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핫이슈] `코로나19` 방역실패, 5년 전 문 대통령 발언 잊었나
입력 2020-02-26 09:25  | 수정 2020-02-26 09:38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코로나 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가 국경을 넘어 확산되면서 글로벌 지구촌이 극심한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국내 확진자가 1000명에 육박하면서 예고없이 한국인 입국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코리아 포비아'가 해외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코로나19 근원지이자 세계 확산의 원천인 중국조차 "한국의 예방· 통제조치가 너무 느려 걱정된다" "한국이 중국 시험지를 베꼈는데 결과는 상반됐다"며 한국을 조롱하는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이고 있다.
확진자만 7만7000명이 넘고 사망자가 2600여명에 달하는 중국이 되레 오만한 행태를 보이고 있으니 기가 막힐 일이다.

한국이 지금처럼 세계적인 수모를 겪는 상황까지 내몰린 것은 사태 초기 중국 눈치를 보느라 신속하고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정부 탓이 크다.
"중국 전 지역에서의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는 의사협회의 숱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중국을 거쳐온 모든 외국인의 국내 입국을 허용했고, "머지않아 사태가 종식될 것"이라는 낙관론에 매달려 전문가들의 '위기경보 격상' 요구도 일축했다.
시중에선 국민들의 유일한 감염병 예방수단인 마스크가 부족해 원성이 쏟아지는데도 민관 합동으로 중국에 마스크 300만장을 제공하고 중국 반출을 묵인하는가 하면, "언론이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며 언론 탓을 했다.
첫 사망자가 나온 지난 20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영화 '기생충'팀을 청와대로 불러 짜파구리를 먹으면서 배역 맞추기 게임까지 했다.
하지만 정부가 낙관론을 편 직후부터 감염 우려에 대한 사회적인 경각심이 줄어들면서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대감염 사태로 번졌다.
집 천장에서 비가 줄줄 새는데 방 바닥만 닦는 정부의 안이하고 부실한 대응과 현실과 동떨어진 뒷북행정이 사태를 키우는데 일조한 셈이다.
뒤늦게 문 대통령이 위기 경보를 최고수준인 '심각'단계로 올리고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대구를 찾아 "위기를 반드시 극복하겠다"며 총력대응을 지시했지만 사태가 조기 수습될 지는 미지수다.
더구나 25일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이 당정청협의회 직후 "대구·경북(TK)에 최대한의 봉쇄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혀 TK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지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정부의 미숙한 대응에 따른 무더기 감염사태가 현 정권의 지지기반인 호남에서 터졌어도 이런 식으로 대응했겠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의 판단 착오와 방역 실패로 입법부, 사법부, 기업 등 대한민국이 멈춰서고 여권인사의 무책임한 발언으로 TK 민심이 일촉즉발인 상황이 빚어졌는데도 정작 국가 최고통수권자인 문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은 2015년6월15일 메르스 사태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천년민주연합 당 대표로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보건당국의 낙관론이 이번에도 틀렸다. 그런데도 정부는 책임을 부처와 민간으로 떠넘기려 한다"며 "정부 책임을 방기한 무책임에 한숨이 나온다"고 박근혜 정권을 질타했다.
또 6월22일에는 특별성명을 발표해 "국가 리더십과 위기관리능력이 지금처럼 허술했던 적은 없다. 메르스 '수퍼 전파자'는 다름아닌 정부 자신이다"며 박 대통령의 진심어린 사과를 요구했고, 26일에도 대국민호소문을 통해 "국민이 메르스와 사투를 벌이는 동안 정부는 뒷북대응과 비밀주의로 국민 혼란만 가중시켰고 컨트롤타워는 작동되지 않았다"며 거듭 박 대통령 사과를 압박했다.
당시에는 정부를 매섭게 나무랐던 현 정권이 이제 와서 총체적인 방역 실패에 대해 침묵하면서 감염자가 많이 나온 대구 신천지교회 등에 책임을 돌리려한다면 국민들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겠는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나 정세균 총리가 아닌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나서 국민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대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 본연의 책임이자 역할이다.
국민들이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지금은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한이나 대북정책, 총선 유불리 등을 놓고 복잡한 셈법을 할 때가 아니다. '오컴의 면도날'처럼 단호한 원칙과 기준이 필요하다.
'오컴의 면도날'은 14세기 영국 논리학자이자 프란치스코 교회 수도자였던 오컴 출신 윌리엄 이름을 딴 철학용어로, 다른 모든 요소가 동일할 때 더 적은 수의 논리로 설명이 가능하다면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뜻이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이번 사태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더 중요한 기준은 없다. 국민이 없으면 정권도, 국가도 존재할 수 없다.
정부가 전면전을 선포한 상황에서 이번에도 방역대책의 타이밍을 놓쳐 실기하면 사태 통제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정부는 미증유의 위기를 맞아 오직 국민만 생각하면서 선제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길이다.
[박정철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