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영화 리뷰] 나는 보리 "나는 청각장애인이 되고 싶다"
입력 2020-05-13 17:10 
보리는 매일 아침 `소리를 잃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사진 제공 = 영화사 진진]

"나는 청각장애인이 되고 싶다." 가당치도 않은 말이라고 생각되는가. 그렇다면 '나는 보리'는 당신을 위한 작품이다.
영화는 '소리를 잃고 싶은' 초등학생 보리의 이야기다. 그는 더이상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축제날 가장 큰 폭죽이 터질 때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빈다. 친구가 빌려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최고 볼륨으로 설정해둔 채 음악을 듣는다.
청력을 떨어뜨리고 싶은 마음은 소외감에서 비롯됐다. 엄마, 아빠, 남동생 모두 청각장애인인 집에서 보리 혼자 비청각장애인이다. 자신보다 동생이 부모와 보다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고 느낀다. 그건 절박함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보리의 아빠는 항상 딸과 눈 높이를 맞춘 채 대화한다. [사진 제공 = 영화사 진진]
보리는 입말과 수어 양방향으로 소통하지만 동생에겐 수어밖에 없다. 남매가 구사하는 손짓말에 수준차가 생기는 원인이다. 자신도 부모와 단단하게 묶이고 싶기에 보리는 청력을 짐처럼 여긴다.
작품 속 어른들은 보리의 고민을 치기 어린 투정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그 무게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보리의 시선에서 해결방법을 탐색한다. 실제로 엄마는 보리가 태어났을 때 '청각장애인인 줄 알고 안심했다'고 털어놓는다. 혹시 '우리와 다른' 비장애아이를 낳아서 교육에 애를 먹을까봐 걱정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농인이 아니란 걸 발견했다고 해서 딸에 대한 사랑이 변한 건 아니란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한다. "들리든 안 들리든 우린 똑같아."
장애의 유무는 이 집에서 우열관계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그저 타고난 상태일 뿐이다. 그러나 집 밖 세상에선 장애가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여전히 수두룩하다. 같은 공간에 있는데도 그들이 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벙어리'라고 욕하고 사기 친다.
영화는 좋은 사람을 만드는 데 있어서 핵심은 신체기능이 아니라 마음의 기능이라는 걸 강조한다. 어느날 보리의 엄마가 가게에 옷을 고르러 들어간다. 그가 듣지 못한다는 걸 아는 가게 주인은 실제 값보다 5000원 더 달라고 한다. 가게를 나오며 거스름돈을 세던 엄마는 거스름돈을 2000원쯤 더 받은 것을 알고 보리에게 돌려주고 오라고 한다. 사실은 그걸 돌려주지 않더라도 정가보다 높은 값을 지불한 셈인데도 말이다.
보리의 엄마는 앞으로도 그렇게 손해 보고 살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매번 의심하는 대신 자기 세계의 규칙만 지킨다. 자신이 정가라고 믿는 값을 지불함으로써 언제나 떳떳하다. 원칙을 지키기 위해 거스름돈을 돌려주는 손 앞에 부끄러워지는 건 스스로를 속여가며 정가보다 높은 값을 부른 사람이다.
보리의 부모는 딸과 아들에게 어떤 일이든 재촉하지 않는다. 그저 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함께 시간을 보내줄 뿐이다. [사진 제공 = 영화사 진진]
정적인 작품이다. 주요 인물이 모두 착하다. 관객을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갈등도 없다. 그것은 연출력의 부재가 아니라 연출자가 정확히 겨냥하는 지점이다. 다수 영화에서 장애인이 등장할 때, 그 묘사방식은 지나치게 치우쳐 있었다. 장애인은 너무 슬프거나, 남들보다 무언가를 굉장히 잘하거나, 자신의 장애를 뛰어넘으려는 강인한 의지를 지니고 있다. 그런 시선을 향해 보리의 가족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우린 극복하지 않고 단지 존재하겠다고.
코다(CODA·청각장애인 보호자에게 양육된 사람)인 김진유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을 담았다고 한다. 여러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단은 편견에 도전하면서도 공격적이지 않은 감독의 접근법에 높은 점수를 줬다. 독일 슈링겔국제영화제 2관왕을 비롯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감독조합 감독상 등을 안았다. 영화는 수어에도 입말에도 한글 자막을 달며 110분 간 진행된다. 21일 개봉, 전체 관람가.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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