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핫이슈] 야당 심판? 실업공포가 여당 심판 삼킨 것
입력 2020-04-17 09:55  | 수정 2020-04-24 10:07

3월15일부터 4월5일까지 4주간 미국에서 220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전체 취업자의 14%다. 미국은 불황때 무더기로 해고하고 경기가 회복될때 다시 대량 고용하는 시스템이다. 기업과 노동자 모두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높은 노동탄력성이 빠른 회복을 가능케한다는 믿음이 있다. 유럽에선 해고를 최후 수단으로 본다. 기업은 버틸수 있을 때까지 버텨야 하고 정부는 이런 기업을 도울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해고 대신 순환 휴직 등 조업단축을 택할 경우 임금손실분의 상당 부분을 정부가 지급하는 제도는 글로벌 금융위기때 독일에서 '발명'된 '쿠어츠아르바이트(Kurzarbeit)'가 원조다. 지금은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한국은 '고용유지지원금'이 이에 해당한다.
과거 일본형 종신고용 시스템이었던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때 구조조정을 살벌하게 경험했다. '평생직장'이란 말이 그때 없어졌다. 그 이후 미국식 '상시 해고, 상시 고용' 시스템이 정착되었느냐 하면 아다시피 그렇지 않다. 한국 대기업은 인력 구조조정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노동법은 까다롭고 노조는 강성이고 정부 눈치는 따갑다. 당장 다음달 돌아오는 어음을 못막을 형편이 돼도 희망퇴직을 받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러다 임계점에 이르면 정부에 구제금융을 신청한다. 이때부터 노조는 정부를 상대로 '인위적 구조조정 금지' 투쟁에 들어가고 정부는 문제 해결을 질질 끈다. 문제가 곪아터질 때까지 정권이 몇번은 바뀐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은 그렇지 않다. 이곳 근로자들은 '내일 출근하지 말라'고 하면 그걸로 끝이다. 같이 싸울 노조도 없고 정부는 소규모 사업장 따위엔 신경쓰지 않는다. 싸울 건덕지도 없다. 자르는 사장이나 잘리는 종업원이나 형편 딱하기는 거기서 거기다. 코로나 경제위기로 수많은 중소 사업장 근로자들이 잘려나가고 있지만 대기업은 아직 잠잠하다. 심지어 매출이 90% 이상 날아간 항공업계조차 잠잠하다. 이스타 항공만이 유일하게 18% 수준 감원 계획을 밝혔을뿐 나머지 항공사들은 순환 휴직 등으로 버티고 있다.
이 현상이 잘 이해가 안돼서 모 대기업 지주사 고위간부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얘기한다. "상반기중에는 대기업 구조조정 없을 겁니다. 이 정부 성향을 아는데 어떻게 나섭니까. 하게 되더라도 첫번째는 피하고 싶습니다. 결국 몇몇 기업은 고꾸라지겠지요. 우리가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여당 압승으로 끝난 총선 결과를 두고 '야당 심판'으로 분석하는 기사를 보면 코웃음이 나온다. 정당정치의 기본을 모르는 소리다. 야당에 무슨 책임과 권한이 있다고 심판을 하나. 심판은 국정운영을 하는 여당이 받는 것이다. 그리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에 이어 벌써 세번째 패배인데 유권자가 사디스트인가. 한쪽만 죽어라 심판하게?
이번 선거는 코로나 실업공포가 여당 심판론을 삼킨 것으로 보면 정확하다. 긴급재난지원금 100만원 효과? 조금은 있었을 것이다. 비교적 성공적인 코로나 방역에 대한 평가? 조금 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건 아니다. 코로나 경제위기에 대한 공포가 '설마 이 정부가 구조조정을 두고보고만 있지는 않겠지'하는 기대심리와 결합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문재인 정권의 핵심 지지층은 원래부터 대기업에 근무하는 화이트칼라 중산층이다. 연령은 30~40대. 실업에 민감한 계층이다. 여기에 '조국'에 분노하던 중도층 화이트칼라까지 정부쪽으로 확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내가 잘리지 않는 것'은 당연히 '조국'보다 '윤석열'보다 우선한다. 실존적 위기 앞에서 야당이 내세운 '조국 대 윤석열' 프레임은 통할 수가 없었다. 무슨 프레임도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180석은 개헌을 빼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숫자다. '우리 이니 하고싶은거 다해'의 물적 토대가 완비된 것이다. 여당은 표값을 해야 한다. 대기업 구조조정과 실업을 무슨 수를 써서든 막아야할 부담이 생겼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면 그게 막는다고 막아지는 일은 아니다. 그러다 정말 크게 터지는 수가 있다. 대한민국이 영영 남미 모델로 가는 수도 있다. 제발 그런 일은 없어야 하겠다. 실업도 막고, 경제도 살려야 한다. 그래서 코로나 위기 극복의 세계적 모델이 되어주길 바란다. 그게 4·15 총선 민심이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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