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사소한 오해가 반한감정으로…베트남 `#한국사과하라`의 오해와 진실
입력 2020-03-05 12:57 
베트남 내 한국인 관광객 격리를 둘러싸고 최근 현지 여론이 악화한 가운데 베트남에 격리된 한국인 270여명을 지원하기 위한 정부 신속대응팀이 5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격리 첫날은 열악했어요. 심리적 압박을 받고, 먹을 것도 제때 안 주고···"(2월 26일 다낭에서 격리된 한국인 귀국자들 발언)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각 정부의 공격적 입국제한 조치로 인해 상호 국민감정이 상하는 현상이 불거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달 말 베트남 다낭에서 발생했다. 한국인 20명이 강제로 격리됐다가 이틀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엉뚱하게 베트남 청년들의 반한감정을 자극하는 소재가 된 것. 강제격리 당시 겪었던 두려움을 복귀 여행객들이 언론에 소개하고 이를 한 방송이 '자물쇠 잠근 병동서 감금생활' '빵 몇 개' 등의 자막과 함께 내보내자 감정이 상한 베트남 청년들이 이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캡처해 올리며 '#20명의 한국인이여, 거짓말을 멈춰라' '#베트남에 사과하라' 등의 해시태그 운동을 시작했다.
베트남 청년들 사이에서 확산 중인 반한 해시태그
페이스북에 올라온 영어 및 베트남어 비판글을 종합하면 격리 후 돌아온 한국인 여행객들이 발언한 부실한 식사 혹은 빵 몇 개는 베트남을 대표하는 식사 대용 샌드위치인 '반미'라는 것. 베트남 청년들은 과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반미를 먹는 사진과 함께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물어보라. 이 샌트위치가 좋은지 안 좋은지를" 등의 비판글을 올렸다.
이와 함께 한국인 격리자들에게 제공된 도시락과 베트남 군인들이 막사 앞에서 먹는 열악한 도시락을 나란히 배치해 한국인 격리자들이 호사스러운 도시락을 제공받고도 불평을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베트남 군인들의 도시락과 베트남에서 격리된 한국인들이 먹었다는 도시락 사진을 비교하는 사진이 올라오며 현지 반한감정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더구나 우측 사진의 도시락이 실제 한국인 격리자들에게 제공됐는지 여부도 불분명하다.
페이스북 사용자인 기앙 민씨 "모든 나라는 저마다의 룰이 있다. 베트남 여행을 하려면 베트남 정부 룰을 따라야 한다. 반대로 격리가 싫으면 당신 나라로 떠나라. 당신 같은 사람들을 우리는 환영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현지의 거친 반응은 해당 뉴스에서 발언한 한국인 여행객들의 한국어 뉘앙스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채 자극적인 한국어 자막으로 인해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인천국제공항으로 돌아온 관광객들의 발언 취지는 베트남 정부의 열악한 격리 환경을 비판하는 데 방점이 찍혀있기 보다는, 생전 처음 겪어본 타국 격리조치에서 느꼈던 공포감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반대로 베트남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강제격리 조치를 당하고 돌아왔다 하더라도 여행객 입장에서는 동일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다낭에 격리된 20명의 한국인들 둘러싼 현지 비판 여론이 이처럼 사실과 다르게 확산되면서 급기야 베트남 주요 도시 한인회가 연합해 "한국과 베트남의 우정은 국경이 없다"는 홍보물을 만들어 배포하는 등 사태 진화에 나섰다.
지난달 베트남 다낭에서 이틀 간 격리됐다가 돌아온 한국인 관광객이 "빵 몇 개" 발언을 했다고 알려지면서 베트남 국민들이 베트남 대표 샌드위치인 반미를 시식하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속속 올리고 있다. 격리 당시 두려움을 표현한 한국인 관광객의 발언을 과대해석해 전직 ...
베트남 현지 한 교민은 "중국에 이어 갑자기 한국 대구·경북에서 코로나19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겁을 먹고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돌아온 대구·경북 거주 유학생과 근로자들이 많다"라며 "이들은 지금 군부대 시설 등에서 14일 격리에 들어간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이들 유학·근로자 가족들 입장에서는 자식들이 사활을 걸고 한국을 탈출해 격리에 들어갔는데 자국을 여행 온 한국인들이 현지 격리시설이 열악하다고 불평을 하는 듯한 모습에 감정이 격앙된 것 같다"고 전했다.
베트남 정부의 강력한 격리정책이 엉뚱하게 양국 국민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이슈로 번지면서 향후 한국 정부의 대처도 중요해졌다.
지난달 다낭 격리 사건의 경우 한국 외교부의 반발로 이틀만에 격리가 풀려 한국 여행객이 조기 귀국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자국민들의 비판여론이 커지자 베트남 정부는 자국민과 외국인 여부를 막론하고 예외 없이 더욱 강화한 2주 격리 원칙을 견지하는 분위기다.
급기야 정부는 베트남에 격리된 한국민 지원을 위해 외교부와 법무부, 경찰청 등에서 12명을 뽑아 정부합동 신속대응팀을 구성하고 5일 현지에 급파한 상태다.

이들은 방콕을 경유해 각각 베트남 하노이와 호치민, 다낭으로 흩어져 한국민에 대한 격리해제 교섭, 귀국 희망자의 귀국 지원, 애로사항 해소 등 영사 조력을 제공할 예정이다.
정부합동 신속대응팀장에 따르면 격리된 국민들은 270여명으로 주로 베트남 군 시설이나 병원시설에 배치돼 있다. 팀 리더인 견종호 외교부 공공문화외교국 심의관은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지에 계신 분들이 빨리 격리에서 해소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앞으로 들어가는 분들도 애로가 없도록 도와주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사명 한국동남아연구소 이사장은 "전염병이라는 이슈가 상생의 한·베트남 관계에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해서는 안 된다"라며 "양국 국민과 정부가 일희일비하지 않고 위기 극복을 위해 오히려 협력의 지평을 넓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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