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근거없이 구간 정해 `세금 중과`…전문가 "조세법정주의에 어긋나"
입력 2020-03-18 17:45  | 수정 2020-03-18 20:04
◆ 아파트 공시가 급등 ◆
정부가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발표하면서 시세 9억원 이상 주택을 중심으로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격 반영률) 목표치를 정하고 가격을 집중적으로 끌어올렸다고 밝혔다. 이 가격대 주택의 공시가격이 저가 주택보다 시세를 덜 반영하고 있어 가격을 더 끌어올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3년간 아파트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따져본 결과, 주택 가격대별로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아 이 같은 정부 주장은 근거가 없었다. 결국 특정 가격대와 지역에 대해서만 국민적 공감대나 법적 근거도 없이 세금 부담을 집중적으로 올리는 '세금폭탄'을 던진 셈이어서 앞으로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이미 일각에선 정부의 이런 움직임이 조세법정주의(과세 요건과 조세 행정 절차를 엄격하게 법률로 규정하도록 하는 원칙) 등 헌법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나온다. 헌법 제59조는 "조세의 종류와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정부는 특정 금액대 공시가격을 올림으로써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등 각종 세금의 부과 기준을 자의적으로 올린 셈이 됐다. 특히 공시가격은 세금뿐 아니라 기초노령연금 수령자 결정을 포함해 복지·행정 등 60개 항목에서 정책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어 문제가 더 커진다.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시세 9억원 이상을 위주로 올랐다. 시세 9억~15억원은 70%, 15억~30억원은 75%, 30억원 이상은 80% 현실화율 목표를 설정하고 현실화율이 낮은 주택의 공시가격을 집중적으로 끌어올렸다.

그런데 작년 아파트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오히려 가격대별로 67~69% 수준에서 비슷하게 분포돼 있었다. 예를 들어 3억원 미만 아파트 현실화율은 68.6%이고, 15억원 이상 30억원 미만 아파트 현실화율은 67.4%였다. 30억원 이상 아파트는 오히려 69.2%로 가장 높았다.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현실화율이 구간별로 달라 균형 있게 조정한 것이 전혀 아니라는 뜻이다.
정부는 이에 대해 장기 로드맵상 궁극적으로는 형평성을 맞추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높은 가격의 아파트부터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높인 후 시차를 두고 낮은 가격으로 정책 범위를 넓혀간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부 정책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2년밖에 남지 않은 현 정부가 임기 중 저소득층이 가진 저가 주택에 대해서도 '현실화율 80%'같이 높은 가중치를 두고 세금폭탄을 때릴 가능성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조세저항 등 여러 이유 때문에 정책 방향이 바뀔 가능성도 높다. 결국 올해와 내년 정도에 일시적으로 고가 주택을 가진 국민에 대해서만 세금폭탄을 터뜨린 후 다시 원점 회귀하는 등 정략적인 목표가 작용한 것으로 해석하는 전문가가 많다.
실제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부의 생각이 지나친 '행정편의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무리한 정책이 공시가격 안정성과 객관성을 침해해 헌법에 어긋나 향후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일규 법무법인 조운 변호사는 "세율 조정은 국회 등 동의를 엄격히 거치도록 돼 있는데 공시가격 현실화율 제고 정책은 견제 장치가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시지가를 올릴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지도 않고, 또한 공시지가 인상이 부동산 가격 안정이란 효과를 가져다주지 않는 상황에서 이렇게 과도하게 올리는 것은 헌법의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며 "또한 행정의 예측 가능성, 신뢰성이 사라지는 부작용도 있다"고 꼬집었다.
[손동우 기자 / 나현준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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