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 자국민 '우한 탈출'에 잇단 전세기 동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코로나)이 급속히 확산하는 가운데 세계 각국이 전세기를 동원해 발병 근원지인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에서 자국민의 탈출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일부 국가는 중국 당국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혼선이 빚어져 전세기 출발이 지연되기도 했습니다. 중국이 자국의 위신을 고려해 전세기 출발 승인을 일부러 지연시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오늘(31일) 외신에 따르면 주요국 가운데 가장 먼저 자국민의 우한 탈출을 추진한 미국은 중국 현지시간으로 지난 29일 동트기 전 200여 명의 미국인을 태운 전세기를 우한에서 띄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전세기는 미국시간 29일 오전 8시쯤 미 캘리포니아 마치 공군기지에 착륙했고, 도착한 사람들은 의료 검진을 받은 뒤 이 공군 기지에 임시로 수용됐습니다.

미국에 이어 우한 탈출을 서두른 일본은 지난 29일 1차로 206명을 전세기로 귀국시킨 데 이어 전날 2차 전세기로 210명을 귀국시켰습니다. 이어 149명이 탑승한 3차 전세기가 이날 오전 하네다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가 준비한 특별 항공편으로 본국으로 철수한 우한 체류 일본인은 총 565명으로 늘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남은 귀국 희망자도 본국으로 이송하기 위해 다음 주쯤 4차 전세기를 파견할 방침으로 알려졌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날 우한시와 인근 지역의 한국 교민과 유학생 등 367명을 정부 전세기편으로 귀국시켰습니다.

중국 우한시에서 이날 오전 6시 3분쯤 출발한 대한항공 KE KE9884편 보잉747 여객기는 오전 8시쯤 김포공항에 착륙했습니다.

별다른 의심 증상을 보이지 않은 입국자들은 임시 숙소인 아산 경찰인재개발원과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후베이성 일대에 고립된 영국 국민을 철수시키기 위한 전세기도 이날 귀국길에 오른다고 BBC방송은 전했습니다.

전날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은 전세기가 현지에서 이날 오전 7시에 출발하기로 확정됐다고 밝혔습니다.

영국은 이 전세기가 브리즈 노턴 공군기지에 도착하면 이후 잉글랜드 북서부 국민보건서비스(NHS) 직원 숙소로 이동시킬 계획입니다. 이들은 14일간 이곳에 격리된 뒤 증상 발현 여부에 따라 필요한 치료를 받을 예정입니다.

프랑스는 전날 전세기 1대를 우한으로 보냈으며, 이날이나 다음 달 1일에 전세기 1대를 추가로 보낼 예정이라고 프랑스 공영방송 RFI가 전했습니다.

프랑스 당국은 우한 영사관에 등록한 자국 시민이 500여 명이지만,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은 1천 명에 육박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인도, 스리랑카, 네팔 등에서 각각 1명의 우한 폐렴 확진자가 나온 남아시아 각국도 자국민 철수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인도와 방글라데시는 이날 밤부터 전세기를 동원, 자국민을 귀국시킬 예정입니다.

인도 정부는 두 대의 전세기를 투입해 1차로 우한 및 인근 지역, 2차로 허베이성의 나머지 지역에 있는 자국민을 실어 올 방침입니다.

인도 당국에 따르면 현재 허베이성에서 600명 이상의 인도인이 귀국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우선 1차 전세기로 315명이 인도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인도 외교부 대변인인 라비시 쿠마르는 "중국 당국에 항공기 2대를 운용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며, 공식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이웃 나라 방글라데시도 이르면 이날 밤 전세기편으로 341명의 자국민을 실어 올 계획입니다.

스리랑카 정부도 스리랑카 항공의 전세기 편을 확보하고 자국민 철수 작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공부하는 스리랑카 학생은 860여 명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런 분위기와 달리 파키스탄은 자국민 철수 계획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자파르 미르자 총리실 정책 자문관은 30일 "지금 무책임하게 철수를 추진할 경우 바이러스가 들불처럼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중국에는 약 3만명의 파키스탄 국민이 살고 있고, 이 가운데 학생 500여명이 우한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파키스탄은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최대 협력국 중 하나로서,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파키스탄은 2015년 중국 신장웨이우얼 자치구 카스(喀什)에서 파키스탄 남부 과다르항까지 3천㎞에 이르는 도로와 철도, 에너지망 등을 구축하기로 합의하는 등 현재 중국의 인프라 투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자국민의 우한 탈출을 서두르는 상당수 국가는 중국과의 협의 과정에서 혼선을 빚거나 진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당초 우리 정부도 어제(30일)와 오늘(31일) 각 2차례씩 모두 4차례 전세기를 띄워 교민들을 국내로 수송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중국 측이 29일 저녁 "1대씩 순차적으로 보내자"라는 취지의 입장을 밝히면서 어긋났습니다.

이에 정부는 "중국 측은 미국과 일본의 다수 임시항공편 요청이 있기 때문에 우선은 1대 허가를 내주고, 순차적으로 요청을 받는 식으로 운영을 하는 것 같다"며 "미국도 수차례 전세기 운항 계획이 바뀌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영국 국민을 태운 전세기도 전날 오전 중국에서 이륙할 예정이었지만, 중국 정부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으면서 지연됐습니다. 영국 언론은 이날 오전 전세기가 우한에서 출발했다고 전했습니다.

전세기를 동원해 자국민의 귀국을 추진하는 호주 정부도 중국 당국의 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진통을 겪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습니다.

중국이 각국 전세기 승인을 서두르지 않는 것은 자국의 위신을 고려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옵니다.

세계 각국이 전세기를 동원해 대규모로 자국민을 '탈출'시키는 것을 중국인들이 알게 되면 중국 정부의 위신이 깎이게 되므로, 가능하면 전세기 이륙 승인을 서두르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지금껏 우한을 떠난 각국 전세기가 대부분 새벽 시간 등에 이륙한 것도 이러한 자국민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한 중국 정부의 조처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전날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중국의 대외적인 어떤 위신이라고 그럴까. 자기들이 컨트롤, 통제할 수 있는 그런 감염병인데 그걸 각국이 너무 좀 부산을 떠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외교적 느낌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