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핫이슈] `표심잡기` 물불 가리지 않는 당정청, 정공법 택해야
입력 2020-04-07 09:34 
21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2일 서울 종로에 출마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후보(왼쪽)가 경복궁역에서, 황교안 미래통합당 후보(오른쪽)가 청운효자동에서 유권자들을 만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 이승환 기자]

4·15 총선을 앞두고 제1당을 차지하려는 여권의 선거운동이 본격화하고 있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비례대표 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은 선거 승리를 위해 '꼼수'동원도 불사할 태세다.
정부와 청와대 또한 여당의 압승을 위해 우회적인 지원사격에 나서면서 선거개입 논란마저 벌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당정청이 '표십잡기'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민주당과 위성 비례대표 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은 지난 2일 공동 출정식에서 숫자 1과 5를 새긴 '쌍둥이 유세' 버스를 선보였다. 민주당 상징색인 파란색으로 래핑된 두 대의 버스는 당명만 '민주당'과 '시민당'으로 바꿔 달았고 색상과 디자인, 서체는 똑같았다.

숫자 1은 민주당의 지역구 후보 기호, 숫자 5는 시민당의 비례대표 정당투표 기호다.
민주당과 시민당은 "(투표기호가 아니라) 선거일이 15일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민주당과 시민당의 정당 기호를 연상시키는 효과를 노린 셈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쌍둥이 유세버스가 공직선거법 90조에 따른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시설물'에 해당된다"며 중지· 시정을 요구하자 두 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선관위가 애초 위성정당을 허용해 질서를 혼탁하게 만들어놓고 공정선거라는 미명하에 표현의 자유만 제한하는 것이 오히려 선거 방해라는 것이다.
지난해 미래통합당을 배제한 채 군소정당들과 함께 준연동형비례제를 도입하는 선거법개정안을 강행처리해 '위성정당'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빚은 여당이 정작 자신들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선관위에 떠넘긴 것이다.
두 당은 이후 함께 회의를 하면서 각 당의 선거 기호인 '1'과 '5' 손팻말을 들고 나와 흔들었다고 한다. 선관위와 유권자를 우습게 보지 않고선 엄두조차 못낼 일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와 청와대까지 나서 여당의 선거운동을 지원사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지난 3일 대학설립심사위원회를 열어 전남 나주의 한전공대 학교법인 설립 허가를 밀어붙인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한전공대 설립예정지의 반경 10km이내에는 에너지밸리 산업단지, 광주 에너지밸리같은 비슷한 사업이 진행 중이고, 이공계 특성화대학도 광주에 지스트(GIST)를 포함해 5개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1조6000억원이 드는 사업을 강행하려는 것은 지역 표심을 노린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
특히 한전공대가 차기 대선을 두달 앞둔 2022년3월 개교할 경우 대선 레이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10조원대 흑자를 내다가 탈원전 등 여파로 지난해 1조3000억의 적자기업으로 전락한 한전에 정부가 공대 설립 및 운영의 덤터기끼지 씌우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처사다.
멀쩡하던 두산중공업이 탈원전 후유증으로 매출이 수조원 감소해 결국 세금으로 연명하는 지경에 이른 상황에서 정부가 '표심' 때문에 한전까지 벼랑 끝 위기로 몰아서야 되겠는가.
한전의 소액주주 대표들이 한전공대 설립과 관련해 대통령과 산업통상자원부장관, 한전 경영진을 강요죄 등의 혐의로 형사고발한 것도 이런 우려와 무관치 않다.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를 놓고도 뒷담화가 무성하다.
문 대통령은 이달 들어 세차례나 지역순방에 나섰다. 1일에는 경북 구미를 찾아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격려했고 3일에는 제주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했다.
식목일인 5일에는 지난해 산불로 삼림이 황폐해진 강원도 강릉을 찾아 나무를 심었다. 또 6일에는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예정에도 없던 금융기관 수장들과의 간담회를 갖고 100조원 규모의 금융지원과 관련한 협조를 요청했다.
대통령이 국정 현안을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공식 선거기간 중에 지역을 찾아 유권자를 만나고 수혜 대상자가 많은 정책을 새삼 강조한 것은 자칫 '선거 개입'이라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
미래통합당이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 "교묘한 관권선거"라고 반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구미, 제주, 강릉의 경우 선거 접전지로 알려져 있다.
민주당이 야당시절인 2016년4월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충북· 전북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할 당시 "민생행보를 빙자한 선거개입"이라고 비판한 바 있는데, 벌써 그 사실을 잊었는지 궁금하다.
더구나 정부가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기한을 연장하고 국민들에게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한 마당에 대통령이 지역 주민들과 서로 밀착해 기념사진까지 찍은 것은 방역 측면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총선은 4년마다 각 정당이 인물과 공약, 정책을 통해 유권자들의 평가를 받는 자리다.
의석에 눈이 멀어 꼼수와 편법을 일삼는 퇴행적 정치가 반복되면 유권자들이 엄중한 심판을 통해 이를 막을 수 밖에 없다.
로마 공화정 말기 웅변가이자 정치가인 퀸투스 툴리우스 키케로(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동생)는 "선거에서 이기려면 당신이 그들의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고 했다.
여당이 선거에서 유권자 표심을 사로잡고 승리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제대로 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고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모습부터 보여줘야 한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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