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공개 피하려…꼼수 부린 이베이·아디다스

아디다스, 디즈니 등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계 대형 법인이 실적 공개를 회피해 공시 사각지대로 도망가고 있다. 감사보고서 미공시회사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높아짐에 따라 정부가 2017년 신외부감사법을 통해 2020년부터 유한회사까지 감사보고서 공시 대상을 확대하자, 일부 외국계 기업들이 회사등기를 유한회사나 주식회사에서 유한책임회사로 변경하는 편법을 동원한 것이다. 국내 벤처기업의 보다 편리한 창업 지원을 위해 만든 유한책임회사제도가 외국계 기업으로 인해 외부감사법을 무력화하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어 논란이 일 전망이다.
26일 대법원 등기소에 따르면 지난해 유한책임회사 설립 신청 건수는 445곳으로, 2012년 제도 도입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2015년 361곳이던 유한책임회사는 외감법 개정을 전후해 급격히 증가하면서 5년 새 5배나 증가했고, 지난해 말 기준 1785곳에 이르렀다.
회계 업계 관계자는 "경영투명성 강화 등을 목적으로 외감법이 개정되면서 2020년부터는 그간 베일에 싸여 있던 소위 '○○코리아' 등 외국계 유한회사도 감사보고서 공시 대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외국계 기업이 공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대형 법무법인에 고문을 의뢰했고, 주식회사나 유한회사에서 유한책임회사로 등기를 바꾸는 꼼수를 동원해 외감법 취지를 무력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한회사와 유한책임회사는 주식회사에 비해 공시 의무나 설립자의 책임 범위 규제 등이 적다. 유한회사제도는 정부가 벤처기업 성장을 위해 설립한 제도다. 특히 유한책임회사제도는 이사 선임과 사원총회 요건 등을 제외하면서 유한회사보다 더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할 수 있도록 2011년 새로 도입됐다. 외감법 개정 과정에서는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의견에 외부 감사나 공시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산업계에 따르면 아디다스코리아,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등 외국계 업체를 비롯해 국내에서 대형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는 이베이코리아(옥션·G마켓),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인수를 추진 중인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요기요), 마이크로소프트5673코리아 등이 유한책임회사로 등록 및 전환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행법상 유한회사로 등록한 회사는 유한책임회사로 바로 전환할 수 없는 점을 고려해 일시적으로 주식회사로 변경한 뒤 다시 유한책임회사로 등기한 점도 의심을 사는 이유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기존 유한회사를 유지해 오다 외감법 개정안 발표를 전후해 주식회사로 전환한 뒤 곧바로 유한책임회사로 바꾼 경우는 공시 의무를 회피하기 위한 설계로 의심할 수 있다"며 "다만 현행법상 유한책임회사로 변경한 이상 내년도부터 진행될 2020년 실적 및 감사보고서 공시를 강제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는 주식회사에서 2016년 10월 유한책임회사로 등기변경하면서 2017년 사업분부터 감사보고서 공시를 피해오고 있다. 아디다스코리아는 2017년 3월 유한책임회사로 등기변경했다. 이베이코리아와 딜리버리히어로는 2020년 사업연도 시작 직전인 지난해 12월 말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하면서 올해부터 공시 대상에서 제외됐다. 산업계에서는 외국계 회사가 제도를 악용해 국내 기업보다 공시 부담을 줄이고 기업 투명성을 저하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공시 대상에서 제외되면 국내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대규모 배당 등을 통해 반출해 나가도 알 길이 없다. 또 이런 비밀주의를 통해 탈세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대형 외국계 기업은 매출이나 영업이익 등 대표 실적만 스스로 공개할 뿐 상세 재무제표나 감사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으면서 원가 구조를 비밀에 부쳐 왔다"며 "영업비밀이라고 외부에 얘기하지만 국내에서 해외 대비 터무니없는 원가나 높은 이익을 숨기기 위해 공개를 꺼린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외감법 개정을 주도했던 금융위원회는 일단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법 개정 취지와 달리 많은 기업이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해 제도를 악용할 경우 새로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진영태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