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 녀석들을 어떻게 내 손으로 죽이나요"…코로나탓에 美 닭·돼지 수백만마리 안락사 대란
입력 2020-04-28 15:43  | 수정 2020-04-28 16:58
코로나19사태로 타이슨푸드·JBS· 스미스필드 푸드 등 글로벌 육류 가공업체들이 공장 문을 닫자 미국 내 돼지고기 3분의 1을 공급하는 아이오와 주에서는 수천 마리 돼지들이 대량 살처분 당하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 새끼를 가진 암퇘지들은 낙태 주사를 맞는다. [사진 제공 = 아이오와돈육협회]

"사람들은 '고기 산업'이 얼마나 비정하게 돌아가는 지 모르죠. 내가 키운 아이들을 업체들에 넘겨 돈을 벌지만 막상 제 손으로 생명을 끊을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고 자괴감이 듭니다…." 차마 이름을 말할 수 없다는 미국 아이오와 주 농민이 체념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면 납품할 때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조바심이 들었지만 '농부는 생명을 키우는 일'을 하지 죽이는 일을 하는 건 아니라는 자부심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순간,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는 아이오와 주 경제와 '고기 산업'에 줄줄이 엮인 농장 주인·동물들을 뒤흔들었다. 아이오와 주 정부는 최근 농장 주인들과 함께 수천만 마리 돼지들을 대규모 안락사 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7일(현지시간) 전했다. 텅 빈 도살장이나 사람이 살지 않는 빈 건물에 돼지들을 한 데 모아 살처분하고 새끼 밴 암퇘지들을 낙태시키는 계획이 오갔다.
육류 가공 작업은 기계·자동화에도 불구하고 사람 손이 필요한 노동 집약적 특성이 있다. 미국 최대 육류 가공업체 타이슨푸드는 직원들에게 마스크를 나눠주고 있지만 워싱턴·인디애나·아이오와 주 일대 공장 생산을 무기한 중단하기로 했다. [사진 제공 = 타이슨푸드]
비정한 논의가 오간 이유는 글로벌 육류 가공업체인 타이슨푸드와 JBS, 스미스필드 푸드, 카길 등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이유로 도살장과 정육 공장 폐쇄에 들어가면서 도살작업이 중단되자 농장들이 넘쳐나는 돼지들과 닭, 오리를 수용하지 못하는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들 업체는 4월부로 미국과 캐나다를 아우르는 북미 지역 도살장과 가공 공장 20여곳 운영을 중단했다. 타이슨 푸드의 존 타이슨 회장은 최근 도살장 폐쇄를 이유로 제휴 농장 돼지와 닭·소 수백 만 마리를 안락사하기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이오와 주는 미국에서 소비되는 돼지 3분의 1 공급을 도맡는 미국 최대 돼지 농장지대다. 이 지역에서만 매일 베이컨·햄·소시지 등 가공식품 용도로 돼지 51만 마리가 도살장에서 도축된다. 하지만 도살장이 하나 둘 폐쇄되면서 지금은 작업이 평소의 5분의 1 정도 줄어들면서 매일 10만5000마리 돼지들이 '잉여 돼지' 신세로 전락해 갈 곳을 잃었다고 WSJ는 전했다.
육류 가공 공장 폐쇄 여파로 농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27일 킴 레이놀즈(공화당) 아이오와 주지사는 미국 상원과 연방 정부에 서한을 보내 "트럼프 정부가 가축 살처분과 사체 폐기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달라"는 내용의 지원을 요청했다. [자료 제공 = 아이오와 주 공개 자료]
육류 가공 공장 폐쇄 여파로 농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27일 킴 레이놀즈(공화당) 아이오와 주지사는 미국 상원과 연방 정부에 서한을 보내 "트럼프 정부가 가축 살처분과 사체 폐기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달라"는 내용의 지원을 요청했다. 레이놀즈 주지사는 서한에서 "전국적으로 매 주 돼지 70만 마리가 갈 곳 없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을 수용할 시설이 없기 때문에 그나마 인도적인 차원에서는 안락사를 해야하는 상황"이라고 적었다. 주지사는 먹을 것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돼지 고기를 전달하는 방안도 마련 중이다. 앞서 24일 농무부(USDA)는 국가 분쟁조정셍터를 열고 농민들이 키운 가축을 내다팔거나 살처분할 수 있도록 연방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아이오와 주 상황이 심각하다보니 주지사가 다시 한 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치권에 편지를 쓴 것이다.
주지사가 대량 살처분을 언급한 이유는 돼지 사육 특성 때문이다. 소는 건물 바깥 목초지에 놔둘 수 있지만 돼지는 '상품성'측면에서 살을 찌우기 위해 건물 안에서 온도를 맞춰가며 키운다. 농장이 들여온 새끼 돼지가 일정 몸무게 이상으로 자라면 살 때문에 무릎을 다치는 등 부상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사육 공간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면 '회전율'도 중요하다.
미국 육류 시장에서는 효율성 논리에 따라 분업이 세분화 됐고 각 과정마다 비용에 따른 판단이 이뤄진다. 수지가 안 맞으면 새끼 소나 돼지들이 농장에서 버려질 수 밖에 없다. [사진 제공 = 넷플릭스 `우유 전쟁`]
코로나19 판데믹은 변덕스러운 기후 변화나 미·중 무역전쟁 같은 악재보다 더 '고기 산업'의 가려진 현실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미국 육류 시장에서는 효율성 논리에 따라 분업이 세분화 됐고 '규모의 경제'에 따라 소수 대기업이 유통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농민이 직접 우유나 샐러드, 햄, 소시지 등 가공식품을 만들어 팔 수 없는 구조다. 돼지 같은 경우 '임신-출산-키우기-도살-정육·가공'과정이 전부 나뉘어져 있다.
아이오와 주에서 암퇘지를 키우는 알 반 비크씨는 요즘 새끼 밴 돼지들에 낙태 주사를 놓고 있다. 농장들이 새끼 돼지를 구매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 아이오와 돈육생산협회]
이 때문에 아이오와 주에서 암퇘지를 키우는 알 반 비크씨는 요즘 새끼 밴 돼지들에 낙태 주사를 놓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도살장 등 가공 공장이 폐쇄된 여파로 일반 농장들이 새끼 돼지를 구매하지 않자 반 비크씨는 자괴감에 시달리며 돼지 낙태에 나섰다. 그는 "새끼 돼지가 7500마리가 태어날 텐데 사가는 농장도 없고 이대로 두기에는 수용할 공간이 없고 사료 비용도 감당할 수 없다"면서 "인근 다른 농장들도 같은 처지"라고 말했다.
아이오와 주에서 새끼 돼지 공급 농장을 운영 중인 딘 메이어씨는 "우리 농장을 포함해 인근 농장 9곳이 갓 태어난 새끼 돼지를 죽이고 있다"면서 "최근 1주일 새 태어난 돼지 5%에 해당하는 125마리를 안락사했는데, 자꾸 수가 늘어날 것 같아서 마음의 짐이 크다"고 하소연했다. 메이어씨는 "조그마한 새끼 돼지 사체는 퇴비 비료용으로 쓰는데 새끼 돼지를 낳지 않게 하기 위해 암퇘지와 수퇘지도 죽인다"고 토로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새끼 돼지'를 농장에 대는 도매업체 컨스 앤 어소시에이츠의 일부 공급자들은 새끼 돼지를 농장에 무료 분양도 하고 있다. 새끼 돼지를 공짜로 주면 한 마리에 38달러씩 손해를 보지만 어차피 여력이 안 되기 때문에 손해를 감수해가며 나선 것이다.
미국의 한 닭 농장 풍경. 코로나19 사태가 덮친 가운데 닭 농장 주인들은 효율성의 논리에 따라 닭을 키우지만, 이들을 차마 죽일 수 없어 눈물흘리는 상황이다. [사진 제공 = 넷플릭스 `부패의 맛`(Rotten)]
닭과 오리 같은 가금류도 살처분 비극에서 예외가 아니다. 미네소타 주에서 데이 브레이크 푸드와 계약을 맺고 암탉을 키우는 케리 메르겐·바브 메르겐 부부는 "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4월 초 회사가 암탉 6만1000마리 안락사 용 키트와 이산화탄소 탱크를 보냈을 때 가슴이 미어져내렸다"고 말했다. 위스콘신 주에 본사를 둔 데이 브레이크 푸드는 카길 같은 거대 식품 가공업체나 대형 식당에 달걀을 납품하는 회사다. 1450여 마리 암탉을 소유한 이 회사는 메르겐 부부 같은 농장주들에게 닭을 빌려준 후 달걀을 받아간다. 최근 카길이 식품 가공 공장 생산을 일시 중단하자 데이 브레이크 푸드는 납품 통로가 막혔고, 이 여파로 계약 농장에 안락사를 위한 '가스 주입기 기트'를 전달하며 암탉 살처분을 요청하게 된 것이다.
젖소 농장도 안타까운 현실에 놓였다. 위스콘신 주에서 젖소 농장을 운영 중인 농부 두 명은 로이터통신과 익명을 전제로 인터뷰에서 "우리가 우유를 납품하는 회사가 우리더러 우유를 그냥 버리라고 강요했다. 어떻게 귀한 먹을 것을 버리라고 하는 지 이해할 수 없어 반발하자 최근 살해 위협을 받았다"고 하소연했다.
이런 일은 미국 뿐 아니라 캐나다에서도 일어난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서 돼지가 줄줄이 안락사해 언덕에 버려졌고 퀘벡 주에서는 돼지 9만2000마리가 살처분 운명에 놓였다.
농장 사람들에게는 변덕스러운 기후변화, 미·중 무역 전쟁보다 코로나19 사태가 더 뼈저린 절망으로 다가온다. 농부들이 애지 중지 키운 닭과 돼지의 목숨이 한꺼번에 살처분 당할 정도로 값어치가 떨어진 한편에서 정작 소비자들이 사는 고기와 달걀 값은 폭등하는 현실이 미국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시장 조사업체 닐슨에 따르면 미국 시장에서 4월 13~18일 한 주 동안 달걀 소매가격은 40%가까이 뛰었고, 신선 닭고기 소매 가격은 5.4%, 소고기는 5.8%, 돼지고기는 6.6% 올랐다.
시장에서는 고기 가격 폭등세를 우려하고 있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돼지고기 생산이 평소 때보다 3분의 1로 줄어든 결과 돼지고기 도매가격은 최근 50% 이상 뛰어 100lb(약 45kg)당 77.48달러를 기록했다. 아이오와 주에서 돼지고기 가공 공장을 운영하는 프레스티지팜스의 론 프레스티지 대표는 "이런 상태가 조금만 이어져도 공급 부족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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