로 국내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그동안 술을 취급한 적 없는 대기업들이 탄탄한 유통망을 기반으로 OEM 제품 판매에 뛰어드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 경우 현존하는 주류업체 일부는 자사 브랜드를 키우지 못하고 단순한 위탁공장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법령 보‘완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목소리다.
[백상경 기자 / 심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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