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대구산 제품 더는 보내지 말라네요" 판로 막힌 대구산단
입력 2020-03-22 13:42 

"대구에서 만든다는 이유로 더는 보내지 말랍니다."
서대구산업단지에 입주한 섬유업체는 경기도 한 거래처로부터 당혹스러운 통보를 받았다.납품 날짜에 맞춰 트럭이 출발한다고 연락했더니 대구산 제품은 필요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업체 대표가 하소연하려고 찾아간 이웃 공장도 사정이 비슷했다.수도권뿐 아니라 가깝게는 경남과 부산에서조차 서대구산단 업체와 거래 중단이 속출했다.
서대구산단 내 침구 생산 업체는 거래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상황인데도 경영난에 허덕인다. 코로나19 사태로 실물경제가 휘청이면서 전통시장과 쇼핑몰 등에 외상으로 판매한 대금이 좀체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거래처는 물건을 회수해가도 괜찮다며 미안함을 표했으나 거둬온다고 한들 대체할 판매처가 없다.
사회적 거리 두기 확산으로 인한 매출 저하도 서대구산단을 엄습했다. 급식소와 식당에 김치를 판매하는 업체는 일주일에 이틀만 생산시설을 돌리는데도 냉장창고가 빼곡하다. 업체 대표는 코로나19 위기가 언제 끝날지 몰라 폐업까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김치공장 맞은편 유통업체는 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경북 도내 산단 한 곳으로 물류 거점을 줄이면서 문을 닫았다. 인근에 자리한 학용품, 문구 도매상은 초등학교 개학이 거듭 미뤄지면서 창고에 재고만 쌓여 간다.여유 공간이 없어 실내화를 공짜로 주겠다고 여러 학교에 전화를 돌리는데도 찾아오는 이가 없다.

2500여개 중소기업이 들어선 서대구산단은 소상공인과 근로자 1만4000여명의 터전이다. 무역과 섬유 업종 비중이 높은 편인데 입주업체 100곳 가운데 64곳꼴로 비제조업 분야에 속한다. 중국 원자재 수입과 미국·유럽에 완성품 수출이 모두 막히면서 산단 조업률은 10%대로 떨어졌다. 입주기업 대부분이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이라 긴 불황을 견뎌낼 '기초체력'이 취약하다. 한 사람이라도 확진자가 나오면 공장 가동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어 감염병 걱정도 해야 한다. 보건용 마스크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탓에 면이나 얇은 일회용 재질로 만든 마스크를 쓰고 일하는 근로자가 허다하다. 그마저도 여분이 부족해 귀걸이가 늘어지고 얼굴에 닿는 면이 해졌는데도 버리지 못하고 몇 날 며칠을 쓰는 근로자가 적지 않다.
서대구산단관리공단은 업체 애로를 대구시에 전달하고 공동구매로 마스크 확보에 나섰다. 서대구산단관리공단 관계자는 22일 "산단 입주업체들이 전반적으로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어려운 것 같다"며 "업체들이 줄도산을 우려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그는 "원자재 수급이 안 되고 판로는 막히고 자금 흐름까지 얼어붙었는데 감염병 예방까지 해야 해 업체들 어려움이 첩첩산중이다"며 "적극적인 자금지원을 절실하게 요구하는 현장 목소리가 높다"고 덧붙였다.
[대구 = 우성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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