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집값담합 단속에…단톡방 바꾸고 새 멤버 차단
입력 2020-02-25 17:18 
"옆 동네 코오롱아파트는 4억원 실거래 찍었네요. 우리도 4억원 이하로는 올리면 안 됩니다."
주부 박 모씨(41)는 24일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인근 아파트 시세를 언급했다가 '강퇴'당했다. "4억원 이하로는 받지 말자"고 한 것이 '담합'으로 적발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방장은 "정부가 앞으로 단톡방도 단속한다고 하니 '스샷(스크린 캡처)'이라도 유출되면 다 같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아파트 가격을 언급한 사람들을 줄줄이 강퇴시켰다. '24평은 3억5000만원은 받아야 한다' '앞으로 1억~2억원은 더 오른다' 등 무심코 아파트 시세에 대한 의견을 언급한 이들도 내쫓겼다. 박씨는 "그동안 단톡방에서 부동산 정보도 나눴는데 이제는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면서 "소통 창구가 막힌 느낌"이라며 답답해했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 불법 행위 조사를 전담하는 '부동산시장불법행위대응반'을 21일 본격 가동하며서 인터넷 게시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카카오톡 단톡방 등 부동산 커뮤니티가 얼어붙고 있다. 정부는 부동산 시세 형성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유튜버도 단속한다고 밝혀 부동산 콘텐츠 제작자들도 조심하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건전한 시장 질서 확립을 위한 감독은 필요하나 처벌 위주 단속은 정보의 자유로운 소통을 막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토교통부가 운영 중인 부동산시장불법행위대응반은 특별사법경찰 인력과 국세청·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파견자 등을 포함해 10~15명 내외로 구성된 부동산 조사 전담 조직이다.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에 따르면 시세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나 특정 공인중개사 중개 의뢰를 제한·유도하는 행위 등이 금지되며, 위반 시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국토부가 밝힌 부당한 시세 형성은 △온·오프라인에서 특정 가격에 시세 형성을 유도하는 행위 △특정 가격 이하로 거래하는 중개사무소를 이용하지 않도록 권고하는 행위 △공인중개사가 허위 매물을 올리거나, 의뢰인 의사와 달리 가격 조정을 담합하는 행위 등이다.
부동산 정보를 주제로 한 SNS는 비상이 걸렸다. 최근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적으면 수십 명, 많게는 1000명 이상이 모여 부동산 정보를 교류하는 게 하나의 현상이 됐다. 정부는 카카오톡 대화방이 과거 아파트 부녀회처럼 집값 담합 조장과 지역 시세 상승의 견인차 역할을 한다고 본다.
대화방에서 시세를 형성하는 듯 가격을 언급하는 행위가 실제 처벌까지 이뤄질 수 있음이 알려지자 카카오톡 대화방에서는 "단톡방 암행 단속이 있을 수도 있으니 호가 등 가격 언급은 절대 금지해 달라"는 공지문을 올렸다. 일제히 '방 이름'을 바꾸는 게 먼저 일어난 변화다. 예를 들면 '강남구 부동산' 대화방은 '강남구 맛집 탐방'이나 '강남구 교육 정보'로 바뀌었다. 일부는 신원이 확인된 사람만 받겠다며 하루아침에 단톡방 규모를 줄였다.
정부 발표 이후 방을 해체할지 아니면 폐쇄적으로 운영할지를 두고 투표해 단톡방을 아예 닫은 곳도 있다. 이용자들은 '정부가 이젠 카카오톡 대화방까지 감시하나' '민간인을 사찰하는 공산당 같다'는 등 격앙된 반응이다. 익명의 이용자는 "카카오톡 대화방을 통한 정보 공유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며 "이곳에서 공유되는 정보는 각자 판단할 몫인데 정부가 왜 간섭하느냐"고 반문했다.
대응반은 부동산 유튜브도 모니터링에 나섰다. 시세에 부당한 영향을 줄 목적으로 방송을 내보내거나 특정 지역 가격을 띄우는 행위도 단속 대상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방송이 허위 과장 광고를 일삼고, 부당하게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면 단속 대상"이라며 "미끼 매물을 소개하고 중개를 유도하면 재산상 피해를 끼칠 수 있어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스타 강사가 '특정 지역'을 찍어 인위적으로 집값을 올리고 공동 투자를 알선하거나, 중개업소와 매물을 연계해 시장을 교란시킨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 강사가 공인중개사 자격이 없으면 공인중개사법 위반 행위에 해당하며, 의뢰를 받고 특정 단지를 홍보했다면 표시광고법 위반이 된다. 그러나 유튜브 방송 단속의 가이드라인이 명확하지 않아 부동산 콘텐츠 전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부당한 시세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단속한다는 원칙만 밝힌 상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혼탁한 시장을 바로잡기 위해 정부의 관리감독이 필요하지만 지나친 '규제' 위주 관리는 소통의 자유를 막을 수 있다"며 "정부는 시장 원리에 맞게 주택 시장이 기능하도록 큰 틀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선희 기자 / 박윤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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