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봉준호 "아버지가 어부라고 와인스타인에게 거짓말했다"
입력 2020-03-05 15:03  | 수정 2020-03-05 15:04
봉준호 감독과 배우 틸다 스윈턴(오른 쪽)이 `설국열차`에 얽힌 에피소드를 털어놓고 있다. [사진 = BFI 트위터 캡처]

"(생선 나오는 장면을 편집하려는 와인스타인에게) '이건 제 아버지한테 바치는 장면이에요. 우리 아버지가 어부다'라고 말했죠. 완전 거짓말이었죠."
최근 영국영화협회(BFI)가 운영하는 복합공간 BFI사우스뱅크에서 열린 '설국열차' 질의응답 시간에서 봉준호 감독(51)이 '하비 와인스타인의 추억'을 털어놨다. 와인스타인은 최근 미국 뉴욕 지방법원에서 3급 강간 및 1급 범죄적 성폭력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을 받은 미국의 영화 제작자로 2014년 '설국열차' 북미 배급을 담당했다. 당시 그는 전체 영화 분량 중 25분을 편집하려는 시도로 봉 감독과 마찰을 빚은 바 있다.
'설국열차'에는 열차 내 반란을 진정시키려는 진압군이 도끼로 생선 배를 가르는 장면이 나온다. 봉 감독은 "생선 냄새가 너무 세서 촬영 현장에서는 힘들었지만 촬영감독과 나는 그 장면을 무척 좋아했다"며 "와인스타인이 그걸 잘라내려고 해서 거짓말을 했다"고 밝혔다. 봉 감독이 어부인 아버지에게 해당 장면을 바치려고 했던 것이라고 말하자 와인스타인은 "왜 빨리 말하지 않았느냐"며 "가족이 제일 소중한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2017년 작고한 봉준호 아버지 봉상균은 한국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다.
BFI 펠로우십을 수상한 배우 틸다 스윈턴과 작업을 함께 한 전 세계 영화 감독 등 동료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BFI 트위터 캡처]
이날 간담회에는 '설국열차'에서 메이슨 총리로 나온 틸다 스윈턴(60)도 자리했다. 스윈턴은 "그런데도 (와인스타인이) 25분 분량을 잘라냈다"며 "우리도 나중에 아카데미 스크리너로 보내진 버전을 보고 알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에 봉 감독은 "25분이 편집된 버전의 시사회가 파라무스 뉴저지에서 열렸는데 다행히도 점수가 낮게 나왔다"며 "너무 많이 편집해서 내러티브가 죽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사회 관객의 혹평을 본 와인스타인이 무편집본으로 가자는 본인 주장을 지지할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이어 봉 감독은 "그런데 와인스타인 씨는 '점수가 낮군. 더 자르자'고 했다"며 예상치 못한 반응에 아연실색했다고 얘기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설국열차'는 북미에서 리미티드 릴리즈(소규모 배급)하게 됐지만 디렉터스 컷으로 개봉했다"며 "그분 입장에서는 우리에게 벌을 준 것이었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해피엔딩이었다"고 회상했다.
봉준호 감독과 배우 틸다 스윈턴(오른 쪽 두 번째)이 `설국열차`에 얽힌 에피소드를 털어놓고 있다. [사진 = BFI 유튜브 캡처]
봉 감독은 스윈턴이 지난 2일(현지시간) BFI 펠로우십을 받는 현장에도 함께했다. BFI 펠로우십은 영화와 텔레비전 문화발전에 공헌한 사람에게 1983년부터 수여돼 왔다. 봉 감독과 스윈턴은 '설국열차' '옥자'에서 협업했으며 일부 외신에서는 '기생충' HBO 드라마 버전에서 스윈턴이 주연을 맡을 것이라 내다보기도 한다. 스윈턴은 "영국에서도 '설국열차'가 개봉하면 정말 해피엔딩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창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