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레이더P] 통합당 보좌진 `대량 실직 위기`…"열린우리당 때 같지 않다"
입력 2020-04-25 08:40  | 수정 2020-05-02 09:07

4·15총선에서 참패한 미래통합당 보좌진들이 '대량 실직 위기'에 직면했다. 당 전략과 정책의 첨병인 보좌진들이 소속의원 상당수가 낙선을 한데 따른 충격파를 그대로 맞고 있어서다. 총선이 끝나면 보좌진들 간의 '두 번째 총선'이 벌어진다는 얘기가 단골손님이긴 하지만, 지금 상황은 이전과 사뭇 다르다. 과거 패스트트랙(우선처리안건) 지정 국면에서 여야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진 탓에 진영을 넘어 옮겨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뿐 더러, 직전 총선의 국민의당 같은 '제 3지대'도 사실상 없는 상태다. 새로 등원하는 초선의원(지역구+미래한국당 비례대표)이 많다는 점도 기존 보좌진들이 새 둥지를 트는 것이 어려워지는 요인 중 하나다.
국회의원수당 등에 관한 법률 9조(보좌직원)는 보좌진을 별정직 공무원으로 정한다. 국회의원은 4급에 해당하는 보좌관 2명, 여기에 5급 보좌관과 비서와 인턴을 합해 총 9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다. 이들은 '공무원'이라는 직함이 붙어있지만, 사실상 국회의원이 고용에 전권을 쥐기 때문에 안정적 고용유지가 어려운 상황이다.
25일 국회에 따르면, 통합당이 미증유의 패배를 경험한데다 대대적인 물갈이로 현역 생환 비율이 낮은 이번 선거 결과로 통합당 보좌진 취업난이 상당히 심각하다. 통합당의 경우 의석수만 놓고 보면 20대 국회 마지막 112석에서 103명으로 9명이 줄었고, 현역의원의 생환은 34명에 불과하다. 미래한국당에서 당선된 유일한 현역 정운천 의원을 포함해도 35명이다. 총 77개 의원실 693명가량 보좌진의 인사이동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21대 국회 임시개시를 한 달여 앞두고 보좌진의 '대이동'은 이미 시작했다. 미래한국당에서 비례대표 5번으로 당선된 조수진 당선인은 "하루에도 30건 이상의 보좌진 채용 추천을 받는다"며 "이들을 살펴보는 작업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의원실 관계자 역시 "이미 두세 군데에서 연락 받은 사람도 있는데, 4월 말에는 면접 작업도 분주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통합당 출신 보좌진의 재취업은 유례없이 어려울 것이라고 보좌진들은 입을 모은다. '이념으로 갈라진 보좌진'문제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낙선한 통합당 현역 의원실의 한 비서관은 "통합당에서 민주당 쪽으로 (보좌진이) 이동하는 것은 지금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20대 국회 이전에는 수가 많지 않아도 이적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20대 국회 들어서면서 이념적 차이로 서로가 서로한테 우호적이지 않다"고 덧붙였다. 심지어 "통합당 사람이 민주당으로 가면 '악이 선으로 넘어왔다'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며 "굳이 저쪽 사람을 쓸 필요가 있느냐"는 기류도 전했다. 그러면서 "비서급(6급 이하)의 경우 이동이 있을 수 있지만, 비서관급 이상이라면 사실상 이동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이번 선거에서 당선한 의원실 관계자 역시 "지난해 동물국회를 겪으면서 보좌진들 사이에서도 적대적 분위기가 생겨났다"며 "새로 입성하는 민주당 의원실 역시 통합당 출신들을 받지는 않으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패스트트랙 사태에서 양당이 대대적으로 충돌하고 의원들을 대신해 양당 보좌진들이 물리적 충돌을 빚으면서 상호 배척의 기류가 더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지역구에 새로이 도전하는 후보들을 도운 뒤 새둥지를 틀려고 했던 보좌진들의 '열정 페이'식 사례도 있다. 불출마를 선언한 20대 의원실의 한 보좌진은 신인 후보의 지방 지역구까지 내려가 당선에 공헌한 뒤 이력서를 냈지만, 취직에 실패했다고 한다. 그는 "캠프 운영을 도맡다시피 해 당선에 기여했지만, '이전부터 가까웠던 인사를 먼저 채용한다'는 식의 대답이 돌아왔다"고 토로했다.
비례대표 당선자들이 기존 보좌진 승계를 당연시하지 않는다는 점도 취업난을 더욱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과거에는 비례대표 후보자들이 각각의 직군을 대표하는 만큼 현역 시절의 보좌진을 같은 직군의 당선자에게 승계하는 문화가 강했다. 또 당 지지율을 토대로 당선됐기에 보좌진을 '당의 자산'으로 여겨 물려주는 분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21대 국회에 입성하는 비례대표 당선자들 목소리는 다르다. 보좌진 승계보다는 새 정치를 위해 새로운 사람과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인사가 많다. 미래한국당 최승재 당선자는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의원실 보좌관 승계에 대해 "추천을 받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최 당선자는 "국회의원은 감독같은 자리라고 생각한다"며 "각 포지션에 맞는 전문가를 포진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지성호 당선자 역시 "현역 의원 보좌진 반, 탈북 사회에서 일한 분들 반반 정도 구성할 생각"이라며 승계로만 보좌진을 구성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물론 이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진 보좌진도 있다. 20대 비례대표 의원의 한 보좌관은 "능력이 있는 인사들은 이미 당선이 확실시된 비례대표 후보자들이 모셔간 사례도 많다"며 "오히려 비례대표 후보자들이 선거운동기간 지역구 후보 화력지원보다는 자기 보좌진을 꾸리는 데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보통 새로운 의원실을 찾지 못하면 차선책으로 선택하는 대관직도 이번 총선 결과로 인해 수요가 많지 않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180석이라는 거대여당이 만들어진 탓에 상임위에서 법안 처리 등이 여당만으로 문제없이 될 수 있다"며 "여당을 상대하는 대관의 수요는 올라간 반면, 야당을 상대하는 대관의 수요는 그 반대"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명환 기자 / 박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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