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소송 걸리고, 계약 파기하고…전원추락死 사건대응 소홀히한 보잉, 이번엔 `코로나 첩첩산중`
입력 2020-04-26 18:10  | 수정 2020-04-28 19:37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판데믹(COVID-19 대유행)으로 세계 각 국이 하늘 길 봉쇄에 나서자 '세계 최대 항공기 제작업체' 보잉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최근 쿠웨이트 항공기 임대업체에게 소송을 당한 데 이어 이번에는 '중소형 비행기 제작의 강자' 브라질 엠브라에르와 합작 법인을 세우려던 계약마저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보잉은 미국 핵심 제조업체로 꼽히기 때문에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 종목 중 하나이고 국내 에서도 눈길 받는 회사다. 그간 보잉은 자사 737맥스8기종 인도네시아 라이온에어 전원 추락사망 사건(2018년 10월)과 에티오피아 항공기 전원 추락사망사건(2019년 3월)을 겪으면서 유럽 에어버스에게 세계 1위 자리를 내준 데 이어 올해 중국발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연달아 뼈아픈 타격을 입고 있다.
25일(현지시각) 미국 CNBC에 따르면 보잉은 이날 브라질 엠브라에르와의 합작법인 설립 계약 합의에 실패했으며 계약에서 최종적으로 손을 떼기로 했다고 이날 밝혔다. 보잉은 100명 안팎을 태울 수 있는 중소형 항공기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지난 2018년 7월 엠브라에르와 합작법인 설립을 추진했지만 2년 만에 허사로 돌아가게 된 셈이다. 엠브라에르는 미국 보잉, 유럽연합(EU) 에어버스에 이어 캐나다의 봉바르디에와 세계 3~4위를 다투는 항공기 제작사다.
같은 날 엠브라에르 측은 보잉 측 발표에 대해 "이번 결렬은 보잉 재무 상태와 737맥스 기종 결함 문제 등 회사 평판 탓"이라면서 "보잉 측 계약 이행할 의지가 부족했는 바 엠브라에르사 입게 되는 손해에 대한 보상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반발해 법정 다툼이 예상된다. 애초에 두 회사가 합작법인을 세우는 경우 보잉은 합작법인 지분 80%를 가지고, 사업 인수 대금으로 엠브라에르에 42억달러(약 5조 2000억원)을 지불하기로 했었다.
보잉 측의 이번 계약 파기는 최근 악재가 겹친 회사 자금난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앞서 지난 22일 보잉은 쿠웨이트 항공기 임대·금융사 에비에이션리스앤파이낸스(Alafco·알라프코)로부터 3억 3600만 달러(약 4149억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알라프코 측은 보잉에 대해 "기존에 주문한 737맥스 기종 40대 인도를 제때 받지 못했다"면서 보잉 본사가 있는 미국 시카고의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알라프코는 보잉과 항공기 인도 기한으로 설정해둔 지난 3월 6일에 항공기 9대를 인도를 받지 못했고, 항공기 인고를 연기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없었다면서 나머지 주문도 취소했는데 보잉이 이에 대한 취소·환불 절차에 응하지 않자 이에 반발한 상태다.

보잉은 단순히 여객기 뿐 아니라 전투기를 제조하는 방산업체이자 항공우주 분야 선도 기업이다. 보잉은 미국 대표 제조업체로서 뉴욕 증시에서 '우량주 중심' 다우존스 지수를 움직이는 대장주로 꼽혀왔다.
하지만 코로나판데믹까지 겹친 상황에서 보잉은 현금 고갈 위기에 놓여 정부 지원을 요청하는 처지가 됐다. 지난 달 11일 데이비드 캘훈 보잉 최고경영자(CEO)는 직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달 은행에서 대출받기로 한 138억달러 중 남은 금액을 전부 대출 실행할 것이며 당분간 신규 채용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회사 신용등급이나 목표 주가 하향 등 글로벌 시장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나올 경우 대출을 통한 현금 확보가 더 힘들어지기 때문에 미리 받아두겠다는 것이었다. 보잉의 부채규모는 273억달러(약 32조 7000억원)에 이른다.
한 달 후인 지난 10일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보잉의 회사 신용등급을 기존 Baa1에서 Baa2로 한 단계 강등했다. Baa1~Baa3은 '투자 적격' 구간이기는 하지만 무디스는 추가로 부정적인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두 번이나 전원 추락사망 사고를 야기한 737맥스8 기종의 기술적 결함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코로나19사태까지 겹쳐 관광업계가 줄도산 위기에 처하면서 항공기 임대업체와 항공사들의 항공기 제작수요가 급감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무디스는 "올해 보잉은 유동 자금이 지난해의 2배 수준인 3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잉은 주력 제작 모델인 737맥스8기종이 지난 2018~2019년 인도네시아와 에티오피아에서 각각 전원 추락사망 사고를 냈을 때 자사 '자동항법장치 조종특성향상시스템(MCAS)' 오류로 이런 사고가 났을 것이라는 업계 지적에도 불구하고 보잉 직원들이 "멍청한 파일럿들"이라고 오히려 파일럿을 모욕한 것이 미국 연방의회 조사 결과 드러나 세간의 공분을 산 바 있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으면서 본사가 있는 미국을 비롯해 주요국 항공당국이 줄줄이 해당 기종 운항 중단 결정을 했음에도 당시 데니스 뮬렌버그 보잉 CEO는 대대적인 사과는 커녕 '유감'이라는 성명서만 낸 후 대응을 소홀히 해 CNN등 현지 언론의 집중 포화를 받기도 했다.
보잉은 오는 29일에 1분기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다. 보잉은 '베스트셀러'인 787기종 항공기 한달 제작 주문 예상치를 50%로 대폭 줄일 예정이다. 보잉은 기존에 한 달 14대 정도로 제시하던 주문 분량을 10대로 낮췄는데, 이번에는 한 자릿수로 더 낮춰잡을 계획이라고 항공업계 전문매체 심플플라잉이 24일 전했다.
다음 주께 해고 소식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잉이 상업용 항공기 분야를 중심으로 인력 감축에 들어갈 것인 바, 전체 직원의 10% 혹은 1만 6000여명에 대해 (임시)해고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한 바 있다. 보잉은 737맥스 사건 탓에 코로나19가 미국에 본격적인 피해를 끼치기 전부터 사실상 항공기 제작 주문이 끊긴 상태다. 올해 1월 에는항공기 18대 제작 주문을 받았지만, 2월들어 기존 주문마저 줄줄이 취소되며 '마이너스 주문' 상태에 직면했다. 줄도산 위기에 처한 항공사들이 기존 주문 중 총 46건을 무더기 취소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주 정부들이 코로나19대응을 위해 상업활동을 중단시킨 결과, 보잉도 사우스캐롤라이나 공장 등 가동을 일시 중단한 바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1분기 실적 기대감은 크지 않다.
보잉 주가에 대한 글로벌 시장 전문가들의 예상은 제각각이다. 지난 달 12일 JP모건은 보잉사 목표 주가를 기존 주당 370달러에서 43% 이상(160달러) 대폭 깎아내린 210달러로 하향 조정했다. 앞서 지난해 말 JP모건은 보잉 목표 주가를 400달러에서 370달러로 하향 조정했는 데 다시 한 번 낮췄다. 현재 골드만삭스는 보잉 적정 주가를 1주당 189달러로 JP모건보다 낮게 잡고있다. 반면 지난 주 시티그룹은 항공우주업계 경쟁력을 이유로 보잉 목표 주가를 기존 150달러에서 175달러로 올려잡았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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