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라임에 덴 증권사들 펀드자금 회수…사모펀드 유동성 `비상`
입력 2020-01-27 17:33  | 수정 2020-01-27 21:39
◆ 사모펀드 또 환매중단 ◆
사모펀드 운용업계에서 메자닌과 프리IPO 투자에 강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알펜루트자산운용이 이번에 일부 펀드에 대해 환매 연기를 선언하면서 환매 중단 사태가 다른 사모펀드로 전염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사태는 개인고객 투자자들의 펀드 환매 요청이 아니라 기관투자가들의 레버리지 및 PI 투자 회수가 발단이 된 만큼 최근 기관투자가들이 본격적으로 사모펀드에서 돈을 빼기 시작한 신호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알펜루트자산운용의 주요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 증권사 중 한국투자증권이 PI 투자 일부에 대한 환매를 요청했고, 미래에셋대우 신한금융투자 등은 알펜루트자산운용 측에 460억원대 토털리턴스왑(TRS) 계약 해지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사 PBS 부서들은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데 필요한 신용공여와 증권대차, 리서치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사모펀드들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증권사가 신용공여(레버리지 대출)를 통해 수익률을 더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보통 TRS 계약을 통해 증권사들은 확정된 이자를 가져가고 펀드운용사들은 리스크를 떠안는 대신 확정된 이자 이상의 이익을 가져간다.
그러나 최근 라임자산운용의 환매 연기 사태가 불거지자 증권사 PBS 부서들은 TRS 계약을 해지하고 빌려줬던 레버리지를 다시 회수하기 시작했다. 라임자산운용도 지난해 8월부터 부실기업 메자닌 인수 의혹이 불거지면서 KB증권이 레버리지를 갑자기 회수하자 환매 중단 금액이 커졌는데 이번에 알펜루트자산운용은 라임자산운용과 관련 없는 자산에 대해서도 TRS 계약 해지 요청이 있었던 것이다. 증권사 PBS 부서 관계자는 "라임자산운용에 대한 대응이 늦어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판단해 선제적인 대응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알펜루트자산운용은 전체 자산에서 메자닌 전략만 쓰는 펀드의 비중은 7% 정도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프리IPO가 주가 되는 멀티 전략 펀드다. 라임자산운용과 투자한 메자닌 기업이 일부 겹치긴 하지만 운용자산 가운데 메자닌 자산 비중은 적다. 이번에 증권사 PBS에서 TRS 계약을 해지할 것을 통보하며 자금 회수에 나선 펀드도 메자닌과는 별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임자산운용의 회계 실사 결과 원금의 최소 30%는 손실이 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기관투자가들이 선제적으로 자금 회수 조치에 나선 것이다. 북클로징 시기도 아닌 연초 기관투자가들의 자금 회수는 사실 이례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관투자가의 경우 중도 환매를 하거나 불완전판매 문제를 제기하면 CIO가 평판과 실적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펀드가 손실이 나더라도 단기적으론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증권사 PBS 사업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기관투자가들도 적극적인 리스크 차단에 나섰다. 지난해 말 증권사 PBS 점유율을 보면 삼성증권,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KB증권, 한국투자증권 순인데 삼성증권을 제외하고는 작년 3분기 말에 비해 투자 규모가 다소 축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미래에셋대우의 경우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PBS 사업을 크게 줄여 작년 PBS 1위에서 최근엔 4위까지 떨어진 것으로 내부적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증권사들이 PBS 사업을 축소하는 상황이라 다른 사모펀드 운용사들도 유동성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중 60%가 개방형이긴 하지만 대부분 사모펀드는 폐쇄형으로 운용되기 때문에 만기가 되기까지는 펀드에서 돈을 빼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권사 PBS가 대출을 회수한다면 고객들의 환매 요청이 없어도 펀드운용사로서는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인데 사모펀드 자산 대부분이 주식·채권과 같은 전통자산이 아니라 현금유동성은 부족하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알펜루트자산운용 역시 수탁액 9000억원 중 1000억원만 채권이고 8000억원가량이 혼합자산이다.
■ <용어 설명>
▷ 메자닌 펀드 : 건물의 층과 층 사이 공간을 말하는 이탈리아 건축 용어 '메자닌'에서 따온 말로 채권과 증권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는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에 투자하는 펀드를 말한다.
▷ PBS(Prime Brokerage Service) : 증권사가 헤지펀드를 상대로 펀드 운용에 필요한 증권을 빌려주거나 자금을 대출해주거나 컨설팅 등을 제공하는 업무로, 헤지펀드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다.
▷ 프리IPO : 회사가 향후 몇 년 안에 증시 상장을 약속하고, 주식·CB 등 일정 지분을 투자자에게 매각하는 자금 유치 방식. 이때 투자자들은 상장 때 지분을 매각하는 것이 전제 조건이며 상장되지 않을 경우에는 매각자가 지분을 되사들여야 한다.
[김기철 기자 / 김제림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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