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BTS는 배, 현대미술은 물길…예술 미래로 향한다
입력 2020-01-28 18:36  | 수정 2020-01-29 08:59
앤 베로니카 얀센스 설치 작품 그린, 옐로, 핑크. [사진 제공 = 아트플레이스]

28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전시관이 노란색과 연두색 안개로 가득차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발을 내딛어야 할 지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어떻게 나가죠"라고 외치며 출구를 찾았다. 안내원 도움을 받아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그곳은 바로 영국 출신 작가 앤 베로니카 얀센스 설치 작품 '그린, 옐로, 핑크'. 방탄소년단(BTS) 철학과 메시지를 현대미술 언어로 확장한 글로벌 전시 프로젝트 '커넥트(CONNECT), BTS' 서울 전시로 이날 일반에 공개됐다.
이대형 큐레이터
지난해 여름부터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이대형 큐레이터는 "혼자서 방을 빠져 나오기 어렵다. 앞서 간 사람 행적을 더듬어야 하고 공포가 밀려온다. 하지만 시각이 차단되면 다른 감각이 깨어난다. 안개는 뭔가를 가리는게 아니라 드러내는 속성이 있다. 짧은 경험을 통해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데 어떤 감각을 써야 하는지,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감독, 현대자동차 아트랩 팀장을 거친 배테랑 큐레이터다.
'커넥트, BTS' 전시장 전경
얀센스는 주로 빛과 색채, 안개 등을 이용한 공간 연출을 통해 공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이날 서울 전시장에 오지 않았지만 영상을 통해 작가는 "안개는 빛에 물질성과 촉각성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전시장 작품 설명에는 "방탄소년단의 창작 정신을 공감각적으로 형상화한다면, 그것은 얀센스의 공간일 것이다"고 써놨다.
강이연 프로젝션 매핑 작품 '비욘드 더 씬'.
그러나 BTS는 작가에게 작품을 위촉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아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작가 작품을 이해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적 경험을 선사하는게 목표였다. 그게 바로 BTS 철학인 '다양성', '소통', '연결'이기도 하다. 영국 유명 조각가 앤터니 곰리, 아르헨티나 출신 설치미술가 토마스 사라세노 등 세계 5개국 작가 22명이 그 취지에 공감해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지난 14일 영국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전시를 시작해, 15일 독일 베를린 마틴 그로피우스 바우 미술관, 21일 아르헨티나 살리나스 그란데스, 28일 서울 DDP, 2월 5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 브리지 피어3 등에서 차례로 개막하면서 석달간 펼치는 글로벌 프로젝트다.
글로벌 현대미술 프로젝트 `커넥트, BTS` [사진 = 연합뉴스]
이 큐레이터는 "국경을 초월해 다양한 아미(BTS 팬클럽)들이 몰려와 마틴 그로피우스 바우 미술관이 문을 닫는 일이 생겼다. 일정 숫자 이상 사람이 들어가면 하중 문제로 입장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기대는 했지만 상상 이상이어서 관장이 'BTS가 미술관 풍경을 바꿨다'면서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고 말했다.
'커넥트, BTS'에 설치된 앤 베로니카 얀센스 설치 작품 '로즈'.
DDP에 설치된 얀센스의 또 다른 작품 '로즈(Rose)'는 BTS 멤버 숫자와 같은 7개 조명이 분홍색 안개 같은 별을 만든다. 빛이 조각 형태를 만드는 안개 효과를 활용했다고 한다.
`커텍트, BTS` 베일벗은 대한민국 서울전시 [사진 = 연합뉴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유일한 한국 작가인 강이연 설치 작품 '비욘드 더 씬(Beyond the Scene)'은 퍼포머 7명이 BTS 춤을 재해석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프로젝션 매핑 작업이다. 한 겹의 흰 천 뒤에서 7명의 몸짓이 물결처럼 일어나 전시장 벽면과 바닥을 가득 채운다.
전시장에서 만난 강 작가는 "한국어로 노래하는 보이 그룹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비결은 아미더라. 내가 활동하고 있는 런던 아미 15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19세부터 61세까지, 캐시어(계산원)와 런던 시티은행 뱅커(은행원)까지 다양했다. 처음에 호기심으로 시작한 인터뷰였지만 뭉클한 순간이 많았다. 모든 다양성을 포용하고 언어까지 초월한 BTS를 현대미술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작품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곰리 등 교과서에서 보던 거장들이 '땡큐 BTS, 기회를 줘서 고마워'라고 할 때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웠다. 세계 5개국 작가 22명이 BTS 때문에 연결됐다"고 덧붙였다.
노란 안개가 가득한 앤 베로니카 얀센스 설치 작품 '그린, 옐로, 핑크'.
이 큐레이터는 "음악이 배가 되고, 미술이 물길이 되고, 혹은 반대가 되어 미래에 어디로 가야할 지 서로 영감을 받은 프로젝트"라고 강조했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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