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K-6 원격사격체계 고장사실 '보고누락'…군, '우발적' 입장 유지
입력 2020-05-13 16:41  | 수정 2020-05-20 17:05

군 당국은 지난 3일 발생한 비무장지대 감시초소(GP)에 대한 북한군 총격은 우발적인 상황이라는 입장을 거듭 피력했습니다.

총격 전후 북한군 GP 근무 상황과 'SI'(감청 등에 의한 특별취급 정보) 등을 종합할 때 북한군 GP에서 우발적으로 총탄이 발사된 정황으로 보인다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합참과 국방부는 사건 직후 육군지상작전사령부 현장 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검증해 이런 입장을 유지한다고 오늘(13일) 밝혔습니다.

다만, 아군 GP에 설치된 K-6(12.7㎜) 기관총의 원격사격체계(RCWS·Remote Controlled Weapon Station)가 고장 나 첫 사격 시간이 17분가량 지체된 것은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첫 대응 사격은 처음 충격음을 청취한 지 32분 만에 이뤄진 것입니다.


고장 사실은 사단장까지 알았고, 합참과 육군지상작전사령부는 다음날 현장 조사 때 인지했습니다. 이번에도 '보고 누락' 허점이 발생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아울러 '9·19 남북군사합의'에 상호 우발적인 충돌을 막는 대책을 취하도록 명시됐는데 이 합의 정신이 이행되지 않은 것도 과제로 남았습니다.


◇ GP 근무자 '안전판' 원격사격체계 고장…합참·지작사, 다음날 파악

합참 설명에 따르면 북한군이 쏜 4발의 총탄에 맞은 GP를 관할하는 GOP(일반전초) 대대장은 지난 3일 오전 7시 56분 대응 사격을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원격사격체계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연대장의 지시로 오전 8시 13분에 K-3(5.56㎜) 기관총으로 첫 조준 사격이 가해졌습니다. 대대장의 대응 사격 지시 후 17분 만에 첫 대응 사격이 이뤄진 것입니다. 고장만 없었으면 17분이 허비되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당시 GP 근무자들은 오전 7시 41분쯤 GP 외벽에서 발생한 섬광과 충격음을 파악했고, 오전 7시 51분 GP 외벽에 총알에 맞은 흔적 3개를 식별했습니다. 첫 조준 사격은 총알에 맞은 흔적 3개를 발견한 지 22분 만이고, 처음 충격음을 청취한 지 32분 만의 대응이었습니다.

합참 관계자는 원격사격체계가 고장 나지 않았다면 "10분 이내 조치가 됐을 것"이라며 "더욱이 (총알이 날아온) 원점이 확인됐더라면 2∼3분 이내로 응사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장 조사단이 K-6 원격사격체계가 고장 난 이유를 규명한 결과, 기관총의 공이(뇌관을 쳐서 폭발토록 하는 쇠막대)가 파열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GP에서 매일 한차례 점검을 해야 하는데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대응 사격 때 아군 근무자들의 피격을 막고자 지휘통제실에서 원격으로 사격하는 장치로, GP 근무자들의 '안전판'과 같은 역할을 하는 장치인데 고장으로 먹통이 된 셈입니다.

합참 관계자는 "현장 점검은 매일 하루에 한 번씩 하는데 노리쇠 후퇴 전진, 격발 점검을 다 하고 있다"면서 "현장 점검만으로는 공이 파손 여부를 식별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실은 정비팀이 올라가서 분해해서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원격사격체계 고장 사실은 사단장까지 보고됐으나 상급 부대에는 보고되지 않아 이번에도 보고체계 누락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사건 다음 날 육군지상작전사령부가 현장 조사를 나가 낮 12시 30분쯤 고장 사실을 인지했고 이때 합참도 알게 됐습니다.


◇ 군, 북한군 우발상황 판단 근거는?…'SI첩보' 결정적인 듯

합참은 이번 총격 사건이 북한군의 우발적인 상황이라는 입장을 거듭 피력했습니다.

군이 두 차례 북한군 동일 GP 2곳에 조준 사격을 했으나, 북한군 대응이 없었고, 그 일대에서 북한군의 일상적인 영농활동이 관측된 것을 배경으로 꼽았습니다.

합참 관계자는 "전투 상황이 벌어지면 근무자가 철모를 써야 하는데 당시 북한군 GP 근무자들이 철모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의도적 도발'이었다면 철모 등 안전대책을 강구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는 "우발적 상황이라는 정황을 입수했지만, 공개할 수 없다"고 말해 'SI첩보'를 통한 판단임을 강하게 시사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사건 직후 북한군이 '총기 관리에 신경 쓰라'는 등의 첩보를 입수했다는 주장도 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북한군이 쏜 4발이 아군 GP 관측실 방탄 창문 하단 벽에 1∼2m의 탄착군을 형성한 것은 의도적 도발이라고 지적합니다.

이에 합참 관계자는 "(남북) 쌍방 GP에서 공용화기를 정확히 조준해 놓고 있기 때문에 우리 GP에서 오발하면 적 GP 벽면을 타격한다"며 "총기 검사를 하는데 (이 때문에) 오발이 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총기 검사할 때 탄약을 빼고 격발되는지 점검을 한다"며 "그런 상황에서 오발이 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국방부 "군사합의 위반"…합의서에 '우발적 상황발생 않게 대책수립' 명시

국방부는 이번 북한군 총격 사건이 '9·19 남북 군사합의'를 위반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군사합의서에 지·해상, 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토록 했고, 우발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취하기로 명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1조 4항은 "쌍방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우발적인 무력충돌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취하기로 했다"고 명시했습니다.

이 조항은 2018년 11월 1일부터 적용됐습니다.

국방부는 사건 당일인 지난 3일 오전 9시 35분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남측 수석대표 명의로 대북 전통문을 보내 북측에 항의하고 사과와 재발 방지 등을 촉구했으나 북측은 아직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대북 전통문을 수령한 북한이 경위 설명과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답신을 보내오는 것이 군사합의 정신에 부합한다는 것이 군 당국의 입장입니다.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의 행위는 9·19 군사합의 위반"이라며 "사건 당일 아침에 바로 대북 전통문을 보내 항의했습니다. 9·19 군사합의 핵심은 이런 DMZ(비무장지대) 우발 충돌을 하지 말자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다만, "우리 입장은 남북 군사합의가 군 당국 간에 실효적으로 준수되고 있는데 남북관계상 북한이 나오지 않고 있어 회담이 지연되는 상황"이라며 "9·19 군사합의가 실효적으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