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위기냐, 기회냐` 격변의 美증시…`투자 귀재` 워런 버핏, 델타 주식 대량 매도
입력 2020-04-04 11:34  | 수정 2020-04-04 11:44
코로나19판데믹 속에서는 장기투자를 선호하는 워런 버핏 버크셔헤서웨이 회장마저 2월에 산 델타항공 주식을 지난 주 대거 매도할 정도로 투자 고수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사진출처 = 지난 1월 버핏회장 CNBC 인터뷰 영상]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팬데믹(COVID-19대유행) 탓에 '글로벌 금융시장의 심장'으로 불리는 미국 뉴욕 증시가 격변의 시대를 맞았다. '공포에 사서 환희에 팔아라'는 월스트리트 증권가 명언도 있지만 주가 급등락이 일상이 된 코로나 장세에서는 '가치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헤서웨이 회장도 머릿속이 복잡한 모양이다. 한달 동안 미국 증시에서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투자 거물들과 미국 경제를 움직이는 재무부 장관,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주식 매매 포지션'에 서로 다른 의견을 냈다. 발언이 제각각인 이유는 투자자·최고경영자(CEO)·관료라는 각자의 입장이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시장이 극도의 변동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 뉴욕증시 하락폭. 미국 나스닥의 은행 주가를 종합한 KBW은행지수가 11%가까이 급락했다. [데이터 그래픽 출처=FactSet·월스트리트저널(WSJ)]
3일(현지시간) 버크셔헤서웨이는 "이번 주에 델타항공 소유 지분의 18%와 사우스웨스트항공 소유 지분의 4%를 매도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했다. SEC보고서에 따르면 버크셔헤서웨이는 지난 2~3일 이틀에 걸쳐 델타항공 주식을 1300만 주 내다 팔았으며 사우스웨스트항공 주식도 230만 주 내다팔았다고 미국 경제매체 CNBC가 이날 전했다. 매도 금액으로 따지면 델타항공은 3억 1400만 달러, 사우스웨스트항공은 7400만 달러어치인데 전부 합치면 총 3억9000만 달러(우리 돈 약 4820억 여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헤서웨이 회장은 "위기는 기회"라면서 "흥분했을 때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흥분을 차갑게 식혀라"고 한 말로 유명하다. 버크셔헤서웨이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이유로 오는 5월 2일로 예정된 주주총회를 취소했다. [출처 = 게티이미지·블룸버그]
이번 매도는 버핏 회장의 평소 성향과 달라 시장 관심을 끌었다. 한 번 산 주식은 좀처럼 팔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버핏 회장이 불과 한 달 여만에 정 반대되는 거래를 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말만 해도 버크셔헤서웨이는 델타항공 주식을 '매수' 했다. 2월 말은 코로나19로 미국 증시가 요동치기 시작하던 때다. 버크셔헤서웨이는 "델타항공 주식 총 4530만 달러(약 536억 8000만원)어치를 사들였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지난 달 27일 SEC에 보고했다. 회사는 델타항공 주식 97만6000주를 1주당 평균 46.40달러에 샀고, 그 결과 델타항공 지분이 11.2%(총 7190만주)로 늘어났다. 당시 매수는 버크셔헤서웨이가 별다른 투자 없이 현금성 자산만 쌓아뒀다가 간만에 시장에 나선 것이라서 더욱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버핏 회장은 성장 잠재력이 높다고 판단한 기업 주식을 구매 후 장기 보유하는 '가치 투자자'다. 회장은 항공 산업과 소비재, 금융 부문 기업을 선호해왔다. 이를 반영하듯 버크셔헤서웨이는 미국 대표 항공사인 델타·아메리칸·사우스웨스트·유나이티드항공 대주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버핏 회장은 "남들이 욕심낼 때 공포심을 가지고, 남들이 공포를 느끼면 욕심을 부려라"는 투자 조언으로 유명하다. 앞서 지난 1월 24일 버핏 회장은 CNBC인터뷰에서 중국발 코로나19에 따른 주가 하락에 대해 "주가 급락은 좋은 일이다. 좋은 회사 주식을 더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라면서 "주식을 살 때는 그 회사가 10~20년 뒤 시장에서 어느 위치에 있을 지 생각해보고 사라"고 조언했었다.
이 조언을 감안하면 항공사 기업 가치에 대한 버핏 회장의 판단이 한달 여만에 뒤바뀐 셈이다. 미국 항공사들은 중국발 코로나19에 따른 각 국 정부의 하늘길 봉쇄조치와 관광 수요 급감로 연이어 주가가 떨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스티븐 므누신 재무 장관이 파산 위기에 놓인 항공사들에 대해 정부가 지분을 인수하는 식의 구제 방안을 들먹였을 정도다.
`월가 투자거물`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캐피털 회장은 "미국에 25억 달러를 베팅했다"면서 주식을 사들였다. 회장은 월가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칸과 경쟁한 대표적인 억만장자다. [출처 = 블룸버그]
버핏 회장과 반대로 '헤지펀드 거물 투자자'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캐피털 회장은 주식을 대거 사들여 두 자릿 수 수익률을 냈다. 3일 블룸버그통신은 퍼싱스퀘어캐피털이 3월에 11%순수익을 올렸다고 회사 공시 자료를 인용해 전했다. 앞서 2월 말에는 7.1%순손실을 봤었다.
애크먼 회장은 지난 달 23일 블룸버그TV인터뷰에서 "미국에 25억 달러를 베팅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우리는 전부 롱포지션(We are all long)"이라면서 "지금은 주가가 왜곡됐다고 본다. 우리는 미국 경제가 크게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나라에 베팅했다"고 말했다. 롱포지션은 통상 선물·옵션 시장에서 '매수' 입장에 서는 것을 의미하지만 일반 주식시장에서 사용하기도 한다.
애크먼 회장이 이끄는 퍼싱스퀘어캐피털은 3월에 구매한 주식은 25억 달러를 넘어 26억 달러(우리 돈 약 3조 2136억원)에 이른다. 회사는 글로벌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와 버크셔헤서웨이, 글로벌 호텔체인 힐튼, 미국 헬스케어 관련업체 애질런트 테크놀로지스, 건축자재·인테리어 유통업체 로우스 주식 등을 사들였다.
애크먼 회장도 똑같은 입장만 보인 것은 아니다. 회장은 지난 달 블룸버그TV인터뷰에 앞서 같은 달 18일 CNBC인터뷰에서 "지옥이 오고 있다"면서 "한 달 간 뉴욕 증시 거래를 중단시킬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주의가 제대로 굴러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었다. 당시 3월은 9일과 12일, 16일, 18일에 걸쳐 총 네 번 뉴욕증권거래소에 1단계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는 등 사상 최악의 폭락세를 기록한 때다.
올해 1분기 퍼싱스퀘어캐피털의 주식 매매도 정반대였다. 대표적인 것이 스타벅스 주식이다. 퍼싱스퀘어캐피털은 지난 2018년 9억 달러를 들여 스타벅스 전체 지분의 1.1%를 사들였다가 올해 1월 31일 전부 내다팔았고, 3월에는 스타벅스 주식을 다시 사들였다. 1월 말은 코로나19가 후베이성 우한을 시작으로 중국 내에서 급속히 확산돼 스타벅스가 중국 매장 4300여 곳 중 절반을 폐쇄한 때다.

◆ '격변의 코로나 장세' 美 투자·경제고수 발언도 제각각…로저스 vs 므누신

주가가 오를지, 내릴지를 두고 로저스 회장(왼쪽)과 므누신 장관(오른쪽)은 정 반대 입장이다. [출처 = 트위터·CNBC]
버핏 회장과 애크먼 회장만 서로 다른 건 아니다. 최근 주식시장에 대한 전문가 예상은 제각각이다.
비관론으로는 '북한 투자 대박론'으로 유명한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지난 1일 블룸버그통신 전화 인터뷰에서 "앞으로 2년 안에 내 생애 최악의 베어마켓(bear market·하락장)이 올 것"이라는 비관론을 냈었다. 회장은 "(정부와 연준의 기업 대출지원 때문에) 어마 어마한 기업 부채가 더해지고 있다. 높은 수준의 부채와 매우 낮은 금리 조합은 매우 큰 위험"이라고 한 후 매수 관심 분야에 대해서는 "관광·운송·항공, 농업 분야 기업 주식 매수 시기를 재고 있다"고 한 바 있다.
같은 날 휴 짐버 JP모건 글로벌 시장 전략가도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지금 주식을 사는 것은 너무 이르다(It's too early to buy stocks)"는 입장을 냈다. 그는 주식보다는 채권을 언급하면서 "단기 변동성이 큰 장에서 여전히 일부 채권 수익률이 높은 것을 감안하면 투자자들로서는 1~2년이 좋은 (채권시장)진입 기회일 것"이라고 말했다.
긍정론을 펴는 입장도 있다. '글로벌 1위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달 29일 주주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금융계에서 44년을 일했지만 이런 경우(코로나19 팬데믹)는 처음"이라면서도 "하지만 이런 상황은 당장 발밑을 보는 단기 투자자보다는 먼 지평선을 내다보는 장기 투자자에게 엄청난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앞서 스티븐 므누신 재무부 장관과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긍정론을 내비친 바 있다. 지난 달 13일 므누신 장관은 CNBC인터뷰에서 코로나19 판데믹 사태에 대해 "지금은 가장 최고의 투자 기회일 것"이라면서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하겠다"고 했다. 장관은 투자자들을 향해 "내가 1987년 충격과 2008년 위기로 주가가 떨어졌을 시점에 주식을 산 사람들을 쭉 봐왔다. 그 결과는 당신들도 잘 알 것"이라면서 시간이 지난 후 주가가 오히려 더 올랐음을 강조했다. 이어 같은 달 15일 폭스 뉴스 인터뷰에서는 "올해 후반 큰 반등이 있을 것(big rebound)"이라고도 했다.
지난 달 26일(현지시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NBC인터뷰에서 "좋은 반등이 올 수 았다"고 말했다. [출처 = NBC인터뷰 영상 캡처]
이어 3월 26일, 파월 연준 의장도 NBC인터뷰에서 "좋은 반등이 있을 수도 있다(there can also be a good rebound)"고 말했다. 의장은 당시 "우리 경제가 침체일 수도 있지만 기초체력(펀더멘털)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 "전례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상황이지만 우리는 시장에 발 맞출 수 있다. 연준의 정책 탄약이 바닥날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강조해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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