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우한 교민 우리가 보듬자"…아산·진천 막판 시민정신 빛났다
입력 2020-01-31 18:00  | 수정 2020-02-07 18:05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코로나) 발원지인 중국 우한에서 귀국한 교민들의 지역 수용을 반대하던 충남 아산과 충북 진천 주민들이 포용 정신을 발휘하며 결국 교민들을 보듬었습니다.

아산 경찰인재개발원과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이 우한 교민 격리 수용 시설로 결정되자 거세게 반발했던 이들 지역 주민들은 막상 우한 교민이 귀국하자 자발적으로 수용 반대 현수막과 농성 천막을 걷어내고 안으로 향하는 길을 순순히 터줬습니다.

아산과 진천 주민들이 그제(29일) 정부의 우한 교민 격리 수용 시설을 발표하자 즉각 거세가 반발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아산 주민들은 "천안의 국가시설로 정했다가 하루 만에 번복한 것은 힘의 논리로 볼 수밖에 없다"며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습니다.


주민 30여명은 농기계로 경찰 인재교육원 진입로를 막고 밤샘 농성을 하며 "우한 교민 수용 반대"를 외쳤습니다.

어제(30일)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과 양승조 충남지사가 주민들을 달래기 위해 찾아왔을 때 주민 반발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일부 주민은 진 장관이 도착하기 전부터 도로에 누웠고 진 장관과 양 지사에게 달걀을 던지며 격렬하게 항의했습니다.

경찰은 도로 주변에 차 벽을 세우고 경계를 대폭 강화했지만, 우한 교민들이 과연 무사히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컸습니다.


진천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충북도와 진천군이 재고를 요청했고 진천군의회와 시민사회단체·학부모회·이장협의회 등 각계가 불같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수용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 주민들은 그제(29일) 공무원 인재개발원 정문을 막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날 밤 주민들을 설득하러 온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옷이 찢기고 물병 세례를 받는 봉변을 겪었습니다.

주민들은 하루 뒤인 어제(30일) 밤 찾아온 진 행안부장관에게도 거칠게 대했습니다.

경찰이 주민들을 제지하기 위해 대규모 경력을 동원하고 버스로 차 벽을 세우면서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습니다

기류는 오늘(31일) 오전 우한 교민들이 전세기로 김포공항에 도착하면서 바뀌었습니다.

이날 이른 아침 마을회관에 모인 아산 주민들은 1시간 넘게 회의한 끝에 경찰인재개발원 교민 수용을 반대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주요 길목에 설치했던 '수용 반대' 현수막도 자진 철거했습니다.

교민이 귀국한 상황에서 더는 수용을 막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교민을 막기보다는 따뜻하게 수용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퍼진 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산 시민 사이에 우한 교민을 따뜻하게 포용하자는 여론도 확산했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We are Asan'(우리가 아산이다)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교민들을 응원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습니다.


아산 주민들은 "교민을 무작정 막겠다는 뜻은 아니었다"며 "천안이 안 되니 아산으로 결정한 정부 정책에 화가 났던 것"이라는 속내를 전했습니다.

"교민들이 무탈하게 잘 지내다 가길 바란다"는 주민도 있었습니다.

우한 교민들이 탄 경찰 버스 18대는 별다른 마찰 없이 이날 낮 12시 50분쯤 경찰인재개발원으로 무사히 들어갔습니다.

경찰인재개발원 앞에서는 '환영합니다', '힘내세요'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는 주민들도 목격됐습니다.

진천 주민 비상대책위도 이날 아침 마라톤 회의를 열어 우한 교민 수용 결정을 내렸습니다. 현수막과 농성 천막도 스스로 걷어냈습니다.

비상대책위 관계자들은 "우한 교민도 우리 국민"이라며 "뒤집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니 편하게 있다가 갔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송기섭 진천군수는 이날 "진천군민들이 이역만리 타국에서 공포에 떨던 (중국 우한) 교민들이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편안하게 지내도록 넓은 아량으로 품어줄 것이라고 믿는다"며 "안전하게 생활하도록 적극 도울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우한 교민 도착 시간에 맞춰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앞 다리에는 '우한 형제님들, 생거진천에서 편히 쉬어가십시오'라는 글귀가 적힌 진천 주민들의 응원 현수막도 내걸렸습니다.

급속히 확산하는 신종코로나에 대한 공포와 정부의 일방적 조치에 뿔이 났던 아산·진천 주민들이 마지막 순간에는 넉넉한 가슴으로 우한 교민을 보듬는 시민 정신을 발휘하며 스스로 빛을 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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