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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뉴딜` 총대멘 산업은행…자본·인력 부족에 `헉헉`
입력 2020-04-23 17:42  | 수정 2020-04-23 23:01
KDB산업은행이 우리나라 코로나19 경제위기를 막기 위한 '소방수'로 급부상했다. 정부가 지금까지 내놓은 기업과 소상공인 지원 대책 중 산은이 감당할 자금은 60조원에 달한다. 정부 정책 최일선에 산은이 동원되면서 은행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산은 자본과 인력이 이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특히 이동걸 산은 회장이 취임 후 "구조조정은 과거, 혁신금융은 미래"라며 산은 조직을 스타트업 지원 등에 맞춰 개편했지만 위기 상황이 닥치자 정책에 동원되는 구조조정 역할이 부상하면서 이 회장 구상도 차질을 빚게 됐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총 5차례 비상경제회의를 통해 내놓은 총 253조원 규모 대책 중 산은이 60조원 넘는 자금 조달과 집행을 맡은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22일 발표한 5차 비상경제회의 대책 중 핵심인 40조원 규모 기간산업안정기금도 산은 산하에 설치돼 항공·해운·조선·자동차 등 7대 기간산업 지원에 쓰인다. 저신용등급 회사채·CP·단기사채 등을 매입할 20조원 규모 특수목적기구(SPV)도 산은이 10% 수준(2조원)을 출자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1·2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발표된 코로나19 피해 기업에 대한 대출 지원과 회사채 인수, 채권안정·증권안정펀드 출자액 등만 합해도 이미 산은 부담액은 17조원을 넘는다. 반면 올해 초까지 산은이 확보해둔 원화 유동성은 7조원 수준, 지난해 말 기준 자본금 규모는 20조원 수준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산은 자본 확충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40조원 규모인 기간산업안정기금은 국가보증 기금 채권을 발행해 재원을 조달하니 당장 자본에 큰 부담을 주진 않는다 하더라도 부실 기업에 계속해서 돈이 들어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산은은 이미 지난달 두산중공업에 5000억원 규모 긴급 자금을 수혈했고, 지난 21일엔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1조2193억원 신규 한도대출을 결정했다.
산은 이사회는 지난 10일 후순위 산금채 한도를 연말까지 4조원으로 확대하며 자본 확충에 나섰다. 현재 산은이 발행한 후순위 산금채 규모는 5조4000억원에 달하는데, 여기에 연말까지 최대 4조원을 추가 발행할 수 있는 여력을 준 것이다. 산은의 최근 5년간 연평균 후순위 산금채 발행액이 5000억원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올해 자본 여력이 대폭 확대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산은이 향후 더 필요한 구조조정 자금까지 확보하려면 수조 원대 정부 출자와 산금채 발행이 필요하다고 본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산은 자본금은 현재 35조원 수준이다. 후순위 산금채를 발행해 1조원을 확충하면 7조~8조원 규모 여신 여력이 생긴다. 다만 기존에 발행한 후순위채 중 상각 후 재발행하는 규모와 BIS 비율 악화 추이, 글로벌 시장에서 산은에 대한 평가 등을 감안하면 채권 발행을 무작정 늘리는 데도 부담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산은이 다시금 '기업 살리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서 이 회장의 '비구조조정 역량 강화' 실험은 빛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이 회장은 산은의 전통적인 역할로 기대돼온 구조조정보다 미래 먹거리인 혁신성장금융부문을 강조하며 벤처금융본부를 설치하는 등 디지털 혁신 추진에 자원을 투입해왔다.
그렇지만 이 회장 임기 중에만 한국GM, 금호타이어, STX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한진중공업 등 기업 구조조정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2010년 이후로 구조조정 대상 기업만 총 117곳, 지원 금액은 22조5500억여 원에 달한다. 외환위기 이후 산은을 거친 구조조정이 번번이 좋은 성적표를 받지 못한 것도 뼈아픈 지점이다.
매각된 기업들이 경영 정상화에 성공하지 못하고 다시 산은에 손을 벌리는 사례들 때문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경영 부실을 초래한 기존 경영진에게 다시 회사를 맡겼다가 재차 구조조정을 거치기도 했다.
산은이 다시 '구조조정 전시 모드'로 회귀하면서 우리나라 기간산업 구조조정이 산은 전체 직원 3200명 중 100여 명 손에 맡겨지게 됐다. 산은은 최근 기업금융4실에 있던 '두산팀'을 구조조정본부로 이관하는 등 구조조정 국면에 본격 대응하고 있다. 구조조정 실무 총괄은 이 회장 비서실장 출신인 최대현 부행장이 맡고 있다.
일각에선 한동안 거론되던 '시장 중심 구조조정 활성화'가 막상 위기 국면에선 힘을 쓰지 못한 데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과거 산은을 비롯한 채권은행을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자본시장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해 기업구조혁신펀드를 조성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결국 이번에도 국책은행이 주도하는 구조조정이 전면에 나서는 셈이 됐다.
[김강래 기자 / 정주원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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