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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②] `찬실이는 복도 많지` 김초희 감독, 멈추고 나니 보인 것
입력 2020-03-05 07:01 
김초희 감독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 프로듀서에서 감독으로 변신하기까지의 일을 회상했다. 제공|우상희 스튜디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양소영 기자]
(인터뷰①에 이어)김초희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뭔가를 표현하고 싶은 욕망을 품었다. 그 시작은 글이었다. 처음엔 소설가가 꿈이었다고.
김초희 감독은 대학교 때 습작하던 시기가 있었다. 친구에게 내가 쓴 글을 보여줬는데 어디서 본 글 같다더라. 그게 쓰리고 아팠다. 그러고 나니까 글 쓰는 게 두려웠다. 그 즈음에 비디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영화를 접하게 됐다. 처음엔 꽂힌 순서대로 보다가 어느 순간 영화 취향이라는 게 생기더라. 홍콩 영화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김초희 감독은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영화 ‘집시의 시간을 만났고, 영화 감독의 꿈을 키웠다. 그는 그걸 보니까 영화 감독이 되고 싶더라. 이렇게 엄청난 고난이 있을지 모르고 시작했다”며 감독을 꿈꿨지만 재주는 없고 배워야 할 것 같아 돈을 모아 프랑스 유학을 갔다. 그곳은 실기를 하는 곳이 아니라 이론 공부를 가르치는 곳이었다. 공부도 취미가 없고 즐겁지 않더라. 영화의 탄생지라는 정보 하나만 품고 갔는데, 친구들이 밟혀서 돌아올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해 공항에서 프랑스로 갔는데 친구들이 배웅을 나왔어요. 전 울지 않았는데, 친구들이 울더라고요. 도착하고 얼마 안돼 잘못 왔다는 걸 알았는데 친구들 생각을 하니 못 돌아가겠더라고요. 돈을 벌면서 하는 유학 생활은 고달팠지만, 영화를 많이 볼 수 있어 좋았죠. 다양한 종류의 영화를 쉽게 접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많은 영화를 봤어요.(웃음)”
김초희 감독은 멈춤의 시간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제공|우상희 스튜디오

프랑스에서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프랑스로 촬영 온 홍상수 감독이 불어 가능한 사람을 찾았고, 김초희 감독은 홍상수 감독과 함께하며 영화 현장의 매력을 알게됐다.
김 감독은 영화를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했는데 그 현장이 너무 즐거웠다. 너무 재미있었다. 영화를 잘 만들어내는 훌륭한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훌륭한 스태프로 영화를 같이 만들어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과정에서 고충도 있지만, 사람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이 컸다”고 말했다.
하지만 약 7년 동안 홍상수 감독의 프로듀서로 살아온 김초희 감독은 어느 순간 ‘번아웃 됐다. 그는 일의 총량이 있지 않나. 번아웃이 왔다. 일을 그만둘 때는 한 가지 이유만 있는 건 아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고, 쉬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멈춰 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하던 일을 그만두고 캐나다로 갔다. 영화를 계속할까 말까 고민했다. 뾰족한 수는 없었다. 도피한 건데, 다시 한국에 돌아오고 보니까 영화 아니면 할 게 없더라. 영화를 진짜 그만둬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가 우연히 다른 영화 현장에 갔는데, 아직 영화를 하고 싶더라. 감독에 대한 나의 열망이 진짜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먼 길을 돌아왔지만 절박해지고 간절해졌다. 그런 간절함으로 시나리오를 썼다”고 고백했다.
영화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았어요. 영화에 대한 순정이 있던 거죠.(웃음) 가장 많은 애정을 쏟았고 삶의 일부지만 몰랐어요. 삶이 궁금해져야 영화를 만들 수 있는데, 그 중요한 걸 몰랐던 거죠. 멈추고 나니까 보였어요. 사람에게 중요한 것들이요. 무엇을 할까는 정해졌지만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생각하게 됐어요. 우리는 살아 있는 한 행복할 이유와 권리가 있어요. 인생을 잘 살아 내기 위해 충분히 노력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죠.”
김초희 감독이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찬실처럼, 이 시대 찬실들을 응원하고 싶다고 밝혔다. 제공|우상희 스튜디오

그런 김초희 감독의 절실함은, 5일 개봉하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강력한 서사도 없고 사건도 없지만, 개성 넘치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화면 속을 가득 채운다.
김초희 감독은 우리 영화는 서사가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그걸 메꾸기 위해 캐릭터가 중요했다. 주변의 조연들이 확실한 개성을 갖고 있다”며 사람들이 유쾌하게 영화를 봐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또한 그는 꿈이 있지만 그 과정이 안개같이 뿌연 사람들,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걸 알지만, 놓아 지지 않아서 가는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찬실이처럼 꿋꿋하게 길을 걸어갔으면 좋겠다. 누구나 찬실이가 될 수 있다. 이 시대의 찬실이들을 만나고 싶다”며 미소 지었다.
skyb1842@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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