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작은 업체서 3년 취업제한 피하다 은행行…`3쿠션 금피아` 기승
입력 2020-02-12 17:51  | 수정 2020-02-12 20:17
◆ 금감원의 편법 낙하산 ◆
금융감독원이 금융기관으로 내려보내는 낙하산은 일명 '금피아'로 불리며 오래전부터 논란이 돼 왔다. 그러던 것이 2017년 당시 채용 비리 사건이 불거지며 금피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덩달아 커지면서 낙하산 인사 관행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2016년만 해도 20명에 달했던 재취업한 금감원 퇴직자가 2017년 4명으로 대폭 감소한 배경이다. 그러나 금감원 낙하산은 당시를 저점으로 다시 슬금슬금 늘어나고 있다. 2018년 그 숫자가 9명으로 늘어난 데 이어 지난해에는 13명으로 확대됐다. 올해는 벌써 금감원 퇴직자 3명이 재취업을 했다. 사회적 비판 목소리와 함께 확 줄었던 금피아가 순식간에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금감원 낙하산들은 공직자윤리위원회 재취업 심사를 통과하긴 했다. 그러나 상당수가 저축은행·대부 업체 등 유관기관이 행선지였다는 점에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해 재취업자들의 행선지는 JT친애저축은행 사외이사, 무궁화신탁 고문, 대한저축은행 상임감사, 디에스투자증권 감사, 현대차증권 상무, 리드코프 이사 등이다. 지난달만 해도 금감원 출신은 흥국화재, 부산은행, 애큐온저축은행으로 가면서 재취업 승인을 받았다.
흥미로운 부분은 사람들 눈에 잘 띄는 시중은행으로 자리를 옮기는 '재취업 승인'은 없다는 점이다. 우리은행을 제외한 전 시중은행 감사가 금감원 출신으로 채워져 있는 현실을 설명하기 어려운 셈이다.
그 비결은 이른바 '3쿠션' 낙하산에 있다. 금감원 퇴직자가 재취업 승인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눈에 크게 띄지 않는 소규모 기관·기업에 먼저 재취업하고, 의무적으로 승인을 받아야 하는 3년이 지난 뒤에 큰 은행으로 자리를 옮기는 방식이다. 지금은 이런 3쿠션 인사가 일종의 '공식'처럼 자리 잡았다는 게 은행권의 시각이다. 금감원 퇴직자가 1차 재취업을 한 뒤 시일이 지나 2차 재취업을 하게 되면, 금감원에서 또 다른 퇴직자가 1차 재취업 자리를 다시 채우는 형태의 인사가 반복되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우리은행·하나은행의 새로운 감사 내정자가 거쳐간 자리들도 대표적인 '1차 재취업' 행선지로 꼽힌다. 신협중앙회 검사·감독이사는 사실상 금감원 출신들이 독점해왔다. 이번에 우리은행 감사로 옮기는 장 모 전 국장에 앞서 주 모 전 실장, 장 모 전 국장, 이 모 전 국장 등 금감원 출신 인물들이 이 자리를 채워왔다. 하나은행 감사에 내정된 조 모 전 국장이 대표를 맡고 있던 고려휴먼스의 직전 대표도 금감원 출신인 이 모 전 국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금감원이 국내 금융지주사들에 현직 감사들의 연임을 자제하라는 의견을 전달했다는 사실이 포착됐다. 윤석헌 금감원장의 메시지가 그대로 전달된 것이라는 후문이다. 업계에서는 감독당국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당황해하면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금감원 측에서 밝힌 표면적인 배경은 "감사들이 한 금융회사에 오래 근무하다 보면 회사 내부 인물들과 유착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감사들이 경영진을 견제하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지 않고 해당 금융회사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문제라는 게 금감원의 인식이다.
하지만 금융회사들은 금감원이 민간 회사 인사까지 관여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주장한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성이 입증된 감사까지도 반드시 교체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회사에 피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금감원이 그동안 낙하산을 관행처럼 보내왔던 만큼 금융회사들은 금감원의 실제 의도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금감원의 '인사 적체 해소'를 위한 도구로 활용하려는 저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한 금융회사 임원은 "금감원으로부터 기왕 '낙하산' 감사를 받을 것이라면 경험 많고 경륜이 많은 인물을 받고 싶다"며 "조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받아야 하는데 무조건 교체하라는 것은 엉뚱한 사람을 받게 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금융회사 임원은 "금감원이 금융회사 감사 연임에 반대 의사를 전한 것은 감사 역할 강화를 강조하는 차원이라지만 아무런 평가 없이 무조건 바꾸라는 건 다른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 최승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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