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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당 0%` 넷마블은 봐주고…`30%` 엔씨소프트는 손본다?
입력 2020-02-12 17:47  | 수정 2020-02-12 20:04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국민연금 강남사옥 앞을 한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국민연금은 주주총회를 앞두고 불명확한 기준의 블랙·화이트리스트 분류로 논란을 키우고 있다. [매경DB]
◆ 원칙 없는 국민연금 ◆
국민연금공단이 적극적 유형의 주주 활동을 할 수 있는 일반투자 기업(블랙리스트)을 발표하자 단순투자 기업(화이트리스트)으로 분류된 기업보다 오히려 배당성향이나 지배구조가 나은데도 왜 일반투자로 지정되었는지에 대한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12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지고 있는 국내 상장사는 총 313개다. 기관투자가들의 대량 주식 보유 등 공시 의무를 보다 간편하게 차등화하는 5%룰(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54조 개정안) 취지를 감안하면 국민연금은 주주가치를 향상시킬 수 있는 313개 종목에 대해 모두 일반투자로 보유 목적을 변경할 수 있었지만 56개 종목에 대해서만 변경 공시를 했다. 문제는 일반투자와 단순투자를 분류했는데 그 기준이 불투명해 납득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먼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최대주주인 공기업은 이번에 일반투자에서 모두 제외됐다. 우리금융지주, IBK기업은행 등 금융사를 포함한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강원랜드 등이 모두 단순투자로 분류됐다. 공기업군이 배당성향이 높다고는 하나 한전과 같이 작년 탈원전 정책으로 적자가 난 기업들처럼 경영진에 대해 책임 추궁을 해야 하는 곳에 대해선 국민연금이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여전하다. 이미 작년에 소액주주들은 누진세 개편안에 따른 손실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한전 경영진을 상대로 배임 등으로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였다. 우리금융지주나 기업은행보다 배당성향도 높고 최대주주가 없어 거버넌스 문제도 적은 하나금융지주, 신한지주, KB금융은 일반투자로 분류됐다.
또한 지난해 과소배당으로 지적 받은 상장사 9곳 중 8개사는 단순투자로 남은 것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국민연금은 주주총회에서 넷마블, 이오테크닉스, 대양전기공업, CS홀딩스, SBS미디어홀딩스, 심팩, S&TC, 광주신세계, 남양유업에 대해서 과소배당을 이유로 재무제표 승인 의안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남양유업에 대해 지난 1월 배당정책에서 개선이 확인돼 공개 중점관리기업에서 해제했다고 발표했지만 남양유업은 이번에도 일반투자로 분류됐다.
반면 나머지 8개사는 모두 배당성향이 낮은데도 단순투자를 유지했다. 중소형주라 국민연금이 직접 운용하지 않고 자산운용사들이 위탁운용을 하기 때문이란 해석도 가능하지만 시가총액 36위이자 게임 대장주인 넷마블이 2017년과 2019년 주총 때 모두 무배당 재무제표를 들고 나왔는데도 단순투자로 분류한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가치투자 전문으로 알려진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넷마블은 계속 배당은 하지 않고 현금을 쌓아뒀다가 시너지 효과가 불분명한 웅진코웨이 인수에 뛰어들어 주가가 부진한 상태"라고 말했다. 반면 같은 게임주이면서도 주가가 계속 우상향 추세인 엔씨소프트는 이번에 일반투자로 분류돼 적극적 주주활동의 대상이 된다. 엔씨소프트는 배당성향이 29.79%로 무배당인 넷마블은 물론이고 다른 게임주보다도 훨씬 높은데 게임 업종에선 유일하게 일반투자로 분류됐다.
증권가에선 국민연금이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 효력이 발생한 지난 2월 1일부터 5영업일 내 보유 목적 변경 공시를 해야 하는 규정 때문에 개별 종목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주요 시총 상위 기업 위주로 보유 목적 변경 공시를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이번에 5%룰이 변경되면서 기관투자가들은 시행령 효력 발생일 후 5일 내 공시를 해야 해서 자산운용사마다 부랴부랴 보유 목적 변경 공시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보유 종목이 많지 않고 기존에 기업 리서치를 충분히 해왔던 자산운용사도 보유 목적 변경 공시를 할 시간이 촉박했는데 313개 종목을 다루는 국민연금으로선 더욱 개별 기업의 배당 및 거버넌스를 들여다볼 여력이 없었다는 설명이다.
특히 국민연금은 시총 상위 200개 종목에 대해서는 인덱스 투자를 하기 때문에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그대로 가져가는 경우가 많고 중소형주에 대해서는 개별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번 일반투자로의 보유 목적 변경 공시는 시총 상위주에 집중된 경향을 보였다. 시총 50위 내에선 33개가 일반투자였으나 51~200위 중에선 일반투자 종목이 22개밖에 없었다. 시총 200위 밖 종목은 LG그룹의 광고계열사인 지투알이 유일했다.
재계에서도 국민연금이 일반투자와 단순투자를 나누는 기준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불만이 계속 나오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같은 그룹이고 배당성향도 비슷한데 현대자동차는 일반투자고 현대글로비스는 단순투자로 분류되었다"며 "국민연금이 어떤 기준으로 주주권 행사 대상 기업을 정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제림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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