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핫이슈] 물의 빚고 기소된 與인사들의 총선 출마 러시, `후안무치`가 시대정신?
입력 2020-03-23 09:14 
[사진 = 연합뉴스]

사회적 물의를 빚거나 비리 의혹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여권 인사들이 4·15 총선에 잇따라 출마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조국 전 법무장관 아들의 허위인턴 증명서를 발급해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22일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사표를 던졌다.
열린민주당은 더불어민주당 출신인 무소속 손혜원 의원과 정봉주 전 의원이 주도하는 비례대표 정당이다.
최 전 비서관은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검찰이 제대로 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으면 일상을 언제든지 자의적으로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모든 시민이 느꼈을 것"이라며 "더 이상은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전 비서관은 이어 "검찰의 행태를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 언론을 통해 언론개혁의 절박성도 체감했다"며 "(검찰과 언론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두축으로 남을 수 있도록 저의 경험과 지식을 최대한 쏟아붓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포함해 여러 조치를 강구하겠다고도 했다.
최 전 비서관은 검찰 기소 후에도 사퇴하지 않고 50일 넘게 버티다가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 입후보를 위한 공직자 사퇴 기한인 16일 돌연 검찰을 향해 "날치기 기소"라고 비난하면서 사의를 표명해 출마 가능성이 점쳐져왔다.
부동산 투기의혹 때문에 민주당 출마를 접은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도 열린민주당으로 옮겨 이날 출마를 선언했다.
김 전 대변인은 "(청와대 대변인 시절) 대통령을 물어뜯거나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증폭시키는 기사가 너무 많았다"며 "(언론개혁을 위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다"고 다짐했다.
앞서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여권 인사들도 줄줄이 민주당 경선을 통과하며 지역구 출마 채비에 한창이다.
황운하 전 울산 경찰청장은 대전 중구,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은 전북 익산을, 임동호 전 민주당 최고위원은 울산 중구에 각각 도전 중이다.
황 전 청장은 김기현 전 울산시장 수사에 미온적인 경찰관들을 인사조치하고, 김 전 시장 측근 수사를 진행해 선거에 영향을 미친 혐의를 받고 있다.
한병도 전 수석은 2018년 2월 송철호 시장의 당내경선 경쟁자였던 임동호 전 민주당 최고위원을 만나 공기업 사장 등 고위직을 제안하며 출마 포기를 권유한 혐의를 받고 있다.
물의를 빚거나 비리 의혹으로 기소된 사람들의 출마를 가로막는 규정은 없다. 재판에 넘겨져도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기 때문에 출마는 가능하다.
하지만 정권 비리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여권 인사들의 출마는 자칫 검찰 수사를 조롱하고 국가의 근간인 법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더구나 정치혁신을 위해 청년세대와 여성들을 적극적으로 공천하겠다는 여권의 약속이 공염불에 그친 상황에서, 정작 법의 심판대에 서야 할 사람들이 공복으로 나서는 것은 유권자들을 얕잡아보는 행태나 다름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에서 갈파한 것처럼, 아무리 이치에 맞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그 말을 하는 화자가 '윤리' 부재로 도덕성을 의심받는다면 사람들을 설득하고 힘을 이끌어낼 수 없다.
공직자는 불법과 비리 의혹에 연루될 경우 공직에서 물러나 근신하는 것이 일반적인 도리다. 그것이 장삼이사와 다른 공직자의 몸가짐이자 처신이다.
그런데도 여권 인사들이 사과와 자숙은 커녕 자신들에게 쏠린 따가운 여론을 무시한 채 출마를 강행하는 것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염치없는 짓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영역에서 후안무치한 사람들이 성공했음을 지적하며 "후안무치는 시대 정신"이라고 꼬집은 바 있는데, 이들의 행태가 그런 경우가 아닐까.
이들의 출마는 검찰의 남은 수사와 법원 재판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우려스럽다.
"검찰 날치기 기소"를 외치는 이들이 선거에서 당선될 경우 검찰과 법원이 이들의 눈치를 보고 부담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피고인 신분인 이들이 당선된 뒤에 유죄 확정판결을 받을 경우도 문제다. 그러면 다시 재보궐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중복선거에 따른 사회적 부담과 비용은 누가 책임질 지 궁금하다.
물론 이들의 입장에선 검찰 수사로 실추된 자신들의 명예와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은 심정이 자못 클 것이다.
자신들은 반듯한 길만 걸어왔는데, 검찰이 자신들을 흠집내고 만신창이로 만든데 대한 원망과 분노 또한 가슴 속에 끓어오를 수 있다.
그렇다면 정권 관련 의혹을 수사했다는 이유로 미운 털이 박혀 인사 불이익을 받고 좌천된 검사들과 경찰들의 억울한 심정은 오죽할 지도 헤아려보라.
조국 전 장관이 과거 '대한민국에 고한다'에서 진솔하게 고백했듯이, 진보개혁 진영 사람들은 자신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도덕적 우월감부터 버리고 냉정하게 민심을 살펴야 한다.
지지층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인 채 대중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대중의 말을 듣고 또 들어야 한다.
국민은 교화와 훈육의 대상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여권 인사들이 국민의 엄중한 심판을 피하려면 이제라도 출마를 포기하고, 겸허한 자세로 자신과 주변부터 둘러보기 바란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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