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중국서 철수하라"…트럼프, 中편향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도
입력 2020-05-04 17:46  | 수정 2020-05-05 19:07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판데믹(COVID-19 전세계 대유행) 사태를 두고 중국과 '코로나 발원지 논란'갈등을 벌이고 있는 미국이 자국 기업들을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 철수시키기 위해 강력한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나왔다. 코로나19사태를 계기로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대신 한국과 호주·인도·뉴질랜드·베트남·일본에 무게를 두는 식으로 글로벌 공급망 시스템을 재구성한다는 차원에서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코로나19 사태 책임을 물어 '코로나관세'를 부과할 수도 있다고 연일 발언한 후 나온 것이어서 시장 눈길을 끌고 있다.
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미국 연방 정부가 중국에 직접 진출해있거나 중국에서 위탁생산을 하는 미국 회사들이 중국에서 철수하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국무부와 상무부 등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 유엔 데이터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2010년 처음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제조업 국가가 됐다. 지난 2018년 전세계 상품 중 28%가 중국에서 만들어졌다.
이런 가운데 미국 정부는 기업 유턴 지원책을 다양한 정책 수단 중 하나가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위한 핵심 정책으로서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방 정부 관계자는 "각 부서가 이 정책에 매달려 있으며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면서 "미국 입장에서 핵심 제조업이 무엇이며, 관련 업체들이 중국 밖에서 물건을 생산하게 유도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관해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상무부와 국무부 등은 중국에서 철수하는 제조업 핵심 분야 기업에 대해 법인세제 감면이나 철수 보조금 지원 등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을 검토 중이다.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무역 불균형 문제에서 시작된 미·중 무역 갈등이 코로나판데믹을 계기로 확전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전까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전쟁'을 벌였지만 중국 진출 기업 철수 지원책을 내면 글로벌 공급망 자체가 중국 고립 모드로 바뀌게 되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달 29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은 "미국은 미국과 호주, 인도, 일본, 뉴질랜드, 한국, 베트남이 글로벌 경제를 이끌어가도록 협력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어 3일 익명의 정부 관계자도 로이터 인터뷰에서 "코로나판데믹은 퍼펙트스톰(perfect storm·초대형 악재)이며, 이를 계기로 사람들이 중국과 비즈니스를 한다는 것에 대해 걱정하게 됐다"면서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제외하는 정책 필요성을 언급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작업에는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도 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작업 방향이 중국에 치우친 공급망을 분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프란시스코 산토스 미국 주재 콜롬비아 대사는 지난 달 백악관 국가안전보장이사회(NSC)와 미국 재무부, 상공회의소 관계자들과 만나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이 공급망 일부를 미국 인근으로 옮기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핵심 분야 중 하나로는 의료 산업이 거론 된다. 미국 내에서는 코로나19사태를 계기로 '의료 주권' 문제가 떠오른 상황이다. 일례로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3일 기자 회견을 통해 "보건시스템은 국가 안보 문제이며 미국인의 생명을 살리는 의료 장비를 중국에 의지할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 "코로나19 의료 용품 공급망을 자체 생산하기 위해 동부지역 7개 주 정부가 컨소시엄을 꾸린다는 내용의 공동 협정을 체결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지난 달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이 복제약을 대량 생산하고 있으며 미국이 중국산 복제약을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이 사간다"면서 "미국 내 의약 개발·생산을 정부가 나서서 지원해야한다"는 사설을 내기도 했다.
다만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이 단기에 바뀌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에서 중국 진출 기업 철수 지원책은 중장기 정책으로 꼽힌다. 미국 상공회의소의 존 머피 국제정책담당 수석 부회장은 "일례로 제조업 제약분야에서 미국 업체들은 국내 수요의 70%를 총족하고 있다"면서 "이들이 미국 내 새로운 시설을 지으려면 5~8년이 걸릴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 대안을 찾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정책은 현재로서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당장은 코로나관세가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무역갈등이 한창이던 지난 해 "3700억 여달러 어치 중국산 제품에 대해 추가 관세를 매겨 관세율을 25%로 높일 것"이라고 해왔다. 다만 올해 1월 중국이 미국산 농·축산물 등을 대거 수입하는 등의 대가로 두 나라가 1단계 합의에 서명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일단 1620억달러 어치 중국산 제품에 부과할 예정이었던 관세를 유예하고, 다른 1100억 달러 어치 중국산 제품에 대해서는 기존 관세율을 15%에서 7.5%로 낮추기로 했다. 나머지 다른 2500억 달러어치 중국산 제품에 대한 25% 관세만 유지하기로 한 상태다.
코로나판데믹을 계기로 중국에 대한 국제 사회 시선이 달라지면서 중국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고립될 지 여부는 전세계 관심사다. 최근 중국은 코로나19 발원지 논란을 야기한 후 유럽과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를 향해 의료장비 원조·판매 등 코로나 대응 돕기에 나서는 식으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 중이다. 자오리젠 외무부 대변인은 지난 3월 12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미군이 코로나19를 유포했다"고 주장했지만 3일 폼페이오 장관은 "중국 우한바이러스연구소가 발원지라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고 밝힌 상태다.
코로나 판데믹 사태는 단순히 미·중 갈등을 넘어 국제 사회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 달 30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미국 CNBC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바이러스 발원을 조사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며 이를 지지한다"면서 "중국은 조사 과정에 참여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집행위원회는 EU의 행정부 역할을 하는 곳이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발원지 조사는 전세계 차원에서 중요한 작업"이라면서 "바이러스가 미래에 또 언제 다시 올 지 모르기 때문에 전세계가 지금보다 더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통계 등 차원에서 더 많은 '투명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해온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영국의 도미니크 라브 외무부 장관 등도 코로나판데믹 사태에 대한 중국의 신뢰성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한편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코로나19사태 동안 중국 자본이 인도 기업에 투자할 때 정부 허가를 받도록 규제를 강화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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