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매일경제-이정동 대통령 경제과학특보 인터뷰 전문(全文)
입력 2020-04-23 17:33 
이정동 대통령 경제과학특별보좌관이 서울대 공대 교수실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매일경제신문 특별취재팀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국경제의 대도약을 위한 해법을 찾기 위해 이정동 대통령 경제과학특별보좌관과 2시간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위기 극복을 위한 재정지출의 총량보다 오히려 정부 조달 시스템의 혁신을 통해 팬데믹 이후 한국 산업계에 혁신 역량을 추동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코로나19 방역대응 과정에서 전세계를 놀라게 한 드라이브 스루 방식 등 개념설계의 가치를 평가하며, 한국의 성공적 위기설계 모델이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의 브랜드 가치를 함께 높이는 선순환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음은 이 특보와 인터뷰 전문.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한국 경제의 충격을 어떻게 예상하는가.
- 모든 위기는 전대미문이다. 또 모든 위기는 공통적 패턴을 가지고 있다. 시기의 문제일 뿐 세계 경제는 모두 바운스백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세계질서의 일부가 재편됐다. 세계 경제 전체로는 거대한 수요를 만드는 선진국 경제가 다시 재가동되더라도 기존 상품 재고를 소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동안 세계 경제의 밑단 국가들이 위기를 버티지 못하고 외환위기로 갈 가능성도 있다. 이로 인해 그간의 세계화 추세는 극적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국사회는 어떤 변화의 길을 걷게 될 것인가.

- 코로나 팬데믹은 위기가 시스템 내부 문제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1930년대 경제 대공황은 유효수요의 부족 문제로 실물경제에 대한 충격이 강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시스템의 붕괴 문제였다. 모두 내생적인 문제로 시스템 고유의 속성에서 문제가 야기된 것이었다. 대공황 이후 브레튼우즈 시스템이 출현한 것처럼 근본적으로 새로운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건전성 강화를 위한 바젤협약 등 내부 시스템을 고치기 위한 노력이 더해졌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은 시스템 내부 문제가 아닌 바이러스 발발이 위기의 원인이다. 따라서 현 시스템을 고친다는 것은 자칫 앞으로 고칠 시스템 문제를 건드려 기존의 잘못된 시스템으로 회귀하는 오류를 만들 수 있다. 게임의 룰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숙제가 바뀌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와 그 방향성이 눈 앞에 더 빨리 다가오고 있는 것일뿐이다. 우리는 풀어야 할 숙제를 이미 알고 있다. 이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를 키우며 굳건하게 실행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팬데믹 사태에서 방역 대응에 실패한 선진국들을 보면서 국민들은 기존 모범국가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갖는 듯하다.
- 코로나19 사태로 선도·모범국가에 대한 개념이 달라질 것이다. 과거 모범국가의 개념은 강한 군사력과 높은 국내총생산(GDP) 수치였다. 앞으로의 모범국가는 이에 더해 보다 건강하고 자유롭게 살 권리가 시스템적으로 잘 지켜지는 나라가 된다. 통찰력 있는 리더십과 국민 모두가 합심된 자세로 이를 시스템화한 국가다. 국민이 아프지 않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권리를 잘 지켜주는 국가다. 또한 정부 정책에서 보건·안전 분야에 대한 정책의 우선순위가 높아질 것이다. 보편적기본소득(UBI)에 대한 논의도 당연히 공론화할 것이다.
▶팬데믹·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큰정부'의 출현을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 팬데믹 국면에서 위기 대응을 위한 국가의 역할이 커진 게 사실이다. 반면, 국민들은 최소한의 기본권을 간섭받지 않으려는 입장을 취하는 아이러니한 부분이 있다. 다만 앞으로 사람과 물자의 이동에 대해 정부의 개입 사례가 많아질 수 있다. 고용관계에서도 정부 개입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과거보다 정부 개입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이 커질 가능성이 예상된다.
▶혁신 경제를 위한 규제 혁파의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 믿을만한 규제 역량과 인증역량의 중요성이 보다 커질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전통적 가격 요소보다 믿고 안심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이다. 그렇다면 믿음직한 상품 영역에서 정부의 규제와 인증 역량이 굉장히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규제는 사회의 외피에 해당한다. 규제가 모두 철폐되면 인간이 살아갈 수 없다. 규제가 없다면 어떻게 소비자가 생수를 사고 이를 안전하다고 믿고 마실 수 있는가. 그러나 이번에 코로나19 진단키트 제품들을 신속인증했는데 그런 신속성이 산업계에 표준이 돼야 한다. 규제인증 역량이 세냐 약하냐는 선진국과 후진국을 나누는 중요한 기준이다. 진단키트를 검증, 테스트하고 규제 인증의 도장을 찍는 건 정부에 문제출제의 역량에 해당된다. 지난 200년의 산업화 시간 동안 선진국은 끊임없이 문제를 스스로 출제하고 도장을 찍는 역량을 구축했다. 정부가 시작한 규제 샌드박스도 정말 중요한 실험이다. 우리의 규제 역량이 퀀텀점프할 도약대가 도리 것이다. 세계에서 모든 부처가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한 것은 우리가 유일하다.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에 대해 현행 규정이 없으니 일단 기업이 해당 기술을 가지고 놀이터(샌드박스)에서 마음껏 놀아보도록 하는 것이다. 규제 샌드박스 제도는 여지껏 우리가 안 가본 길을 가는 중대한 실험이다.
▶정부 재정지출과 더불어 전달체계에서도 혁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선진국은 이번에도 축적된 시간과 공간이 있어서 어느 정도 버틸 것이다. 우리는 그걸 뛰어넘기 위해 아무도 가지 않은 눈길에 발자국을 내는 심정으로 대응해야 한다. 특히 민간이 더 과감하게 도전하고 빨리 경험을 축적하도록 국가가 도와주는 시스템이 이뤄져야 한다. 그 채널이 바로 조달 시스템이다. 정부의 역할은 크게 제도를 만들거나 구매를 하는 두 가지다. 연간 120조원 규모의 정부조달 예산이 보다 스마트하게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미국 국방부는 아마존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실리콘밸리의 혁신제품이 공공구매의 경험을 축적한다. 한국도 판교 스타트업들의 혁신서비스들 스마트하게 구매해줘야 한다. 한국판 줌(Zoom)을 왜 구매하지 못하는가.
정부 재정이 혁신의 마중물이 되려면 혁신 상품과 기술, 아이디어에 보다 적극적으로 화답해야 한다. 정부 조달이 이런 곳에 발주를 많이 하면 결국 우리사회 전체의 집단지성을 살리는 효과를 일으킨다. 고기를 던져주는게 아니라 고기 잡는 방법을 촉발시킬 수 있다. 또 이 과정에서 가치사슬이 서로 형성돼 한 구매 기업을 통해 여러 기업의 혁신을 동시에 살리는 효과가 발생한다. 축적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수단이 바로 정부 조달 시스템이다. 이미 팬데믹 국면에서 유럽연합(EU)은 최근 컨퍼런스를 열고 코로나19의 솔루션이 될 만한 기술 상품을 사기 위한 혁신조달 방안을 논의했다. 조달시스템의 혁신은 정부가 스마트해질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한다.
▶팬데믹으로 충격을 받고 부실이 가속화하는 기업들에 대한 대응도 문제다.
- 과거 외환위기 때 기업이 사람처럼 죽어나갔다. 위기가 급속히 오면 어떤 기업을 살려야 할지에 대한 옥석을 가리기가 더 어렵다. 안타깝게도 환란 당시 도산한 기업을 보면 수출지향적 기업들이 많다. 해외 판로 개척을 위해 투자를 많이 한 곳들이다. 이들이 급격한 유동성 위기로 흑자도산한 사례도 있다. 코로나 펜데믹이 생산과 소비에서 동시 충격이 왔기 때문에 역시나 평소 건강한 기업과 한계기업을 구분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항공 등 일부 산업에서 실업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데.
- 사람을 살려야 한다. 우리 인구구조 상 매년 100만명이 퇴직하는데 이는 그만큼의 축적된 경험이 사라지는 것이다. 산업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 필요한 축적과 경험이 단절되는 것이다. 정부가 고용안정자금을 투입하는 데도 이런 문제가 반영돼야 한다. 사람과 관련된 것은 무조건 살려야 한다. 외환위기 때 기업이 생존을 위해 엔지니어들을 우선적으로 구조조정한 경험이 있다. 그 실수를 이번에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 또한 노사정대타협 문제를 다시 한번 얘기할 필요 있다. (김대중정부 시절에 출범한 노사정위원회가) 사회적 대타협을 위해 다시 가동돼야 한다. 무조건 일자리를 살려야 한다는 대전제 아래에 평생학습을 우선순위에 두고 논의해야 한다. 특히 평생학습은 미래에 대한 대비의 문제다. 코로나 팬데믹은 평생학습 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평생학습이 경제정책의 후순위로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독일에서도 평생학습은 사회안전망 구축의 앞단에 위치한 우선순위다. 독일 실업률이 10%로 치솟던 2002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하르츠 개혁'을 추진했는데 그때 평생학습은 중요한 기둥이었다. 근로자들이 스스로 자존감을 갖고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도록 평생학습 개념이 적용됐다. 현재 한국의 30~54세 인구가 1500만명인데 이들은 대학을 졸업할 때 디지털에 대한 이해도가 지금만큼 높지 않다. 이들에게 평생학습을 지원해 업스킬링(역량 업그레이드)과 리스킬링(역량 전환)을 도모하도록 해야 한다. 한 분야에서 오래 몸담은 분들이 다른 업을 준비할 때 어려움이 상당하다. 지금 기업 사정으로 인해 휴직자들이 많은데 이들이 남는 시간에 업스킬링과 리스킬링을 위한 학습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최근 총선이 마무리됐다. 산업계의 중요한 혁신 파트너로써 새 국회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 혁신을 어떻게 키워나갈지 문제에서 국회는 중차대한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 혁신은 '올 오어 너씽(All or nothing)의 문제가 아니다. 국회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기관이다. 법과 제도는 글자 그대로 신기술 신사업이 탄생할때 사회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외피를 입혀주는 것이다. 의회가 얼마나 스마트하게 옷을 가봉하고 빠르게 바꿔줄 수 있는 역량을 가지느냐가 중요하다. 이런 것이 바로 혁신의 정치이다. 최근 국회에서 데이터3법이 통과된 것도 상당히 중요한 진전이라고 본다. 이번 21대 국회는 우리 산업의 성장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파트너라고 본다.
[이재철 기자 / 이승윤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