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10대들 채팅앱·SNS 성범죄 노출되는데…학교 교육은 현실과 괴리
입력 2020-04-06 15:40 

"채팅시 남자와 여자를 구별할 수 없는 닉네임을 사용하세요. 모르는 사람과는 채팅하지 않아요."(초등학생 성교육 워크북)
익명 채팅 애플리케이션과 텔레그램 등 메신저 프로그램을 통한 디지털 성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일선 학교 현장의 디지털 성범죄 교육은 여전히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텔레그램 '박사방' 사건에서 보듯이 상당수 피해자가 미성년자인데도 초·중·고등학교 현장에서는 시대와 동떨어진 내용을 가르치고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가장 최근의 디지털(사이버) 성폭력 관련 초등학교 교재는 2015년에 만들어진 '초등학생 성교육 학생용 워크북'이다. 그런데 이 워크북에서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대처법이라고 소개한 내용이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많다. 워크북에 담긴 성폭력 사례도 마찬가지다. '이메일로 음란물을 보낸다''대화방에서 성과 관련된 야한 말을 한다' 등 다소 고전적인 내용 뿐이다. 그마저도 중·고등학생용 워크북에는 디지털 성폭력 관련 내용이 단 한줄도 없어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보건교사 엄모 씨는 "초등학교 3·4학년만 돼도 유튜브, 파일공유 사이트 등으로 음란물을 쉽게 접할 수 있다"며 "n번방 같은 성범죄 사건도 어렸을 때부터 성에 대한 잘못된 관념이 쌓이면서 발생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부실한 교육은 미성년자들의 피해를 막지 못하고 미성년자 피의자를 양상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실제로 최근 발생한 텔레그램 불법 성착취물 제작·유포 사건에서 '로리대장태범' '태평양' 등의 닉네임을 사용한 주요 피의자가 모두 10대의 미성년자로 밝혀졌다.

최근 일선 초·중·고교에서는 '디지털 성범죄 예방'이라는 제목의 가정통신문을 보내고 있다. 가정통신문에는 '조건만남·성매매의 위험성이 있는 앱, 스마트폰 채팅 앱 주의' 등 최근 발생하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된 내용이 담겼다. 피해시 증거 수집 방법, 피해자 지원 기관 등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안내도 포함됐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대응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이충민 푸른아우성 성교육팀장은 "학교에서 이뤄지는 성교육은 사건,사례만 나열하며 아이들에게 겁을 주는 쪽으로 흐르기 쉽다"며 "정확한 해결책과 함께 피해자 예방 교육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입시위주 교육이 이뤄지는 학교에서 성교육 수업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규정상 초·중·고교에서는 연간 15시간 이상 성교육을 실시해야 하지만 별도 교과목으로 마련된 건 아니다. 온·오프라인 성폭력 예방과 관련한 교과서 내용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마저도 위험해 처했을 때 "싫어요" "그만하세요"를 외치라는 단순한 내용뿐이다. 교육부가 2017년에 수정한 '성교육 표준안'은 '이성과 단 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말 것'을 성폭력 예방법으로 소개하고 있다.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는 표준안와 교재 탓에 일선 교사들은 수업자료를 대부분 직접 제작해 사용하고 있다. 차미향 보건교사회장은 "성교육이 교사 재량에 달렸기 때문에 교실마다, 학교마다 수업 질의 편차가 심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청소년들이 알고 싶어 하는 정보를 주고 올바른 성인지 감수성을 기르는 방향으로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노선이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지금 성교육은 아이들이 알고 싶어하는 정보를 제공하기보단 무조건 차단하고 금욕하면 된다는 발상을 전제로 한다"며 "조금 더 자기자신을 드러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의사소통 교육과 타인의 인격을 존중하는 민주시민 교육, 젠더 감수성 교육 등이 포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금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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