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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쇼를 두들겼던 남자, KBO 최강의 마무리가 되다 [김재호의 페이오프피치]
입력 2020-02-22 06:00  | 수정 2020-02-27 16:38
하재훈은 지난 시즌 KBO리그 세이브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사진(美 베로비치)= 김재호 특파원
매경닷컴 MK스포츠(美 베로비치) 김재호 특파원
한국 야구에서 SK와이번스 우완 투수 하재훈(29)만큼 다채로운 경력을 갖춘 선수가 또 있을까. 한때 빅리그 무대를 꿈꾸던 유망주였던 그는 지금은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마무리 중 한 명이 됐다.

커쇼를 두들긴 남자
2014년 5월 1일(한국시간) 미국 테네시주 채터누가에서 열린 채터누가와 테네시의 경기, LA다저스 산하 더블A 팀인 채터누가 선발로 클레이튼 커쇼가 나섰다. 당시 그의 두 번째 재활등판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5회까지 6피안타 2볼넷 9탈삼진 2실점(1자책)을 기록했다. 그중 두 개의 안타를 때린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하재훈이었다.
"직구 하나, 슬라이더 하나 쳤을 것이다. 2루타와 안타를 쳤다. 운이 좋았다. 슬라이더는 진짜 눈에서 사라지더라."
스스로를 "기억력이 좋지 않다"고 말하는 그이지만, 그때 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재훈은 한때 유망주였다. 2012년에는 유망주들의 올스타 게임인 퓨처스게임에도 출전했다.
2014년 그가 뛰었던 테네시에는 크리스 브라이언트, 애디슨 러셀, 알버트 알모라 주니어, 호르헤 솔레어, 제이크 아리에타 등이 뛰었다. 이들은 2년 뒤 컵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다.
하재훈은 그들과 함께하지 못했다. 손목 부상에 발목잡혔고, 2015시즌을 끝으로 미국 생활을 청산했다. 이후 일본 독립리그와 일본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거쳐 KBO리그까지 왔다.
"몸만 괜찮았다면 더 했을지도 모른다. 그게 또 한다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지만, 그때는 그렇게 됐다. 다시 기회를 얻는다면, 똑같은 결과가 아니라면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할 수 없다."

투수로 변신하다
하재훈은 2015년 중요한 결단을 내린다. 야수에서 투수로 변신을 시도한 것. 그는 단기 싱글A 노스웨스턴리그 소속 유진에서 투수로 16경기에 나와 평균자책점 2.33을 기록했다.
"손목 수술 이후 재활이 잘 안돼서 투수를 해보는게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았다. 1년 해본다 생각하고 투수를 해봤다."
쉽지는 않았다. "체력적으로 힘들다고는 못느꼈는데 팔이 아팠다. 팔이 아프니까 다른 곳에 힘이 많이 들어가 힘들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야수로 뛴 그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다시 투수를 택했다. "주위에서 모두 투수가 더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손목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태였다. (야수를 하면) 또 아플 것이고, 팔은 아직 수술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걱정은 됐지만, "못할 거 같지는 않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잘할 거 같다는 느낌은 들었다. 못한다고 생각하면 못했겠지만, 자신감을 가졌다. 안될 것도 된다고 생각하고 해야지, 안된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안된다."
투수로 변신한 그는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61경기에서 평균자책점 1.98 36세이브 3홀드를 기록했다. 세이브는 리그 1위 기록이다. 배워야 할 것도 많고, 팔에 오는 통증도 낯설었다. 그러나 열매는 달았다. "그걸로 만족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잘 버텼구나라고 말해줬다."
지난 2012년 퓨처스게임에 출전한 하재훈. 사진= MK스포츠 DB

값진 경험을 쌓다
여느 유턴파 선수들이 그렇듯, 그도 한국팀에서 생활에 대한 만족감을 숨기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버티기 힘들었다. 말도 안통하고 정가는 사람, 마음 통하는 사람도 없이 힘들었다. 여기는 그렇지 않다. 이렇게 한국말로 얘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좋다."
힘든 경험 끝에 말이 통하는 것의 소중함을 알았다. 대신 경험이라는 이름의 영광의 상처가 그에게 쌓였다. "간곳은 많다. 베네수엘라 파나마 도미니카공화국 다 가봤다." 베네수엘라에서는 관중들이 난동이 일어나면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이들을 진압하기도 했다.
한국야구에서 이렇게 다양한 배경을 경험한 이들은 많지않다. "어린 선수들의 경우 미리미리 대비를 못하니까, 대비를 못하는 상황이 오면 붕뜨기 마련이다. 그러나 경험이 많다보니 모든 상황을 예측하게 된다." 그는 경험의 가치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의 경험은 개인뿐만 아니라 한국 야구 전체에 값진 재산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웃음과 함께 "내 경험을 남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알아듣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까지는 내가 설득할 수 없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2020년 하재훈은 할 일이 많다. 프리미어12 대표팀에서 활약했던 그는 올림픽에서도 대표 승선이 유력하다. "올림픽은 우승하고 싶다. 올림픽에 우승하면 팀도 우승할 수 있을 거 같다"며 강한 열망을 드러냈다. 해외 경험이 많은 그에게 외국 타자들은 어떻게 보면 더 친근한 상대일 수도 있다. "처음부터 거부감이 없이 재밌게 했다. 원래 보던 타자들이라 공을 찔러넣기가 더 편했다."
리그 최강의 마무리 자리도 지켜야한다. 친한 사이인 이대은(kt) 오승환(삼성) 등과 경쟁이 불가피하다. 이대은은 "재훈이는 이겨야한다"며 공개적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재훈은 "대은이형이 지바 롯데에서 투수를 할 때 붙은 적이 있다. 3-0 카운트에서 커브를 던지더라"라며 둘 사이 있었던 일을 소개하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대은이형도 잘할 것"이라며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다.
페이오프피치(payoff pitch)는 투수가 3볼 2스트라이크 풀카운트에서 던지는 공을 말한다. 번역하자면 결정구 정도 되겠다. 이 공은 묵직한 직구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예리한 변화구가 될 수도 있다. 이 칼럼은 그런 글이다. greatnemo@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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