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란제리쇼` 유명 美빅토리아시크릿 몰락…결국 사모펀드에 팔렸다
입력 2020-02-21 11:49  | 수정 2020-02-21 12:04
빅토리아시크릿 란제리쇼 뮤즈로 통하던 모델 아드리아나 리마(왼쪽)와 빅토리아시크릿 핑크가 지난 해 기용하기로 한 트렌스젠더 모델 발렌티나 삼파이우(오른쪽). 빅토리아시크릿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과 사회적 다양성을 담지 못하고 시대에 뒤쳐진 결과 급격한 하락세를 타고 있다. [출처 = 모델 인스타그램]

이른바 '의느님'이 내린 몸매를 가진 여성 모델들의 란제리(속옷) 쇼로 한때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국 속옷 업체 빅토리아시크릿이 결국 사모펀드에 팔리는 신세가 됐다. 빅토리아시크릿을 거느린 모기업의 최장수 최고경영자(CEO)도 사퇴를 발표했다. 성형한 몸이 아닌 자연스러운 몸의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요즘 추세 상 사업 수지를 맞추기 어렵게 된 탓이다.
빅토리아시크릿 모기업인 L브랜즈는 20일(현지시간) 사모펀드 '시커모어 파트너스'에 빅토리아시크릿 지분 55%를 매각하기로 했다고 이날 밝혔다. 빅토리아시크릿 나머지 지분 45%는 L브랜즈가 그대로 보유하며, 지분 55%에 해당하는 매각 금액은 5억2500만 달러(약 6327억원)라고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최장수 CEO를 자랑하던 L브랜즈의 레슬리 웩스너 CEO도 결국 사퇴한다고 20일(현지시간) 밝혔다. [출처 = 게티이미지·CNN]
같은 날 매각 소식과 함께 L브랜즈의 레슬리 웩스너(82) CEO 퇴진 소식도 전해졌다. 1963년 미국 오하이오 주의 작은 옷가게 사장으로 출발한 웩스너 CEO는 유명 의류업체 아베크롬비앤드피치를 설립한 후 빅토리아시크릿과 배스앤바디웍스 등을 글로벌 기업 L브랜즈를 일궈냈다. 웩스너는 L브랜즈에서 57년 동안 CEO로 터줏대감 역할을 했고, 이 때문에 대형주 중심으로 이뤄진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 소속 기업 중 최장수 CEO로 꼽혀왔다.
L브랜즈의 빅토리아시크릿 매각 소식과 CEO사퇴는 최근 몇년 새 소비자들이 빅토리아시크릿을 외면한 결과다. 빅토리아시크릿은 1980~1990년대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매장수를 두 배로 늘렸고, 2000년대 초반에는 아시아 등 전세계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다. 화려한 보석과 속옷, 천사의 날개로 치장한 빅토리아시크릿 엔젤이 등장하는 란제리쇼는 '관음증'을 유발한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20여년 간 빅토리아시크릿의 상징처럼 통했다.
영국 런던에서 소비자들이 빅토리아시크릿의 `다양성 없는 속옷`을 사지 않겠다며 불매 운동을 벌이는 모습. [출처 = EPA·뉴욕타임스(NYT)]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토리아시크릿은 최근 4~5년새 서서히 하락세를 타다가 지난 2017년부터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2018년 12월 ABC 채널을 통해 녹화 방송된 '2018년 빅토리아시크릿(VS) 패션 란제리쇼'는 327만명이 시청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고, 매출 부진이 심각해지자 얀 싱어 빅토리아시크릿 CEO가 사임을 발표했다. 결국 지난해 5월 회사는 매년 열던 TV란제리 쇼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빅토리아시크릿의 몰락 탓에 주력 브랜드로 거느린 모기업 L브랜즈 타격도 컸다. 브랜즈 주가는 지난 2015년 말 주당 95.82달러(당해12월 31일 기준)였지만 지난 20일 기준으로 보면 23.42달러에 불과해 4년여 만에 75.56%나 가치가 떨어졌다. L브랜즈 시가총액은 2015년 290억 달러로 정점을 찍었지만 2017년을 전후해 빠르게 급감하면서 최근에는 60억 달러 밑으로 떨어진 결과 80%가 사라진 셈이 됐다.
L브랜즈가 빅토리아시크릿 지분 절반 이상 매각을 발표한 20일 WSJ와 CNBC, 워싱턴포스트(WP), CNN 등 외신은 대대적으로 빅토리아시크릿의 몰락을 다뤘다. 공통적으로 '오프라인 매출 부진·웩스너 L브랜즈 CEO의 엡스타인 스캔들·왜곡된 몸매를 강조하는 데 대한 사회적 비판' 세가지가 꼽혔다.
가장 직격탄이 된 것은 사회적 비판 속 불매운동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지젤 번천과 아드리아나 리마 등 슈퍼 모델들이 빅토리아시크릿의 뮤즈로 통하며 란제리쇼 무대를 누볐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형 모델과 입기 불편한 속옷은 '실수요층'인 여성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L브랜즈 CEO 웩스너는 미성년자 성범죄 사건으로 미국 정계에 파문을 일으킨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과의 친분이 부각되면서 소비자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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