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각국 "코로나, 백신보다 인공호흡기가 더 중요"…공급업체들은 주가 폭등
입력 2020-03-18 13:20 
지난 2월 중국 우한시 스포츠센터에 임시 마련된 감염환자 치료병원 상황. 그 어느 환자 침대 근처에도 자동·수동 인공호흡기 시설이 보이지 않고 있다. [AP = 연합뉴스]

"마스크도, 백신도 필요없다. 무조건 인공호흡기부터 확보하라."
코로나 19 대재앙 앞에서 전세계가 '인공호흡기' 확보 전쟁에 돌입했다.
확진자 치료 과정에서 인공호흡기 부족으로 대규모 사망자를 낳은 이탈리아의 의료시스템 붕괴를 목격한 각국 정상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국민 치료를 위한 재고 확보에 나선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 증시에서 인공호흡기 글로벌 공급업체인 독일 드래거를 비롯해 한국업체까지 주가 폭등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매일경제가 17일(현지시간) 마감한 미국과 유럽 주요국 증시에서 인공호흡기 제조사들 주가를 확인한 결과 독일의 세계적 공급사인 드래거가 전날 대비 9.27% 급등한 것을 비롯해 미국의 GE헬스케어(6.31%), 스웨덴 예팅에(Getinge·9.06%) 등 핵심 제조사 주가가 일제히 상승했다. 심지어 한국 내 제조사인 멕아이씨에스까지 18일 한국 증시 개장 직후 곧바로 29.86% 상한가로 직행했다. 독일계 드래거의 경우 지난달 50유로 수준이었던 주가가 최근 50% 이상 급등해 77유로대를 형성하고 있다.
코로나19 진단키트나 백신 제조사가 아닌 인공호흡기 제조사에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는 이유는 바로 미국과 유럽의 '인공호흡기 확보전쟁'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7일(현지시간) 각 주지사들과 화상회의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인공호흡기 확보에 나서라고 지시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자체 시뮬레이션을 통해 코로나19의 확산을 방치할 경우 미국 내에서 최대 2억 명이 감염되고 170만 명이 사망할 수도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또 미국 존스홉킨스병원은 "중국 후베이성 사망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체 감염자에서 85%가 의학적 치료가 필요없이 치유될 수 있지만 나머지 15%가 의학적 치료가 필요하고, 특히 5%는 인공호흡기 처치가 필요한 중증환자"라고 분석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CDC기 추산한 최대 2억명을 기준으로 5%에 해당하는 1000만명의 환자에 인공호흡기 처치가 필요할 수 있지만, 현재 미국 의료시설 내 확보된 인공호흡기는 6만2000개 수준으로 파악된다. abc뉴스 등 미국 매체들은 "6만개가 넘는 인공호흡기 인프라가 평시 의료시스템에서는 결코 적은 편이 아니지만, 코로나19 확진자 중 중증환자가 급증할 경우 수요 대비 턱없이 부족해진다"고 염려하고 있다.
급기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자국에 생산기지를 둔 자동차 제조사들에 자동차가 아닌 인공호흡기를 제작해달라고 지난 16일 요청했다. 인공호흡기 대당 가격은 한화 6000만원 가량으로 어지간한 고급 세단 가격과 맞먹는다. 영국 토종 기업인 롤스로이스와 다이슨 등이 현재 긴급 인공호흡기 제작 방안을 검토 중이다.
마치 시민들이 대형마트에서 생활필수품 사재기에 나서는 듯 미국과 유럽 각국이 '인공호흡기 사재기'에 나서는 이유는 바로 중국 후베이성 우한과 이탈리아 북부지역에서 관찰된 최악의 의학 참사 때문이다. 지난 9일 미국 매체 폴리티코는 이탈리아 의료진들이 인공호흡기 부족 사태로 인해 먼저 온 고령 환자에게 처치를 못하고 생존율이 높은 젊은 환자에게 우선권을 주는 윤리적 선택을 하고 있다고 보도해 충격을 줬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코로나19 자국민 중증환자 치료에 대비해 인공호흡기 재고 확보전에 나서면서 세계 공급사들의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 독일 드래거(9.27%), 스웨덴 예팅에(9.06%), 한국 멕아이씨에스(29.86%) 등의 최근 시황. [사진 = 야후 파이낸스]
'의학적 타살'에 가까운 이 비정상적 상황이 자국에서 벌어지지 않도록 백신 개발 노력 이상으로 인공호흡기 확보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의 언론 통제로 아직 정확한 사실관계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중국 우한에서 초기 천문학적 사망자가 나왔던 이유도 바로 인공호흡기 부족 때문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단적으로 중국 영화감독 고(故) 창카이와 그의 가족 사망사례는 우한 내 인공호흡기 부족 실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창카이 감독은 사망 전 유서에서 자신의 부모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사망했다고 통탄했다. 본인도 시설이 열악한 우한 내 황파의원이라는 곳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지난 2월 14일 사망했다.
코로나19 감염환자 치료에서 인공호흡기 처방의 중요성은 한국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코로나19 환자가 심한 폐렴 상태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인 오명돈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난달 26일 대언론 브리핑에서 "내가 이 분야에서 30여년 넘게 환자를 보는데 (코로나19) 폐렴은 그간 본 폐렴과 매우 다른,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며 "그 중 하나가 환자는 폐렴이 있는데도 별로 심하게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진이 폐 사진을 보면 하얗게 변해서 깜짝 놀라는데 환자는 별 증상이 없다. 그런데 콧줄로 산소를 공급하고 안정시키면 회복이 된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중앙임상위원회 발표와 확진자 급증으로 의료시스템이 붕괴된 우한시 현실을 종합해보면 폐렴으로 전이돼 자가호흡이 어려워진 환자들에게 기본적인 인공호흡기 처방만 이뤄져도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는데, 중국 우한시는 인공호흡기 부족 사태로 인해 대규모 사망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중국은 인공호흡기 부족으로 인해 사망피해가 커졌다는 외부 평가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칫 이 문제가 시진핑 국가 주석의 리더십에 흠집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인공호흡기 치료가 코로나19 중증환자 치료에 별 효과가 없다"는 비상식적인 연구결과까지 발표될 정도다.
중국 우한 화중과학기술대 연구팀은 85세 우한 출신 남성환자의 부검 결과를 발표하며 폐 섬유화가 일어나는 사스·메르스와 달리 코로나19 환자들은 폐 손상으로 점액이 새는 삼출성 병변이 심해 폐 안이 점액으로 가득 차게 된다고 밝혔다. 이를 토대로 연구팀은 "폐 안에 점액이 가득 차게 될 경우 아무리 인공호흡기 등으로 산소를 공급해도 소용이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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