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핫이슈] 홍남기 부총리는 그 수모 당하면서 왜 자리 지키나
입력 2020-04-03 09:10 
[사진출처 = 연합뉴스]

코로나 사태는 전문가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사태 초기 방역전문가들의 경고를 흘려들어 대량 감염 사태를 빚었다. 지금까지 그럭저럭 버틴 것은 질병관리본부와 의료진, 즉 전문가 집단의 분투 덕분이다.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뇌피셜적' 낙관론을 말하면 전문가 집단을 대표하는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IAID) 소장이 이를 반박하는 구도가 여러번 되풀이됐다. 트럼프 지지층은 파우치 소장을 싫어하지만 대다수는 트럼프보다 파우치를 신뢰한다.
방역만큼이나 경제도 전문적 영역이다. 위기 국면에서는 특히 그렇다. 그런데 이쪽에선 전문가들이 들러리만 서고 있다. 하위 소득 70% 가구에 100만원씩 긴급재난지원금을 주기로 한 결정은 지난달 29일 당정청 협의회에서 나왔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이 자리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여당과 청와대 인사들로부터 굴욕에 가까운 공격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홍 부총리가 재정 건정성을 이유로 "지급 대상을 하위 50%로 제한해야 한다"고 고집하자 "참 답답한 소리한다"는 힐난이 쏟아졌다고 한다. 홍 부총리는 한발 물러서 하위 70%로 하되 50% 이하는 100만원, 50~70% 구간은 50만원을 차등 지급하자고 했으나 역시 묵살됐다.
이날 회의에 더불어민주당에선 이낙연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과 윤호중 사무총장, 조정식 정책위의장 등이 나왔고 청와대쪽에선 노영민 비서실장과 김상조 경제수석, 강기정 정무수석이 나왔다. "급할때 대비해 재정을 아껴야 한다"며 홍 부총리를 거든 사람은 김상조 수석 뿐이었다. 나머지는 다 "답답한 소리 한다"는 쪽이었다. 그중 전문적 수준에서 경제를 연구하거나 재정정책에 관여해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전문가들이 평생 경제관료로 일해온 재정 전문가 의견에 '당신 자꾸 답답한 소리 할 거야'하며 면박 준 것이다.
홍 부총리 수모는 이번뿐만이 아니다. 코로나 1차 추가경정예산안이 확정되기 전이었던 지난달 11일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그의 경질을 언급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국가채무비율 악화를 이유로 추경 확대에 부정적인 홍 부총리를 두고 "지금 때가 어느때인데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소리를 높였다는 것이다.
이건 익숙한 풍경이 아니다. 비상경제 시국에선 보통 경제관료들의 힘이 쎄진다. 외환위기와 함께 출범한 김대중 정부 초창기때가 그랬고 2004년 신용카드사태때 그랬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골머리를 앓던 이명박 정부 초창기때도 그랬다. 외환위기 당시 초대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낸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회고록에 따르면 시중 은행 살생부를 만들때 청와대에서 전화 한 통화 걸려오진 않았다. 살생부를 들고 가자 DJ는 딱 두마디 했다고 한다. "평가는 공정하게 했소? 그럼 원칙대로 하시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상대로 "대통령이라고 다 아는 것 아니잖습니까?"라고 말하고도 잘리지 않았다. 윤증현이 세게 말하면 MB가 받아주는 식이었다고 한다. DJ나 MB는 전문가를 알아보고 위임하는 용인술이 있었다.
코로나 사태는 최소 외환위기 이상 경제 후폭풍을 몰고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과거와 달리 지금은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위기를 재단하고 이곳저곳 틀어막고 응급 수술도 해야 할 경제와 행정 전문가 말이다. 자리로 보면 홍남기 부총리가 비상경제체제의 실무 컨트롤타워를 장악해야 한다. 지금 대통령이 비상경제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있지만 막후에서 움직이는 것은 부총리를 위시한 전문가 집단이어야 한다. 대통령은 최종 결정만 하면 된다.
홍남기 부총리는 컨트롤타워는 커녕 여권으로부터 말귀 못알아듣는 '사오정' 취급을 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홍 부총리의 처신이 달라져야 한다. 그는 긴급재난지원금 회의에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최종 보고서에 부대의견으로 자신의 반대의사를 명기했다고 한다. 그게 뭔가. '나는 반대했다. 잘못돼도 난 책임 없다' 뭐 이런 뜻인가. 경제부총리 정도 되면 국정이 잘못 굴러가는 것을 직을 걸고 막을 책임이 있다. '저는 반대입니다만, 여러분의 뜻이 정 그렇다면...' 이건 과장의 처신이지 장관의 처신일수 없다. 소신이 관철될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래서 정책 결과에 책임질수 없다면···물러나는게 옳지 않겠나. 왜 비전문가들에게 그 굴욕을 당하면서 부대의견 따위를 달고 있느냐 말이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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