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남·북 집안싸움`벌인 유럽…`EU판 구제금융` 가동해 이탈리아·스페인 `코로나 구제` 나설듯
입력 2020-04-03 14:07  | 수정 2020-04-03 14:41
지난 달 30일(현지시간)스페인 수도가 있는 마드리드 주에서 직원이 깃발을 올리고 있다. 맨 왼쪽부터 마드리드 주·스페인·유럽연합(EU) 깃발. 마드리드 주는 매일 정오에 세 깃발을 내걸고 코로나19로 죽어간 사람들과 유가족을 위한 추모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사진 출처 = 이사벨 디아즈 아유소 마드리드 주지...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가 이달 유럽을 강타한 가운데, 유럽연합(EU)이 재정위기 대응용으로 만든 'EU판 구제금융'을 코로나 기금으로 돌려서 회원국 지원 사격에 나설 것이라는 소식이 나왔다. 코로나19탓에 절망에 빠진 회원국에게 자금 지원 조건으로 긴축 재정 등 재정 개혁을 내거는 대신 코로나19 피해를 충분히 회복할 시간을 줄 것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그간 EU는 코로나 지원 확대를 원하는 피해 집중 지역 '남유럽'(이탈리아·스페인·프랑스)과 피해가 상대적으로 덜한 가운데 재정 규율을 강조하는 '북유럽'(네덜란드·독일 등)으로 갈라서 분열만 거듭하는 바람에 '하나의 유럽은 말장난'이라는 냉소섞인 회의론이 나왔었다.
유로존 재무·경제장관 화상회의에서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완화 대책에 이은 추가 경기부양 대책을 촉구하는 나디아 칼비노 스페인 경제장관. [사진 출처 = 엘파이스 영상 캡처]
2일(현지시간) 스페인 엘파이스 신문은 "유로존 회원국 주요 재무 장관들이 유럽안정메커니즘(ESM)을 '코로나 구제 금융'으로 돌려쓰는(전용) 방안을 만들었다"면서 입수한 유로존 문서를 인용해 보도했다. ESM이란 간단히 말해 유럽연합 내 유로화 사용 회원국이 모여 만든 유럽판 구제금융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통화기금(IMF)에 조건부 구제금융이 있다면 유럽에는 ESM이 있는 셈이다. ESM는 2012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그리스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를 앞두는 등 이른바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로 불린 남유럽 국가들 재정 위기가 극에 달했던 때다.
ESM을 전용한 '코로나 구제금융' 취지는 엄격한 재정 개혁이라는 조건 대신 코로나 피해 회복기간을 충분히 둔다는 것이다. 입수 문서에 따르면 신용 한도 기간은 3~5년이다. ESM의 기본 목적이 재정 정책 실패로 디폴트 위기에 처한 회원국을 재정 개혁 조건부로 구제한다는 건데 이를 수정해 자금을 돌려쓴다는 것이 유로존 회원국들의 생각이다.
유로존 회원국이 최종 결정을 내리면, ESM 중 800억 유로(우리돈 약 106조 6800억원)가 코로나 긴급 구제기금으로 가동된다고 엘파이스 신문은 전했다. 입수 문서에 따르면 12개월 동안 피해국들이 총 800억 유로를 빌릴 수 있다. ESM은 전체 규모가 5000억 유로(우리 돈 약 667조 1150억원)정도다. ESM전체의 16%만 긴급 전용하는 셈이지만 의미있는 성과다.
코로나 채권 발행과 유럽안정메커니즘(ESM)전용을 적극 주장한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왼쪽)와 적극 반대해온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오른쪽) [사진 출처 = 각자 트위터]
그간 EU는 코로나 지원을 두고 남·북으로 갈라져 갈등만 키워왔다. 지난 달 26일 EU의 27개 회원국 정상은 화상회의를 열고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완화 대책에 이은 추가 경기부양 대책을 논의했었다. 두 개 주요 안건이 ESM전용과 유로존 공동채권인 이른바 '코로나 채권' 발행이었다.
일단 첫 번째 추가 부양 카드인 '코로나 채권' 발행은 무산됐다. 지난 달 26일 화상회의에서 유럽 내 피해가 가장 큰 이탈리아의 주세페 콘테 총리를 시작으로 두번째 피해국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코로나 채권 발행을 강력히 주장했고 당시 세번째 피해국이던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필요성을 옹호했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회의적인 반응이었던 데다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가 강력히 반대한 탓이다.
그간 독일은 이탈리아와 스페인·프랑스와 달리 `코로나 채권 발행` 등 추가 부양책에 소극적이었지만 프랑스보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더 많아지는 등 상황이 달라졌다. 2일(현지시간) 부로 전세계 코로나19 확진자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사진 출처 =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데이터]
이런 가운데 유로존 국가들은 두 번째 추가 부양 카드인 'ESM전용' 여부를 만장 일치 방식 대신 토론을 통한 합의 방식으로 결정할 계획이다. 반대가 극심한 네덜란드 때문이다. ESM전용 안을 두고 세 차례에 걸친 고위급 회의에서 네덜란드가 매번 반대 의사를 표해 남·북 갈등이 심화됐다. 네덜란드는 4차 회의에서도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네덜란드와 비슷한 입장이던 독일이 최근 프랑스보다 코로나 피해가 더 커지는 등 상황이 바뀌었고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갈수록 피해가 심각하다는 점에서 회원국들이 빠른 시간 내 토론을 통해 전용 여부를 결정하자는 분위기다.
ESM이 코로나 구제금융으로 전용되면 스페인의 경우 두 가지 기준에 따라 총 350억 유로(우리 돈 약 46조 7152억원)이상을 긴급 자금으로 끌어쓸 수 있다고 엘파이스 신문은 전했다. ESM 지분을 기준으로 스페인은 지분 11.8% 가졌기 때문에 일단 94억4000만 유로를 조달할 수 있고, 또 GDP(국내 총생산)의 2% 지원 기준을 적용하면 스페인은 최소 250억 유로를 조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ESM전용에 대해 네덜란드는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2일 봅커 훅스트라 재무장관은 로이터 인터뷰에서 "네덜란드는 의료위기 기금이라는 것을 제안하고 상당한 기여를 할 것"이라면서 "의료 위기기금은 10억 유로(우리 돈 약 1조 3000억원) 규모가 될 것이고 회원국에 대한 연대의 신호로서 하나의 선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마르크 뤼테 총리도 의회에 출석해 "코로나 채권 발행이나 ESM전용보다는 새로운 다른 기금을 조성해 회원국에 '선물'을 주는 방법이 좋다"고 언급했다.
미국과 EU회원국이 코로나19직격탄을 받아 `각자 도생`식 고립주의에 들어간 가운데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향해 `코로나 틈새 외교`에 나선 중국과 러시아. [사진 출처 = 러시아 국방부·스페인 주재 중국 대사관 트위터]
EU차원에서는 회원국 구제 대책을 고심 중이다. 미국과 EU회원국이 코로나19직격탄을 받아 '각자 도생'식 고립주의에 들어가자 중국과 러시아는 '어려운 시기 함께하는 우정'을 강조하며 코로나 틈새 외교에 나선 상태다. 중국과 러시아는 극한 위기에 빠진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향해 자국 군대·의료진 파견, 마스크 원조를 내세워 자기 편 만들기에 들어갔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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