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금감원 무성의에…전염병 보험 `물거품`
입력 2020-04-06 17:41  | 수정 2020-04-06 23:07
코로나19로 전염병 관련 보험이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올해 초 한 보험사가 전염병 진단을 보상하는 상품을 출시하려다 무산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외국계 A보험사는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을 진단받았을 때 보험금을 지급하는 '미니 보험' 형태로 상품을 출시하고자 지난 1월 보험개발원에 검증을 의뢰했다.
만약 이 상품이 판매됐다면 코로나19 검사를 자발적으로 받아 음성 판정을 받은 보험 소비자 중 상품에 가입한 사람은 진단비 등을 보상받을 수 있었다. 또 갈수록 다양해지는 전염병 등 신종 리스크에 대해 민간 보험사가 개인 피해를 보상하는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상징적인 사례가 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해당 상품은 검증 단계에서 소리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보험개발원 검증을 시작한 1월만 해도 코로나19 국면이 본격화하기 전이지만 2월 들어서는 코로나19에 대한 공포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보험사들은 통상 상품을 내놓기 전에 금융감독원에 출시 예고를 하고, 15일 이내에 금감원이나 개발원에서 수정 권고가 없으면 30일간 '숙려 기간'을 거친 후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 2월 들어 코로나19 상황이 악화하자 금융당국이 보험사 측 '공포 마케팅'을 차단하기 위해 상품 출시를 '저지'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불안감을 불러일으켜 보험 상품을 팔아 이익을 취하려는 행위를 막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사전 검증 원칙을 근거로 상품 출시를 반려한 것"이라며 "상품의 구조가 불안정해 자칫 안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금융당국 관계자는 "정확한 손해율 등 산정이 어려워 회사가 출시를 접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염병은 꾸준한 사례가 없고 누적 데이터가 빈약하기 때문에 보험사로서는 체계적인 분석을 통해 상품 가격과 리스크를 계산하기 어렵다.
출시는 무산됐지만 보험업계 차원에서 전염병 보상 상품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업계 안팎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국가 보상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민간 보험 차원에서 1차 방어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개인을 넘어 재난·전염병 등으로 인한 기업 영업 중단 피해를 보상하는 '기업휴지보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9·11 사태 당시 지급된 피해 보상금 중 51%를 보험사들이 지원했다. 특히 기업 피해에 대해서는 73%를 보험사가 보상했을 정도다.
하지만 A보험사 상품 출시 무산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전염병에 따른 피해를 보상하는 상품을 만들려면 '데이터 부족'이라는 걸림돌을 극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보험연구원이나 국회 입법조사처는 파라메트릭(Parametric) 보험이나 인덱스(Index) 보험 등을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손실 규모를 측정하기 어려운 자연재해 리스크를 보상할 때 강수량이나 온도 등과 같은 객관적인 지표를 기준으로 보상 금액 등을 결정하는 구조다.
아울러 현재 제도상 가장 큰 허점 중 하나는 보험 표준약관상 상충 문제다. 현재 생명보험 표준약관은 '감염병 예방법'이 규정한 감염병을 '보장 대상이 되는 재해'로 분류하고 있다. 올해 1월 개정된 감염병 예방법은 코로나19를 포함한 신종감염증후군 등 17종을 1급 감염병으로 지정하고 있다. 보장 대상인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표준약관은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상 U코드를 부여받은 질병을 '지급하지 않는 재해'로 명시하고 있는데, 코로나19는 통계청 한국표준질병분류에서 원인불확실 신종질환으로 U코드를 부여받은 상태다. 해석에 따라 보상 대상이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회 입법조사처는 "금감원이 감염병 예방법 개정에도 생보 표준약관 개정 작업을 이행하지 못해 혼선이 나타났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금감원도 표준약관상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향후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에 대해 보상 여부를 명확히 할 수 있도록 생명보험 표준약관 재해분류표 개정을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금감원 측은 "보험사들이 해석 여지에 따라 소비자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혼선을 최소화해 보험금을 지급하겠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김강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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