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노태우 정권, 헝가리 수교 위해 1억2500만 달러 건네
입력 2020-03-31 15:58 

동구권 개방 시점에 맞춰 '북방외교'를 펼쳤던 노태우 정권이 지난 1989년 헝가리와 수교하기 위해 1억2500만 달러를 건넨 사실이 31일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이날 외교부가 공개한 1988∼1989년 비밀 외교문서에 따르면 정부는 1988년 8월 헝가리 정부와 협상을 갖고 2억5000만 달러 규모의 은행차관을 헝가리 측에 제공하는 데 합의했다. 양국은 그러면서 이에 대한 약속을 50% 이행했을 때에 수교를 하기로 명시했다.
이어 이 해 12월 14일 외환은행과 산업은행 등 8개 은행이 헝가리 중앙은행에 1억2500만 달러 규모의 차관을 제공한다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그에 따라 한국은 이듬해 2월 동구권 국가 중 헝가리와 최초로 수교를 맺었다.
정부는 당시 이러한 차관을 포함해 '헝가리 측에 미화 6억5000만 달러에 달하는 경제협력을 제공한다'는 내용을 명문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나머지 금액은 ▲직접투자 자금지원 2억 달러 ▲연불수출(외상수출) ▲전대차관 2500만 달러 ▲대외경제협력기금 5000만 달러 등이다.

헝가리와의 수교 협상 과정에서 경제협력 자금 규모가 구체적으로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아울러 한국이 차관을 제공한 뒤에야 수교가 가능한 상황이었다는 점도 새롭게 확인된 사실이다.
당시 헝가리와의 협상을 담당한 협상팀 보고서에 따르면 헝가리가 1988년 7월 열린 최초 회의에서 요구한 경협자금은 15억 달러였다. 한국은 4억 달러를 제공하겠다며 맞섰다. 이후 헝가리는 10억 달러, 8억 달러로 차츰 요구액을 낮췄고 8월에 가서야 6억5000만 달러로 합의한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가 수교 과정에서 북한을 크게 의식한 정황도 외교문서에 나타나 있다. 양국은 1988년 8월 상주대표부 설치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으나 북한 9·9절(정권수립일)에 헝가리 대표단이 방북해야 하는 점을 고려해 발표를 9월 13일로 미뤘다고 돼있다.
또 합의 사흘 전인 8월 23일에 김일성의 아들이자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평일이 주헝가리 대사로 부임해 헝가리 정부가 신임장을 제정한 사실도 고려된 것으로 확인됐다.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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