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고국 도움 절실합니다"…67만명 LA한인 짓누르는 코로나공포
입력 2020-03-29 15:00 

"연방정부도, 주정부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믿을 곳은 고국밖에 없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미국 전역이 융단폭격을 당하면서 미국 내 최대 한인 밀집지역인 로스앤젤레스(LA) 교민들의 공포가 극에 달하고 있다.
제주도 인구를 뛰어넘는 67만명이 거주하는 이곳에서 한국 교민들은 최소한의 개인 방어장비인 마스크 확보에 애를 먹고 있어 대한민국의 도움을 절박하게 호소하고 있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10년 전 LA법인 담당으로 나가 있는 교민 윤모 씨(44)는 29일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현재 집단 공포에 사로잡힌 LA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그는 "지금은 뉴욕주가 가장 심각한 감염세를 보이고 있지만 미국 내 2차 감염폭발 사태가 LA에서 발생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라며 "여기에 갑작스러운 이동제한 명령이 떨어지면서 한국 교민들은 제대로 마스크도 확보하지 못한 채 집안에 갇혀 공포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심지어 휴교령 조치가 단행됐을 때는 자녀들은 물론 학교 선생님들도 소지품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허둥지둥 학교를 빠져나오는 등 준전시 상태에 돌입했다고 한다.
현지매체인 LA타임스는 이동제한 명령으로 사회적 불안이 점증하면서 내 가정과 점포에 어떤 위해가 가해질지 몰라 총기를 사려는 이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LA 대한민국총영사관(김완중 총영사)에 따르면 미국 내 한인 인구는 총 254만7000여명으로 이 중 LA에 가장 많은 67만6000여명(27%)이 거주하고 있다.
이는 제주도 전체 인구(67만876명)을 뛰어넘는 규모다. 이어 뉴욕에 42만 1000여명이 거주 중으로 LA와 뉴욕 내 한인이 전체 미국 내 한인의 43%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내 한인 사회와 한국 간 각종 물류 수송을 담당하는 윤 씨는 "LA에 부모와 친척 등을 둔 한국 국민들이 워낙 많다보니 최근 LA에 각종 생필품을 보내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18만명이 가입한 한 포털 사이트 A카페에서 미국 가족에 마스크를 보내는 경험담이 화제를 모았다. 작성자는 직계 가족으로 발송인을 엄격히 제한하고 최대 월 8매 한정, 발송 과정서 가족관계 서류 제출 등 지나친 규제로 진땀을 흘려야 했던 당시 상황을 성토했다. [사진 = 네이버 A카페 글 캡처]

그는 LA 내 엄격한 이동제한 통제 속에서 당장 다음주 수요일부터 진행되는 대한민국 총선 재외국민 투표 일정이 교민사회에서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고도 했다.
세계 최대 한인 밀집지역인 LA에서 마스크 장비를 확보하지 못한 채 7000여명이 넘는 유권자들이 투표장으로 이동하는 상황 자체가 '넌센스'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최근 전세계 23개 재외공관에 대해 투표 중단 결정을 내렸지만 워낙 많은 한인이 거주하는 LA에 대해서는 4월 1일부터 예정대로 재외선거 업무를 진행할 예정이다. 문제는 정부가 LA 교민들의 재외선거를 강행키로 하면서도 마스크 지급 등 적극적 방역대책을 취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LA총영사관 측은 교민들에게 △마스크 등 개인 위생·방역 물품 착용 또는 소지 △유권자 상호간 사회적 거리(2m 이상) 유지 △투표소 입구 및 출구에 비치된 손소독제 이용 등 6개 수칙을 공지했음에도, 정작 마스크 지원책은 내놓지 않았다.
윤 씨는 "심지어 LA총영사관 직원들조차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으로 알고 있다"라며 "만약 늦지 않았다면 LA의 재외선거가 이뤄지는 4월 1일부터 6일 동안 고국에서 마스크가 긴급 공수돼 투표장에서 지급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현재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LA를 포함한 주 전체에서 향후 8주 간 전체 주민의 56%인 2600만명의 인구가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5월말까지 LA에 전례없는 셧다운 조치가 단행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 교민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방역물품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그는 "지금 아마존 사이트에서 마스크 주문을 하면 도착일이 4월 말로 나온다"라며 "부인과 함께 투표권을 행사하고 싶어도 마스크가 없어 다음주 투표장에 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어 그는 "4월 초 LA 내 재외선거가 어찌보면 현지 교민들에게 방역물품을 전달하는 효과적인 플랫폼이 될 수 있다"라며 "67만명의 교민들이 5월 말까지 안전하게 버틸 수 있도록 한국 정부와 비영리단체 등의 방역물품 지원이 신속하게 이뤄지기를 바라는 현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한편 정부는 최근 보건용 마스크의 해외 발송 규제를 완화해 미국 등 타지에 가족과 유학생, 파견직원을 보낸 가정과 회사들의 마스크 보내기 사례가 늘고 있지만 규제 수준이 너무 높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예컨대 A회사가 미국에 있는 파견 중인 임직원의 안전을 위해 보건·수술용 마스크를 지원하고 싶어도 발송인이 부모와 자녀, 배우자로 한정돼 보낼 수 없다. 설령 직계존비속이 보내더라도 한 달을 기준으로 최대 8장밖에 허용되지 않는다.
또 이를 발송하기 위해 우체국을 방문할 때는 사전에 발급한 주민등록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를 보여줘 직계 여부를 확인받아야 한다.
윤 씨는 "미국 주요 지역이 셧다운으로 인해 물류 배송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라며 "한국에서 직계가족이 마스크를 보내주더라도 각 지역별 물류 상황에 따라 수 주일이 소요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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