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불행의 터널 끝은 어디에` 스페인, 공주 죽음 이어 질본 본부장 `양성`판정…확진자 수 中넘어
입력 2020-03-31 07:49  | 수정 2020-03-31 09:43

비 내린 29일(현지시간) 수도 마드리드 중심가 그란 비아에서 한 할머니가 마스크를 쓴 채 텅 빈 거리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출처=Manuel Revilla 트위터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판데믹(COVID-19 대유행)이라는 불행의 터널 끝은 어디일까. 차라리 오늘이 가장 불행한 날이기를 바라는 스페인에서 하루 하루 고통과 좌절의 기록이 나오고 있다. 지난 주말 유럽 왕족으로는 처음으로 스페인 공주가 사망한 데 이어 이번에는 한국의 '질병관리본부장' 격인 질병통제국장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공군 수송기가 쉬지 않고 날아 중국산 의료 장비를 실어온 날, 스페인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발원지인 중국을 넘어섰다.
30일(현지시간) 스페인 코로나19 전체 확진자 수(총 8만5195명)이 발원지인 중국(총 8만2198명)을 넘어섰다./출처=미국 존스홉킨스 의대
스페인은 지난 25일(현지시간) 코로나19 사망자가 발원지인 중국을 넘어선 데 이어 30일에는 확진자도 중국을 넘어섰다./출처=스페인 보건부
30일(현지시간) 스페인 보건부는 코로나19 전체 확진자 수가 총 8만5195명이라고 밝혔다. 하루 사이 6398명이 늘어난 결과다. 이날 부로 스페인 확진자 수는 발원지인 중국의 공식 통계상 확진자 수(총 8만2198명)를 넘어섰다. 사망자 수도 총 7340명으로 7000명을 돌파했다. 하루 사이 812명이 더해진 결과로, 스페인에서는 지난 28일 이후 매일 800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있다.
스페인 질병통제국 사령탑 역할을 하며 대국민 브리핑을 해온 페르난도 시몬 국장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정부가 30일 발표했다. 29일 화상 브리핑(사진)을 했던 시몬 국장이 30일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출처=보건부 트위터
이런 가운데 정부는 그간 질병통제국을 지휘하며 대국민 브리핑을 해온 페르난도 시몬(57) 국장이 1차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이날 밝혔다. 지난 20일 고열 등 의심 증세를 보인 시몬 국장은 병원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29일 또 다시 고통을 호소해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이날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스페인 공영 방송 RTVE 등이 전했다. 다만 정부는 시몬 국장이 질병통제국 사령탑 역할을 하는 상징적 존재라는 점에서 확진이라는 표현 대신 1차 양성 판정이며, 음성 판정도 받았던 만큼 최종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는 입장을 내놓았었다고 현지 엘 파이스 신문이 전했다.
앞서 26일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치료받던 마리아 테레사 부르봉 파르마(86) 공주가 코로나19 투병 중 숨을 거뒀다. 영국 서열 1위 찰스 왕세자도 확진 판정을 받기는 했지만 유럽 왕족이 중국발 코로나19로 사망한 이번이 처음이어서 국제 사회 안타까움을 샀었다. 공주는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의 사촌이다.
지난 주말 중국 상하이 공항에서 긴급 의료 용품을 실고 있는 스페인 A400M 수송기./출처=EFE·엘 파이스
스페인은 지난 25일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발원지인 중국을 앞지른 데 이어 30일부로 확진자 수마저 중국을 넘어서게 됐다. 이날 30일 오후 4시 30분, 수도 마드리드 인근 토레혼데아르도즈 공군 기지에는 A400M 수송기가 중국산 진단 키트와 마스크, 호흡기 등 의료 용품 총14톤(t)을 실고 돌아와 고단한 여정을 마쳤다고 엘 파이스가 전했다. 이 의료용품은 지난 25일 살바도르 이야 보건부 장관이 "중국에서 4억3200만 유로(약 5760억8900만원) 어치 의료 장비를 사들이기로 했다"면서 수입품 목록으로 제시한 마스크 5억5000만 개와 호흡기 세트 950개, 의료용 장갑 1100만 개, 진단 키트 550만 개 중 일부다.
수송기는 지난 28일 사라고사 공군기지를 떠나 중국 상하이를 향했고, 급유 등의 이유로 러시아와 라트비아를 거쳤을 뿐 33시간 동안 쉬지 않고 날았다. 그만큼 상황이 긴급하게 돌아가고 있는 탓이다. 보건부가 수입한 '저질' 중국산 코로나19불량 키트 때문에 사회가 들썩인 순간도 잠시, 사망·확진자가 폭증하는 것은 물론이고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과 방역·이동제한 단속에 나선 마드리드 경찰 500여 명까지 줄줄이 코로나19에 감염되는 등 피해를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됐기 때문이다.
의료 시스템이 사실상 붕괴되는 등 날마다 속수무책인 가운데 이날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장례 비용 인상금지'조치를 발표했다. 발표 시점은 30일이지만 실제로는 지난 14일 이후로 시간을 거슬러 '소급 적용'된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쏟아져 나오면서 때아닌 특수를 맞은 장례식 대행업자들이 가격 부풀리기를 하는 바람에 가뜩이나 돈줄이 끊기고 있는 사람들이 가족 장례를 치를 비용마저 댈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는 자영업자와 영세기업이 '사회보장비용 지불 불이행'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했으며, 31일 각료회의 후 발표할 예정이라고 이날 엘 파이스가 전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파산 위기에 직면한 소규모 업체 등에 대해 이들이 반드시 내야 하는 사회보장비용 채무를 사실상 감면해주는 효과를 가진다. 정부는 이밖에 프리랜서 등에 대한 추가 지원책을 마련 중이다.
앞서 26일 의회는 정부 제안을 받아들여 국가봉쇄령을 오는 4월 11일까지 2주간 연장했다. 또 정부는 지난 주말, 시민들에게 '2주간 출근 금지령'도 긴급 발표했다.
응급 병실로 바뀐 스페인 마드리드 대형 박람회장 이페마(Ifema)모습./출처=엘 파이스
유럽 내에서는 각 국 실제 사망자가 정부 발표보다 더 많을 것이라는 비판이 계속 나오고 있다. 스페인의 경우 코로나19 진단을 받지 못하고 병원이 아닌 요양원에서 사망한 사람은 코로나19 사망자로 산정하지 않는다. 프랑스도 유사하게 병원에서 사망한 사람을 기준으로 통계를 작성하며, 영국에서는 지난 5일까지만 해도 병원의 사망 요인 통계 목록에 코로나19가 분류 기준으로 명시되지 않았다고 엘 파이스가 전했다.
확진자도 더 많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세비야대학 안토니오 두란 과르데노 분석수학 전공 교수는 지난 23일 교내 연구소 블로그 등을 통해 수학적 통계 분석방법을 활용하는 경우 자국 내 실제 코로나19감염자 수는 보건부 발표치보다 10배 정도 더 많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과르데노 교수는 게시글에서 "국내 실제 감염자를 추정하려면 사망자 수 뿐 아니라 사망자의 연령·지역별 분포, 확진 후 사망에 이르는 시간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면서 "국내 통계는 그런 분류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정부 발표도 정확하다고 볼 수 없다"는 지적을 했다.
그는 스페인 코로나19 치명률이 높은 데 대해 "경미한 증상을 보이거나 무증상 감염자들이 코로나19 진단 테스트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으로 실제 감염자는 많겠지만 대신 치명률은 더 낮을 수도 있다"면서 "한국의 통계가 매우 신뢰할 만하다. 정교하게 분류돼있기 때문에 참고할만한 방식"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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