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원유ETN, 만기연장때 툭하면 비용 발생…장기투자엔 부적절
입력 2020-05-04 17:39  | 수정 2020-05-04 19:32
국제유가 폭락 이후 국내 투자시장을 가장 뜨겁게 달궜던 상품은 단연 레버리지 원유선물 상장지수증권(ETN)이다. 이름도 생소한 이 상품에 일반 개인들은 '투기'에 가까운 투자행태를 보였다. 곳곳의 경고음에도 '묻지 마 투자'는 멈추지 않았다. 늘 그렇듯 과열·쏠림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 기대와 달리 유가가 계속 급락하자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다. 복잡한 상품구조와 투자 광풍의 배경, 향후 전망과 전문가 조언을 정리해 본다.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간 원유전쟁이 촉발된 지난 3월 이후 두 달간 국내 투자자들은 레버리지 원유선물 ETN을 5541억원어치 순매수했다.
◆ ETF와 비슷하면서 다른 ETN
ETN은 특정 지수를 추종하는 채권이다. 예컨대 WTI 원유선물 ETN은 WTI선물지수에 연동되는 채권으로 원유선물값이 오르면 ETN 가치도 올라 시세차익을 내고 매도하는 식으로 투자가 이뤄진다. 투자자들에게 잘 알려진 상장지수펀드(ETF)와 특정 지수를 따라 움직이는 걸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분명히 다른 상품이다. 먼저 운용주체가 다르다. ETF는 자산운용사가 설정하고 운용한다. ETN은 증권회사가 발행하고 운용한다.
운용방식도 다르다. ETF는 지수수익률을 따라가기 위해 자산운용사가 펀드에 주식, 채권, 선물 등 자산을 실제로 편입한다. 이에 따른 운용수익이 투자자의 수익으로 돌아가는 구조인 한편 ETN은 발행 증권사가 지수를 추종하기 위해 재량적으로 자산을 운용한다. 따라서 ETN은 ETF보다 자율적인 운용이 가능하다.

◆ 레버리지 ETN은 등락폭 2배
증시에서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다 보니 ETN 자체의 가치(적정가격)와 증시에서의 유통가격 간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이 차이를 괴리율이라고 한다. 원유선물값 상승으로 ETN 가치가 올라가더라도 증시에서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지 않아 거래가 뜸하면 적정가격과 유통가격 간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경우 증권사는 자체 보유한 물량으로 수급을 조절해 괴리율을 낮춘다. 유통가격이 너무 높을 땐 보유물량을 시장에 팔고, 반대의 경우엔 시장서 물량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유통가격을 조절한다.
레버리지 원유선물 ETN은 원유선물가격 일별 움직임의 두 배를 추종하는 상품이다. 따라서 유가가 오를 경우 상승폭의 두 배가 수익으로 돌아온다. 떨어질 땐 2배 손해다. 지난 3월 국제유가가 폭락하자 투자자들은 향후 유가가 반등할 것으로 보고 레버리지 원유선물 ETN을 대거 매수했다. 하지만 배럴당 30달러까지 밀렸던 유가는 20달러 선이 붕괴되더니 지난달 20일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 괴리율 이해 못한 개미들 '수두룩'
유가 하락으로 ETN 적정가가 떨어지는 와중에 매수세가 몰리자 유통가격이 급등했다. 신한 레버리지 원유선물 ETN은 지난달 22일 종가 기준 괴리율이 847.8%를 찍었다. 이날 상품 종가는 650원이었지만, 괴리율을 걷어낸 적정가는 68.58원에 불과했다. 지난 3월 8일만 해도 국내 증시에서 거래되는 4개 레버리지 원유선물 ETN의 평균 괴리율은 0.2%였다. 불과 한 달여 사이에 투자 수요가 급증하면서 괴리율이 수천 배 뛴 것이다. 매수세가 워낙 강하다 보니 증권사가 수급을 조절할 물량마저 씨가 말랐다. 부랴부랴 추가 상장을 통해 물량을 풀었지만 상장 즉시 품절되는 경우가 속출했다. 거래소는 단일가매매·거래정지 등 시장조치에 나섰다.
레버리지 원유선물 ETN을 사들인 주체는 개인투자자가 절대 다수다. ETN을 발행하는 증권사 한 관계자는 "현재 지나치게 높은 유통가격은 당연히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하락할 텐데, 상당수 투자자들이 이 같은 상품구조를 모르고 묻지 마 투자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 콘탱고 발생하면 기대수익 '뚝'
레버리지 원유선물 ETN들이 괴리율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는 와중에 '콘탱고'발 비상까지 겹치면서 투자자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익을 낼 가능성이 커졌다. 콘탱고란 선물 근월물보다 원월물 가격이 높은 현상을 말한다. 콘탱고가 나타나면 롤오버 과정에서 선물 1계약당 원월물과 근월물 가격 차이만큼 비용이 발생한다. 롤오버는 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는 근월물 만기가 돌아오기 전에 팔고 차근월물로 갈아타는 것을 말한다. 콘탱고 상황에서 롤오버를 하면 보유한 선물 계약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원유 선물가격이 올라도 ETN 상품가격이 그만큼 오르지 못하고 내려갈 때는 더 깊게 빠지는 괴리가 나타난다.
[홍혜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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