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월 총선 때문에 감염 확산"…`중동의 우한` 이란의 뒤늦은 후회
입력 2020-03-05 10:09 
지난 4일 마스크를 쓴 한 여성이 이란 수도 테헤란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이란은 지난달 19일 첫 확진자 발생 후 2주만에 확진자가 2922명으로 급증한 것은 물론 사망자도 92명에 달하고 있다. [AFP = 연합뉴스]

"왜 2월 총선을 연기하지 않았나···"
중국에 이어 가장 많은 코로나19 사망자를 내고 있는 이란 국민들 사이에서 이 같은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우한발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퍼져나가는 상황에서 대규모 인파가 군집하는 2월 21일 총선 일정을 강행한 탓에 감염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는 비난이다.
정치적 이유로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중국발 항공편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아 사태가 악화했다는 지적도 쏟아지고 있다.
이란 보건부는 4일(현지시간) 정오 현재 코로나19 확진자가 586명(전날 대비 25% 증가) 더 늘어 모두 2922명이 됐다고 밝혔다.

사망자는 15명 증가해 지금까지 92명이 숨졌다. 이란에서 지난달 19일 첫 확진·사망자가 발생한 뒤 2주 만에 확진자는 3000명, 사망자는 100명에 육박했다.
지역 별 분포를 보면 이란 내 31개 주 가운데 30개 주에서 확진자가 나와 지역사회 사람 대 사람 감염이 최고조에 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4일 내각회의에서 코로나19가 사실상 이란 전국으로 확산했다고 시인했다.
마이클 라이언 세계보건기구(WHO) 긴급대응팀장도 3일(현지시간) "코로나19가 이란에 자리 잡은 상황"이라며 "이란 의료진이 의료 장비가 충분하지는 않다고 걱정"이라고 밝혔다. 이란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달 29일부터 확진자 일일 증가수가 205명, 385명, 523명, 835명 등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열악한 공중보건 인프라스트럭처 상황에서 전국적 감염이 만연하자 이란 시민들 사이에서는 확산 초기 정부의 허술한 대응이 문제였다는 탄식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현지매체 보도 등을 통해 쏟이자고 있다.
특히 지난달 21일 임기 4년의 의원 290명을 뽑는 총선을 예정대로 강행한 게 뼈아픈 실책이라는 지적이다,
이란은 지난달 19일 곰(Qom) 지역에서 첫 확진자가 나왔다. 해당 인사는 중국을 수차례 다녀온 60대 무역업자로 확진 수일 뒤 사망했다.
첫 확진자 발생 후 잠잠했던 코로나19가 2월 21일 총선이 치러진 뒤 불과 2주만에 전국 31개주 중 30개주에서 확진자가 나오는 전염병 창궐 상태가 된 것이다.
이란 내 감염 상황을 실시간으로 트위터에 올리고 있는 한 이란인은 5일 "길란주에서 간호사 두 명과 의사들이 확진 판정을 받은 뒤 결국 사망했다"며 의료진 감염에 따른 의료시스템 붕괴 가능성을 걱정했다. 이 사용자를 비롯해 수 많은 이란 시민들이 "코로나가 처음 이란에 들어왔을 때 정부는 총선을 중단한다는 선언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범죄였다"라고 탄식했다.
심지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서방세계와 언론이 코로나19 공포를 앞세워 이란 총선을 방해하고 있다며 국민들의 투표 참여를 적극 독려했다.
하메네이는 "코로나19에 대한 부정적인 선동이 몇 달 전부터 시작되더니 선거를 앞두고 더욱 커졌다"며 사상 유례 없는 코로나19의 전염력을 도외시한 채 코로나19 이슈를 반미감정을 자극하는 불쏘시개로 활용한 것이다.
하산 로하니 정부가 사태 초기 중국발 항공편 통제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이란 정부는 지난 1월 말 중국에서 이란으로 들어오는 직항편에 대해서만 입국 금지 조치를 취했다. 이로 인해 다양한 경유 항공편으로 중국에 체류했던 이들의 유입이 계속됐다는 것이다.
실제 이란 내 첫 확진자인 60대 무역업자도 1월 말 직항편이 막히자 경유편으로 중국과 이란을 오가다 감염이 됐다고 이란 방역당국 스스로 시인한 바 있다.
현지 매체들에서는 매주 금요일 전국적으로 열리는 이란의 대예배가 일주일만 더 빨리 중단됐어도 전국적 확산을 피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란 테헤란을 비롯해 전국 주요 도시에서 매주 금요일 열리는 대예배는 단순한 종교의식 이상으로 지도부의 메시지를 국민에 설파하는 정치 집회 성격이 강하다. 2월 19일 첫 확진자가 나오고 그 주에 예정됐던 금요일 대예배가 아무 변경 없이 진행됐다. 이후 이란 정부는 뒤늦게 지난주에 들어서야 대예배 취소 결정을 내렸다.
[이재철 기자]

<이란 2월말 총선 전후 코로나19 확진자 흐름 / 괄호 안은 사망자 수>
△2월 20일 : 확진자 2(2)
▲2월 21일 전국 총선 실시
△2월 23일 : 확진자 43(8)
△2월 25일 : 확진자 61(12)
△2월 27일 : 확진자 141(22)
△2월 29일 : 확진자 388(34)
△3월 2일 : 1501(66)
△3월 4일 : 292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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