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매물 품귀에 코로나 사태까지..서울 전세시장 패닉
입력 2020-02-28 15:56 

# 송파구 잠실에 사는 세입자 박모씨(35)는 오는 3월 전세 만기를 앞두고 집주인에게 집을 비워달라는 부탁을 받고 밤잠을 설친다. 근처 다른 전세를 구하려 부동산에 연락했지만 요즘 전세 매물이 품귀인데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집을 보는게 불가능하다고 알려왔다. 고민하는 동안 주변 전세 시세가 1억원 가까이 올라 전세금 마련도 어려워졌다. 박씨는 "계약을 연장해달라고 집주인에게 말해봤지만 집이 팔렸고 새로운 집주인이 직접 살거라 했다"며 "급한대로 월세라도 구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12·16대책 후폭풍으로 전세 매물이 귀해진데다 코로나19로 기존 전세계약을 연장하는 '눌러앉기' 현상까지 심화되면서 서울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최근 몇달 새 전세값이 최대 수억원까지 오르면서 자금 마련이 어려워진 일부 세입자들은 어쩔수 없이 반전세나 월세로 돌아서고 있는 형국이다.
28일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전국 2월 전세수급지수는 평균 157.7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8.8포인트 올랐다. 지난 2016년 11월 164.4를 기록한 이후 40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전세수급지수는 전세 수요 대비 공급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다. 이 수치가 100(균형값)을 넘으면 전세 공급이 수요보다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역별 전세수급지수를 살펴보면 서울160.8 , 경기150.4, 인천159.2 등으로 지난해에 비해 상황이 크게 악화됐다. 지난해 2월 기준 서울의 전세수급지수는 87.5였으니 1년 만에 73.3포인트 급등한 셈이다.
매물 품귀현상에 전세값도 급격히 뛰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12·16대책이 발표된 이후 서울 전셋값은 1.03% 올랐다. 강남(2.17%), 서초(1.78%), 송파(1.28%) 등 강남3구와 학군이 뛰어난 양천(2.23%)구가 전세값 상승을 주도했다. 수도권에서는 집값 상승이 가팔랐던 수원 영통(6.09%), 용인 수지(5.57%) 등의 전세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실제로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래미안블레스티지 전용 84㎡형 전세는 지난해 10월 11억원대에서 지난달 13억원에 거래돼 석 달 만에 약 2억원이 뛰었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 84㎡형은 지난해 10월 8억원대에서 최근 10억원 선에 거래됐다.
서울 전세시장 패닉을 불러온 가장 큰 원인은 12·16대책 후폭풍으로 발생한 매물 품귀 현상이다. 지난해 하반기 교육제도 개편 여파로 전셋값이 먼저 뛰었고, 12·16 대책 이후 대출규제로 매수 수요가 전세 수요로 전환되자 전셋값 상승을 부채질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 1주택자 실거주 요건이 강화되자 보유한 집에 직접 들어가는 집주인이 많아지며 매물이 감소한 것도 한몫한다.
여기에 설상가상 코로나19 사태 영향으로 기존 전세계약을 연장하는 '눌러 앉기'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일부 집주인들은 코로나19에 대한 세입자들 우려에 기존 전세계약을 연장해주는 경우가 늘고 있다. 세입자 입장에서도 새로운 집을 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기존 전세집에 어떻게든 머물려는 상황이다.
용산에 주거형 오피스텔을 보유한 김모씨(43)는 최근 오피스텔을 처분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전세계약을 연장해주기로 했다. 지금 같은 시기에 기존 세입자에게 집을 보여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김씨는 "지금 같은 시기에 전세를 내놔도 보러 올 사람도 없을 것 같고 세입자에게도 미안해 매매 계획을 보류했다"고 말했다.
성동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사진이나 동영상만 보고 계약한다는 경우 외에는 계약이 전혀 안되고 있다"며 "지금은 전세를 내놓기도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최근 높아진 보유세 부담으로 인해 전세 만기시 보증금을 많게는 수억대까지 올리려는 사례가 나타나 세입자들이 큰 애로를 겪고 있다. 마포구의 한 신축아파트에 살고 있는 직장인 최모씨(38)는 "집주인이 전세금을 2억원 올려달라 해서 집을 나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요즘 다른 집을 구하러 다니기도 쉽지 않아 걱정이 많다"고 털어놨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본부장은 "정부가 코로나 사태 와중에도 강력한 보유세 인상 의지를 밝혔기 때문에 집주인들이 높아진 세금 부담만큼 보증금을 미리 올리고 싶어할 것"이라며 "정부 규제에서 시작된 전세가 상승과 코로나 사태로 애꿎은 세입자들만 이중고를 겪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지성 기자 / 박윤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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