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고객돈으로 이자놀이 속수무책…中은 인민銀 의무예치
입력 2020-05-05 18:16  | 수정 2020-05-06 17:54
네이버 등 정보기술(IT) 업체들과 '커피은행'으로 불리는 스타벅스가 간편결제를 무기로 고객 현금을 공격적으로 쌓고 있다.
이 같은 고객 현금은 '선불 충전금'으로 불린다. 업체들은 고객이 쌓아놓은 이 돈을 마치 자신들의 '쌈짓돈'인 양 사용할 수 있다. 은행이나 주식에 투자해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 업체들이 고객 돈을 이자 수익과 사업 확장의 자금줄로 활용하더라도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처럼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소비자들이 자신의 돈에 대한 이자는커녕 원금 보장도 받지 못하는 자금 규모가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소비자 불만이 커지고 있다.
국내 간편결제 업체들의 선불 충전금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약 1조7000억원에 이른다. 연이율 1%를 적용해도 167억원, 2%면 334억원의 이자 수익이 가만히 앉아서 생긴다.
업체들은 이 돈을 자체 투자에도 활용할 수 있다. 기존 금융사의 '경쟁자'로 떠오른 스타벅스가 대표적인 예다.

스타벅스는 2013년 모바일 결제 애플리케이션(앱)인 '사이렌오더'를 내놨다. 이 앱에 쌓인 충전금은 지난해 국내에서만 약 800억원, 전 세계적으로 20억달러(약 2조4000억원)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스타벅스는 이 돈을 굴려 수익을 얻는다.
반면 소비자들은 업체에 충전금을 넣어둬도 얻는 이자가 없다.
금융감독당국이 간편결제 업체들이 평균잔액을 기반으로 이자나 포인트를 주는 행위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예금에 대해 확정 이자를 줄 수 있는 기관은 은행과 저축은행, 상호금융 등 금융사뿐이다. 전자금융업자인 이들 간편결제 업체가 고객에게 확정 이자를 주면 유사수신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 당국 판단이다.
충전금을 보호할 방안도 미비하다. 간편결제 업체에 쌓인 충전금은 은행 예금과 달리 예금자 보호 대상이 아니고 회사에 적립금을 쌓아두라고 강제할 수도 없다. 업체가 망하거나 투자에 실패하면 충전해둔 돈도 허공으로 사라진다. 주요 간편결제 업체들은 충전금을 은행 예·적금에 안전하게 보관한다는 입장이지만, 일부 업체들은 충전금을 부동산이나 주식 등에 투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쿠팡은 지난해 8월 말 금융감독원에서 경영 유의 조치를 받았다. 현행 규정상 쿠팡은 미상환잔액 대비 자기자본비율을 20% 이상 유지해야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이마저 감독규정에 불과해 이를 지키지 않아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
소비자 보호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들은 간편결제 서비스를 잇달아 강화했다. 네이버는 사내독립기업(CIC)이었던 네이버페이를 지난해 11월 네이버파이낸셜로 분사했다. 검색 포털 사업으로 다져놓은 폭넓은 고객 기반과 막강한 플랫폼이 경쟁력으로 꼽힌다. 쿠팡도 지난달 1일 간편결제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핀테크 사업부를 별도 회사로 분리한 자회사 '쿠팡페이'를 설립했다. 신세계는 신세계아이앤씨에 있던 '쓱페이(SSG페이)' 사업부를 오는 6월부터 쓱닷컴과 통합한다.
업체들이 간편결제 서비스를 키우는 이유는 이자 수익에 더해 소비자들을 금융 플랫폼에 잡아두는 '록인(Lock-in)' 효과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기존에 사용하던 플랫폼 안에서 머무르려는 경향이 있다.
업체들은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선불 충전금을 확보하고 있다. 네이버페이는 5만원 이상 충전하면 1.5%를 즉시 적립해준다. 쿠팡은 로켓와우클럽에 가입한 뒤 30일간 쿠페이로 결제하면 결제액의 5%를 적립해주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금융당국은 선불 충전금을 은행에 신탁 형태로 맡기거나 간편결제 업체가 지급보증보험에 가입하는 방안 등이 담긴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금융사에 돈을 맡겨 업체가 자금 운용에 개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도 알리페이와 위챗페이 등 간편결제 업체가 충전금으로 이자를 벌어들이자 지난해 '비부금 지급준비율'을 100%로 높였다. 고객이 맡긴 선불 충전금 전액을 인민은행에 맡기도록 한 것이다. 다만 이르면 올 상반기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 나오더라도 법 통과 이후 시행까지는 상당 기간 걸려 '가이드라인'이 우선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새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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