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아디오스, 잘 가요" 스페인 `드라이브 스루 장례식`…먹먹한 침묵 속 마지막 인사
입력 2020-04-07 11:16  | 수정 2020-04-07 14:00
서유럽 최대 공동묘지로 알려진 스페인 마드리드의 `라알무데나` 앞 화장터에서 드라이브 스루 장례식이 진행되는 모습. [사진 출처 = CNN영상 캡처]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가 이달 유럽을 휩쓴 가운데, 요즘 스페인에서는 '드라이브 스루' 장례식이 이뤄지고 있다. 이달 25일까지로 '시민 이동 제한령'이 연장됐지만, 매일 누군가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으면서 떠나는 이들과 떠나보내는 이들 간 마지막 인사가 줄을 잇는 가운데 어쩔 수 없이 나온 게 드라이브 스루 장례식이다.
서유럽 최대 공동묘지로 알려진 스페인 마드리드의 `라알무데나` 앞 화장터에서 한 신부가 코로나19 사망자의 시신이 있는 관을 향해 성수를 뿌린 후 축복 기도를 하고 있다. 바이러스 확산 우려 때문에 관은 자동차에 실려진 채로 축복을 받았다. [사진 출처 = CNN]
수도 마드리드 인근 최대 공동 묘지인 라알무데나(La Almudena) 앞 화장터 입구에는 매일 영구차가 차례대로 도착한다. 마스크를 쓴 사람 몇몇이 영구차의 뒷문을 열면 신부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몇 분 간 망자가 가는 길을 축복하는 일이 15분마다 반복된다고 CNN이 6일(현지시간) 전했다.
스페인에서는 '이동 제한령'에 따라 3인 이상 시민들이 함께 이동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다만 카톨릭 신자가 많은 특성 상 장례식은 예외로 했기 때문에 5명 이내에서 유가족들이 장례식에 참석하고, 나머지는 온라인으로 참석하는 식이다.
작별의 시간은 짧다. 5분 정도다. 미사 옷을 입은 신부가 잠겨진 관을 향해 성수를 뿌린 후 축복 기도를 하면 끝난다. 포옹과 키스로 서로를 위로하던 모습은 코로나19 탓에 사라졌다. 가족들은 마스크를 한 채 멀리 떨어져 신부의 기도를 지켜본 후 차를 타고 떠난다.
라알무데나 묘지 인근에서 코로나19 사망자의 시신이 들어있는 관을 화장터로 옮기는 사람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CNN]
잠시 후 또 다른 영구차가 화장터 앞에 도착하고 신부 앞에 누군가 관을 내민다. 이런 짧은 장례식은 화장터 굴뚝 밖으로 빠져나오는 열기와 연기 만큼이나 일정하게 흘러간다.
북받히는 슬픔을 꾹꿀 눌러담고 건조하게 진행되는 '드라이브 스루 장례식'이지만 참석할 수 없는 사람들이 더 많다. "지금은 사회적 거리를 둬야하니 엄마 가까이 갈 수 없죠. 어떻게 해야할지,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이 상황이 끝나면 엄마를 위한 장례식을 다시 해드릴 거예요" 펠릭스 포베다씨는 검은 색 피코트에 어두운 넥타이를 맨 상복 차림을 했지만 수술용 마스크를 쓴 채 휴대폰으로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감염 가능성 때문에 가족 중 누구도 장례식에 오지 못했다. 포베다씨는 몇 주 전 또다른 형제와 어머니와 점심 식사를 했다가 셋 모두 코로나19에 감염됐다. 77세의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했지만 중증에도 불구하고 호흡기가 모자라 제대로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묘지 비석이 끝없이 늘어서 있는 해질 무렵 라알무데나 묘지 풍경. [사진 출처 = CNN영상 캡처]
서유럽에서 가장 큰 공동 묘지로 꼽히는 라알무데나 묘지에서는 요즘 시신 처리 작업이 평소의 2~3배로 늘었다. 묘지 비석이 끝없이 늘어서는 모습은 1918년 스페인 독감과 1936년 이후 스페인 내전과 스페인 독감 때에나 있었을 법한 풍경이라고 한다.
스페인에서는 6일(현지시간) 기준 총 1만3341명이 코로나19 탓에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증가세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사진 출처 =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보건부·엘파이스]
6일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가 각 국 보건부 발표와 추가 소식을 종합한 자료를 보면 이날까지 스페인에서는 총13만 6675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총1만3341명이 세상을 떠났다. 스페인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확진자와 사망자 증가세가 이탈리아에 이어 어느 정도 줄어드는 모양새다. 사망자의 경우 지난 2일 보건부 발표 당시 하루에 950명이 사망해 정점에 달했다. 지난 달 마지막 주에 피해가 집중됐지만 지난 5일 발표를 기준으로 하루 사망자 증가폭이 600명 선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증가폭이 줄었지만 어쨌든 매일 매일 사람들이 코로나19 탓에 목숨을 잃고 있다. 날마다 사람들이 무더기로 죽어가자 산체스 총리는 지난 달 30일 '장례 비용 인상금지'조치를 발표하기도 했다. 발표 시점은 30일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달 14일 이후로 시간을 거슬러 '소급 적용'된다. 코로나19 사망자가 쏟아져 나오면서 때아닌 특수를 맞은 장례식 대행업자들이 가격 부풀리기를 하는 바람에 가뜩이나 돈줄 끊긴 사람들이 가족 장례를 치를 비용조차 댈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지난 달 30일(현지시간), 피해가 집중된 마드리드에서 시청 직원이 텅 빈 광장을 향해 깃발을 올리고 있다. [사진 출처 = 마드리드 주지사 트위터]
마드리드에서는 이사벨 디아즈 아유소 주지사가 지난 달 29일 자신의 트위터 등을 통해 "매일 정오마다 코로나19로 죽어간 사람들과 가족들을 위해 1분간 침묵하며 그들을 위로하는 묵념의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밝힌 후 주 차원에서 추모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마드리드는 스페인 내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 피해 40%가 집중된 지역이다. 시신을 둘 곳이 모자라 지금은 아이스링크 장 두 곳이 임시 보관소로 사용되고 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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