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단독] 국제기준보다 센 규제…은행들 "어느나라 금감원인가"
입력 2020-04-08 17:33  | 수정 2020-04-08 20:58
금융감독원이 국제 기준과 달리 임의대로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기준을 정함에 따라 국내 은행들은 외국 은행들에 비해 LCR가 대략 7%포인트 낮게 계산된다.
외국 은행들처럼 '차액결제이행용 담보증권'을 고유동성 자산에 포함시켜 LCR를 계산하면 국내 시중은행 고유동성 자산이 25조4000억원 더 늘어나게 된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시중은행 순현금유출액은 324조9800억원, 고유동성 자산은 387조5700억원이다. 이 수치를 바탕으로 계산하면 LCR는 105.8%로 나온다. 차액결제이행용 담보증권을 고유동성 자산에 포함하면 LCR는 112.8%까지 상승하게 된다.
금감원이 LCR 산정에서 차액결제이행용 담보증권을 제외한 것을 인지한 한국은행은 국제 기준으로 통용되는 바젤Ⅲ 기준서 조항을 제시하며 금감원 측 산정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바젤Ⅲ 기준서 제2편 27조에는 '중앙은행·공공기관에 담보로 제공되었으나 사용되지 않았다면 고유동성 자산에 포함될 수 있다'는 문구가 적시돼 있다. 따라서 차액결제이행용 담보증권도 은행 고유동성 자산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게 한은 측 해석이었다. 하지만 금감원은 이 같은 한은 측 문제 제기를 제대로 검토조차 하지 않은 채 무시했다는 전언이다. "담보로 잡혀 있어 사용할 수 없는 증권이기 때문"이라는 게 금감원 측 시각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LCR와 같은 유동성 지표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산정하는 것으로, 시급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없는 자산이라면 고유동성 자산에 속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외국 중앙은행들 시각은 다르다. 한은은 금감원에 문제를 제기할 당시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에도 관련 내용을 질의했다. 당시 일본은행은 일본 내 은행들 LCR 산정에 이 같은 성격의 담보증권은 고유동성 자산에 포함한다고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은은 금감원에도 이 내용을 전달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한은에서는 "바젤Ⅲ 기준서대로 적용하면 되는 일인데 금감원 방침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금감원이 과거 오류를 바로잡는 것에 부담을 느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는 시각이 제기됐다는 후문이다. 실무자들이 자칫 금감원 오류로 비칠 수 있는 사안을 윗선에 보고하는 데 부담을 느낀 게 아니었겠냐는 해석도 나온다.
금감원 측 자의적 해석은 최근 들어 더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은행 대출이 한계점에 다다른 데다 금융당국도 원활한 금융 지원을 위해 LCR를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시중은행들은 금융감독당국의 건전성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아우성이다. 소상공인·중소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을 위해 대출 규모를 늘린 데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대기업들은 물론 가계도 자금 확보를 위해 대출을 크게 늘린 탓이다.
실제 지난달 은행 대출은 폭증했다. 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국내 주요 5대 은행의 3월 원화대출 잔액은 1170조7300억원으로 지난 2월에 비해 19조8700억원 급증했다.
여기에 국내 은행들은 20조원 규모 채권시장안정펀드와 10조원 규모 증권시장안정펀드에도 출자를 직간접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은행 건전성 지표는 기준선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신한·KB국민·하나·우리 등 국내 4대 시중은행 LCR 평균치는 올해 1월 말 108.3%에서 지난달 말 103.4%(잠정)로 뚝 떨어졌다.
은행들은 LCR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고,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산출 때 채안펀드·증안펀드 출자 금액에 대해 위험 가중치를 낮춰줄 것을 금융당국에 요청하고 있다. 또 예대율 산정에서 제외되는 정책자금대출 범위를 확대하고, 한은 금융중개지원대출 차입금을 원화예수금에 포함하는 방안도 요구하는 상황이다.
차현진 한은 인재개발원 교수는 "금융업에 관한 국제 기준은 타국에 비해 자국 금융기관을 보호하고 유리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며 "한국 감독당국은 국제사회에서 정한 규제를 헌법처럼 생각하는 데다 오히려 한국에 더 강하게 적용하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고 꼬집었다.
■ <용어 설명>
▷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 향후 1개월간 순현금 유출액에 대한 고유동성 자산 비율. 현금화하기 쉬운 자산의 최소 의무보유비율로, 국내 은행들은 100%를 넘겨야 한다.
[최승진 기자 / 정주원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