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최영미 시인 "'돼지들에게' 모델은 문화예술계 권력인사"
입력 2020-02-12 08:35  | 수정 2020-02-19 09:05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유명한 시인 최영미가 오랫동안 논란이 된 시집 '돼지들에게'에 나오는 수많은 '돼지들' 중 시집을 내도록 계기를 제공한 대표적인 '돼지'가 누구였는지 털어놨습니다.

어제(11일) 마포구 한 카페에서 시집 '돼지들에게'(이미출판사) 개정증보판 출간을 기념해 연 기자 간담회에서입니다.

'돼지'의 실명을 밝힌 건 아니지만 해당 인물의 신상을 어느 정도 설명했습니다. 2005년 초판을 낸 이후 '돼지'가 도대체 누구인지를 놓고 문단에서 오랫동안 논란이 계속된 지 약 15년 만이어서 주목됩니다.

최영미는 간담회에서 "2005년, 그 전쯤에 어떤 문화예술계 사람을 만났다. 그가 시 '돼지들에게'의 모델"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 인물을 "문화예술계에서 권력이 있고 한 자리를 차지한 인사", "승용차와 기사가 딸린 차를 타고 온 사람" 등으로 묘사했습니다.


당시 이 인사를 만난 시기는 2004년쯤로, "성희롱까지는 아니지만, 여성에 대한 편견이 담긴 말"을 듣고 매우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밖에 약간 더 자세한 설명이 있었으나 보도를 원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최영미는 "그를 만나고서 개운치 않은 기분이어서 며칠 동안 기분이 안 좋았다. 불러내고서 뭔가 기대하는 듯한, 나한테 진주를 기대하는 듯한…"이라며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마라'는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고 말했습니다.

또 "그 사람은 이런 시를 쓰도록 동기를 제공한 사람이고, 첫 문장을 쓰게 한 사람"이라고도 했습니다.


운동권 출신 최영미는 그를 유명하게 한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운동권의 당시 몰락과 새로운 출발을 향한 다짐을 상징했다면, 세 번째 시집 '돼지들에게'를 통해 이른바 '진보의 위선'을 고발한 바 있습니다.

최영미는 1987년 대통령선거 기간 이른바 진보 단일후보였던 백기완 후보 캠프에서 활동할 당시 많은 성추행 사건이 있었다고도 폭로했습니다.

그는 "그때 당한 성추행 말도 못한다"면서 "선거철에 합숙하면서 24시간 일한다. 한 방에 스무명씩 겹쳐서 자는데, 굉장히 불쾌하게 옷 속에 손이 들어왔었다"고 전했습니다. 또 "나에게뿐만 아니라 그 단체 안에서 심각한 성폭력이 있었다"면서 "학생 출신 외에 노동자 출신 등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 다 봤고, 회의를 느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가 이런 성폭력을 '선배 언니'에게 상담했지만, 그 '언니'는 "네가 운동을 계속하려면 이것보다 더 심한 일도 참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최영미는 "한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어느 교수"와 술자리를 갖고 택시를 함께 탔을 때 자신을 "계속 만지고 더듬고 했던" 일도 있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이번 개정증보판에는 착한 여자의 역습', '자격' 등 신작 시 3편을 추가했습니다.

신작 시 중 'ㅊ'은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대상인 고은 시인과의 소송과 연관이 없지 않아 원래 시에서 제목 등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최영미는 "(소송이) 다 끝났지만, 상대측을 자극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 밖에 최영미는 최근 이상문학상 거부 사태에 대해 "뿌듯하다. 미투가 없었다면 그게 가능했을까"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문단이 정말 깨기 힘든 곳인데, 여성 작가들이 용기를 내서 문제를 제기했다는 건 굉장히 고무적이었고, '세상이 조금은 변화하는구나, 약간은 발언하기 편하도록 균열을 냈구나, 내 인생이 허망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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