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産銀 성장펀드, 목표 달성 실패한 까닭은
입력 2020-02-24 17:50  | 수정 2020-02-25 00:33
KDB산업은행이 중소형 사모투자펀드(PEF) 8곳에 펀드 결성을 지원하면서 무리한 자금 조달 목표를 요구해 빈축을 사는가 하면 결과적으로 절반 이상이 목표 금액 달성에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산업은행은 통상 운용사를 선정해 펀드 조성 목표 금액 중 50% 이상을 직접 출자해주며 나머지 절반을 조달해 올 것을 요구해 왔지만, 작년엔 출자 비율을 30%대로 낮추면서 선정된 운용사들이 나머지 70%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2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은행이 선정한 성장지원펀드 미드캡·그로스캡 부문 위탁운용사 8곳 중 3~4곳이 결성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지난해 10월까지였던 펀드 결성 시한을 연말까지로 한 차례 연장해줬지만 절반 정도가 최초 목표였던 펀드 결성에 실패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산업은행이 출자 비율을 과도하게 낮춘 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앵커출자자인 산업은행은 통상 출자 비율이 50% 수준이었다. 예를 들어 운용사 A를 선정해 1500억원을 출자해주고, 민간 출자자 등 외부에서 나머지 50% 자금을 매칭(조달)해 총 3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라는 식이다. 그러나 지난해 성장지원펀드 출자 비율은 30%대에 그쳤다. 당시 미드캡은 운용사별로 1000억원을 배정하면서 펀드별 최소 결성 금액을 3000억원(출자 비율 33%)으로 요구했고, 그로스캡은 운용사별로 600억원을 배정하면서 1700억원(출자 비율 36%)을 펀드 최소 결성 금액으로 정했다.
시한을 연장해도 운용사 절반이 펀드 결성에 어려움을 겪자 산업은행은 일부 운용사에 '축소 결성'이 가능하도록 허가해줬다. 이들 운용사는 최초 목표치의 약 70% 수준으로 펀드를 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천억 원에 달하는 자금이 투자도 못해 보고 묶여 버리는 '펀드 결성 실패' 사태는 면했지만 산업은행이 출자 사업을 진행하면서 운용사들에 무리한 목표를 요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혁신창업 활성화·기업 성장자금 조달'이라는 정부 기조에 발맞춰 산업은행이 한정된 출자 재원으로 전체 펀드 조성 규모를 늘리기 위해 출자 비율을 낮추다 보니 발생한 사태라고 분석된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운용사 선정 공고가 났을 때부터 낮은 출자비율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면서도 대형 펀드 쏠림 현상으로 대부분의 신생·소형 운용사들이 펀딩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조건을 따져가며 지원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펀드 결성이 완료됐으니 문제없다고 주장했다. 출자 비율은 공모 과정에서부터 명시돼 있던 조건이고, 일부 운용사에는 축소 결성이 가능하도록 오히려 편의를 봐준 것이라는 해명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출자사업이 정책사업 주도로 이루어지던 국내 펀드 시장을 민간 주도 시장으로 전환하기 위해 출자 비율을 낮춘 것”이라며 지난해 경제 불확실성 증대 등에 따른 일부 출자 기관들의 사업지연과 일부 대형펀드에 대한 출자 쏠림 현상이 있어서 펀드 매칭에 어려움을 겪어 축소 결성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산업은행이 '결과적으로 펀드 결성이 완료됐으니 문제없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는 일부 지적도 있다. 또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은 선정된 운용사들이 민간 시장에서 구해올 수 있는 자금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민간 위주 펀드시장으로의 변화는 옳은 방향이지만 그 과정에서 시장상황을 고려하지 않아 사업 자체가 차질을 빚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국내 PEF 시장에서 일부 대형 PEF로의 '자금쏠림' 현상이 지목된다. 대체투자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PEF 시장의 전체 파이는 점차 커지고 있지만 IMM프라이빗에쿼티나 스틱인베스트 등 '조단위' 펀드를 결성하는 일부 운용사들에게만 매칭 자금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생·소형 운용사들은 자금 모집 자체가 쉽지 않고, 성장지원펀드 등을 통해 앵커 출자자의 선택을 받는다 해도 매칭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산업은행 등의 앵커출자자가 아무리 신중하게 운용사를 선정해도 이들의 펀드결성 성과를 장담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또 이는 결국 대형 PEF의 주요 투자대상인 대기업이나 벤처기업 투자자금은 넘치지만 그밖에 중소기업등에 대한 투자자금은 항상 부족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한 신생 PEF 대표는 "투자 회수가 중요한 출자자들이 트랙레코드를 보고 운용사를 선정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서도 "PEF 시장 전체 유동성은 점차 커지고 있지만 신생·소형 PEF의 자금모집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재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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