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지옥이 온다…한 달만 문 닫으면 안될까" 금·美국채도 던진 월가 `구조대는 없다`
입력 2020-03-19 11:46  | 수정 2020-03-19 12:21
"한 달만 문 닫으면 안될까…"2주 안에 네 번째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된 18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관계자가 추락하는 주가 전광판을 지켜보며 두 손을 모으고 있다. 당분간 딜러들의 절규섞인 표정은 볼 수 없게 된다. NYSE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23일부터 거래소를 폐쇄하고, 전자거래만 유지하기...

"지옥이 온다, 이대로는 자본주의가 작동할 수 없다. 한 달만 문 닫으면 안될까" 서킷브레이커 발동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또 다시 1단계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지난 9일과 12일, 16일에 이어 2주 만에 네 번째다.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 판데믹(COVID-19·코로나19 대유행병) 시대 '뉴 노멀'인 셈이다.
18일 저녁 유럽중앙은행(ECB)가 '7500억 유로(약 1030조원) 규모 판데믹 긴급 부양책'을 발표하면서 선물시장에서 다우존스 지수가 500포인트 오르는 등 약간의 반전이 있지만 시장 급등락이 큰 '코로나 장세'에서 불안감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하루 전날 17일, 미국판 재난기본소득이 담긴 재무부의 1.2조 달러 규모 '코로나 재정' 발표에도 불구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랑해온 미국 증시는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이날 오전 11시30분께 열린 트럼프 대통령의 '중대한 기자회견' 을 기점으로 증시 대표 3대 지수가 급격히 낙폭을 키우면서 1단계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돼 시장이 15분간 마비됐다.
거래 재개 후 우량주 중심 다우존스30지수(-6.30%)는 1만9898.92포인트를 기록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1월 수준으로 돌아갔다. 대통령이 자신의 경제 치적으로 내세운 '다우존스 2만 포인트'장벽이 무너진 결과다.

미국 월스트리트 증권가는 중국 코로나19에 대한 공포와 불안 속 유동성 함정에 다가서고 있다. 이날 18일 월스트리트의 전설적 투자거물 빌 애크먼(53)은 CNBC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지옥이 오고 있다. 지금 당장 증시를 일시 폐쇄해야 한다. 이 방안을 선택하지 않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대로 미국은 끝날 것이다"면서 1달간 증시 폐쇄를 주문했다. 애크먼은 칼 아이컨과 라이벌인 '행동주의 투자자'로 이름 날렸던 퍼싱스퀘어 홀딩스 창립자다.
애크먼은 또 "우리의 자본주의는 18개월 간의 셧다운 상태로는 도저히 작동할 수 없다. 다만 증시가 30일간 셧다운하면 자본주의가 돌아갈 것"이라면서 증시 폐쇄가 최선책임을 강조했다. 그가 언급한 18개월은 미국 방역 당국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한 미국 내 코로나19판데믹 최소 확산 기간이다.
중국발 코로나19 판데믹 공포가 미국 경제를 휩쓴 가운데 마스크를 쓴 한 시민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앞을 지나고 있다. 18일(현지시간) 미국 증시는 네번째 1단계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돼 15분간 거래가 마비됐다. [출처=게티이미지·AFP·CNBC]
월가에선 주식 매매 타이밍을 돌러싸고 혼란도 만만치 않다. 애크먼과 달리 또 다른 투자거물 빌 밀러(70)는 같은 날 18일 CNBC인터뷰에서 "지금은 절호의 구매 찬스이며 이례적인 기회"라면서 "그간 미국 성인들의 삶에서 4가지 큰 구매 기회가 있었고 이번은 5번째"라면서 주식 매수 의견을 냈다. 그가 언급한 매수 기회로서의 '폭락장'은 첫 번째로 1973~1974년, 두 번째 1982년, 세 번째 1987년, 네 번째 2008~2009년이다. 밀러는 헤지펀드사 빌밀러파트너스 창립자다.
다만 유동성 함정 유려가 끊이지 않는다. 각 국 중앙은행과 정부가 '구조대'로 등장해 빅스텝(0.5%포인트) 금리인하·코로나 긴급재정을 통해 시장에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금융시장을 떠받치는 실물 경제가 이제 막 악화일로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미국 투자분석업체 어필리에이츠 창립자인 롭 아르노씨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인터뷰에서 "지금 뉴욕 증시는 사재기로 화장지가 동난 가게와 같다"면서 "안전자산으로 통하는 금·은 가격마저 무너진 것은 이게 바로 유동성이 공포 속으로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으로 통하는 금과 미국 국채마저 내던지듯 팔아 현금으로 바꾸고 있다. 18일 미국 10년물 국채금리 수익률(1.226%)은 전날보다 2.53% 떨어졌다. 코로나19 공포감 탓에 사람들이 국채를 팔자 가격이 떨어진 결과다. 채권 수익률이 떨어진 것은 채권 가격이 하락했음을 의미한다. 같은 날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4월물도 전날보다 3.1%떨어졌다. WSJ에 따르면 '월가의 공포지수'인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지수(VIX)가 18일 한 때 10%정도 급등한 85포인트 선까지 오르기도 했다. VIX는 2008년 11월 금융위기 당시 80.74포인트로 최고치를 찍었었다.
18일 오전 11시30분(현지시간)께 열린 트럼프 대통령의 `중대한 기자회견` 을 기점으로 증시 대표 3대 지수가 급격히 낙폭을 키우면서 1단계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돼 시장이 15분간 마비됐다. 최근 기자회견을 자주 여는 트럼프 대통령도 뉴욕 증시 구조대가 되지는 못했다. [출처=백악관]
18일 뉴욕 증시 붕괴는 실물 경기 상황이 반영된 결과다. 다우존스는 대장주인 글로벌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17.92%)과 카드업체 아메리칸익스프레스(아멕스·-14.82%) 등이 지수 하락세를 부채질 했다. 보잉은 지난 2018~2019년 두 차례 '737max 기종 전원추락 사망사고' 악재가 사그라들지 않는 가운데 올해 각 국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하늘 길을 봉쇄하자 그나마 들어왔던 비행기 제조 주문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관광업계와 항공업계가 도산 위기에 몰리는 바람에 보잉의 앞날은 갈수록 어둡다.
아멕스 카드는 소비심리 위축 우려 탓에 폭락했다. 중국발 코로나19탓에 수많은 사람들이 바깥 활동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 실직 위기에 내몰린 탓이다. 웰스파고투자의 스콧 렌 글로벌시장 수석전략가는 "11년간의 미국 장기 호황 동안 특히 최근 호경기를 이끌어온 것은 소비자들이었다"면서 "코로나 때문에 소비자들은 집에 들어 앉아 돈을 쓰지 않으려 하고 있으며 대통령 등의 발표는 소비 심리 회복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을 낸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2016년 대선 표밭이 됐던 '러스트 벨트'(미국 중서·북동부 산업지대) 중 자동차 제조업의 심장인 디트로이트에서는 코로나 확산과 이에 따른 판매량 위축을 이유로 공장이 속속 문을 닫으면서 일자리 대란이 예고됐다. 18일 GM(18일 주가 -17.32%)과 포드(-10.18%), 피아트크라이슬러 (FCA·-9.20%)도 3월 30일까지 생산을 중단한다고 발표한 데 이어 같은 날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은 직원 1명이 코로나 양성반응을 보여 가동이 중단됐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북미지부 최고경영자(CEO)는 "소비 심리 위축 탓에 이달 판매량이 작년 3월 대비 15% ~ 20%줄어들 것이고, 4월은 50%급감할 것 같다"는 전망을 냈다고 이날 CNN이 전했다.
전 세계 호텔 140만 객실을 보유한 메리어트 그룹(18일 주가 -15.19%)은 수 만명 정리해고를 검토 중이다. 그룹 대변인은 "최근 코로나 급속 확산에 따른 관광업계 위기 탓에 부분적으로 호텔 폐쇄에 들어갔으며, 이에 따라 직원 수만 명이 해고될 수 있다. 해고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앞서 16일 케빈 해셋 트럼프 정부 전 백악관 경제자문위 위원장은 "전 세계 경기침체 가능성은 100%"라면서 "3월 미국인 일자리가 사상 최다인 100만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21세기 들어 미국 경제 침체기 최대 일자리 손실은 2009년 3월(-80만개)·2월(-74만3000개)·1월(78만4000개) 순이다.
대형주 중심S&P500(-5.18%·2398.10포인트)도 별 수 없이 하락했다. 미국 대형 은행들이 기업 등에 대한 자금 공급을 위해 자사주 매입(buy back)을 중단한다고 선언한 여파가 이어지면서 시티은행(-9.49%)이 폭락했고, 유가가 18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글로벌 석유사 엑슨모빌(-10.02%)도 곤두박질 쳤다. 18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24.4% 추락한 배럴당 20.37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 가격은 지난 2002년 2월 이후 18년 만에 가장 낮다.
기술주 중심 나스닥(-4.70%·6989.84포인트)도 지난 2018년 1월 2일 이후 처음으로 6000선으로 무너졌다. 중국발 코로나19 속 온라인 쇼핑 기대감 속에 아마존(+1.23%)과 이날 2020년형 아이패드 프로(iPad Pro)와 맥북 에어(MacBook Air) 등 신제품을 깜짝 선보인 애플(-2.45%)이 그나마 선방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시의 '코로나19 비상사태 선언'에 따라 결국 공장 가동이 힘들게 된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16.03%)가 추락했고, 마이크로소프트(-4.21%)도 하락세를 보이면서 나스닥 지수도 급락 마감했다.
1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발표하는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과 옆에서 이를 쳐다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출처=EPA]
'코로나 장세'에서는 서킷브레이커가 지난 9일 처음 발동됐다. 이전을 통틀어 1997년 이후 23년 만이다.
서킷 브레이커는 정규장에서 증시 급락에 따른 혼란을 막기 위해 거래를 일시 중단시키는 제도다. 지난 1987년 10월19일 미국 다우존스 지수가 22% 급락한 '블랙 먼데이'를 겪으면서 이후 런던·도쿄·홍콩 등 주요 증시가 차례로 무너진 아픈 경험을 토대로 도입됐다.
서킷브레이커는 3단계로 이뤄져 있다. 1단계는 S&P 500지수가 7%이상 하락하는 경우 발동돼 15분간 거래가 중지된다. 2단계는 미국 동부시간 오후 3시25분 이전에 해당 지수가 13%이상 급락하는 경우 발동돼 거래가 15분간 중단된다. 3단계는 해당 지수가 20%이상 폭락하는 경우 거래일의 나머지 시간 동안 거래가 중단된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시간이 약'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중국발 코로나19 치료제가 나오지 않는 한 정부와 중앙은행의 돈 풀기가 불안을 해소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17일 스티븐 므누신 재무부 장관이 증시 거래시간 단축 가능성을 언급했다. 앞서 필리핀에서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자국 증시를 무기한 폐쇄했다가 19일 재개했으나 개장 직후 24%추락하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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