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황 부진이 이어지던 철강, 석유화학 등 경기순환업종의 시름이 코로나19의 글로벌 확산과 국제유가 폭락으로 깊어지고 있다.
다만 중기적으로 유가 폭락이 원가 하락으로 작용할 수 있고, 각국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경기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는 부양 정책의 수혜를 기대할 수 잇다는 의견도 있다.
1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날까지 KRX에너지화학지수는 16.53%, KRX철강지수는 18.12% 각각 하락했다. 특히 국내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 늘어나기 시작할 무렵인 지난달 중순부터는 두 업종지수의 급락세가 이어졌다.
이번주에는 국제유가 폭락이 경기순환업종의 주가를 짓눌렀다. 지난 주말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추가 감산 합의에 실패하고 증산 치킨게임에 나설 조짐을 보이면서 9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거래일 대비 24.59% 폭락한 배럴당 31.13달러에 마감됐다. 간밤에는 전일의 폭락에 대한 반발 매수세가 유입되며 10% 넘게 급등해 배럴당 34.36달러까지 올랐지만, 연초 63.27달러와 비교하면 여전히 반토막 수준이다.
특히 정유주가 국제유가 급락에 가장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 미리 사둔 원유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장부상 손실을 기록하게 되기 때문이다. 노우호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지난 2월 이후 유가 급락으로 올해 1분기 SK이노베이션과 S-Oil의 합산 재고손실은 3283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외에도 손익분기점에도 못 미치는 정제마진과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수요 쇼크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만 중기적으로는 유가 급락이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전우제 흥국증권 연구원은 사우디가 지난 주말 감산 합의 도출에 실패한 뒤 공식 원유판매가격(OSP)을 배럴당 6달러 낮춘 데 대해 "S-Oil은 중동산 원유 비중이 0~100%에 달하기에 정제마진이 배럴당 5.4~6달러 개선되는 것으로 계산된다"며 "사우디가 발표한 4월 OSP는 5월부터 실적에 반영되겠다"고 말했다.
비슷한 이유로 납사분해설비(NCC)를 바탕으로 플라스틱을 만드는 석유화학업종도 국제유가가 폭락한 직후인 전일부터 주가가 상승했다. 이날 롯데케미칼은 전일 대비 2000원(1.09%) 오른 18만5000원에, 대한유화는 800원(0.87%) 상승한 9만2900원에 각각 거래를 마쳤다. 두 회사는 전일에도 각각 6.71%와 5.14%의 급등세를 보였다.
다만 철강업종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는 모습이다. 유가 폭락으로 직접적인 원가 절감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데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각국 정부의 부양책의 수혜도 확실하지 않은 탓이다.
김현태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철강 업황 부진이 장기화되고 특별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다 보니 시장에서는 중국 경기 부양책에 기대를 걸고 있다"며 "그러나 과거 사례를 점검해 본 결과 올해 부양책이 단행되더라도 철강업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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