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알록달록 차려입은 `정의의 여신상`...싱가포르 아트위크 주목
입력 2020-02-02 11:56  | 수정 2020-02-02 14:01
잉카 쇼비나레 `Justice for All`(모두를 위한 정의)

법원이나 관공서 근처에서 본 정의의 여신상 같은데 묘하게 다르다.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지구본이 놓여 있고, 옷은 엄숙한 곳에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형형색색의 꽃무늬 드레스다. 팔도 점선과 계단형 등 다양한 무늬로 장식돼있다. 오늘날 아프리카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는 나이지리아계 영국인 작가 잉카 쇼니바레의 설치 미술 'Justice for All'(모두를 위한 정의)다. 지난 11~19일에 진행된 예술축제 '싱가포르 아트위크'에서 많은 관람객들에 주목받았다.
싱가포르 아트위크는 매년 1월 싱가포르 국립예술위원회, 싱가포르 관광청, 싱가포르 경제개발청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행사로 올해가 8회째다. 이 작품을 비롯해 전시, 영화, 퍼포먼스 등 100여개 예술 관련 프로그램을 마련해 싱가포르 시민들, 관광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싱가포르인도 아닌 영국인의 작품이 사람들 눈길을 사로잡은 이유는 싱가포르의 특징인 '문화적 다양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계 76%, 말레이시아계 14%, 인도계 8% 등 다양한 인종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뤄 사는 다문화국가 싱가포르에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정의의 여신상을 만들고자 했다는 게 작품 의도다.
작품 'Justice for All'을 설명하고 있는 잉카 쇼비나레
작품이 입고 있는 분홍색 의복은 이를 드러내는 대표적 장치다. 영국 중앙형사재판소 건물 꼭대기에 있는 조각가 F.W. 포메로이의 정의의 여신상을 본떴지만, 황금빛으로 치장한 원 모델과 달리 이 작품은 이른바 '더치 왁스 바틱'이라 불리는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다. 18~19세기 네덜란드가 식민지 인도네시아의 전통 옷감 '바틱'을 모방해 생산했고, 아프리카에서 큰 인기를 얻어 '아프리카 천'으로 더 잘 알려진 옷감이다.
아프리카인과 영국인으로서 정체성을 모두 갖고 있는 작가는 이 옷감을 제국주의 시절 어두운 역사의 산물로 바라보길 거부한다. 최근 기자와 만난 그는 "나는 식민지 파워를 상징하는 아이콘을 갖다가 해체하는 걸 좋아한다"며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간의 긴밀한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바틱을 썼다"고 설명했다.
몸체의 문양도 마찬가지다. 바틱의 '우단 리리스(가랑비)' 무늬가 모티프지만 국제 무역을 통해 네덜란드, 영국, 말레이시아, 인도, 중국 등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해 차용했다. 몸 위에 머리가 아닌 지구본이 있는 데 대해서 작가는 "그녀는 여러 세계 사람들의 열망이 담긴 상징"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같은 이유에서 제목도 '모두를 위한 정의'로 정했다고 덧붙였다.
전시장 '아트하우스'도 작품과 연관된 의미를 갖고 있다. 1827년에 지어져 영국 식민지 당국이 법원으로 활용했고, 독립 이후에는 싱가포르 국회의사당이었다. 2004년부터 아트하우스로 이름을 바꾸고 각종 전시, 문화프로그램을 진행해오고 있다.
[싱가포르 =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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