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문 대통령의 파병 결단, 한미동맹‧남북관계 고려한 듯
입력 2020-01-21 17:32  | 수정 2020-01-28 18:05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한 항행을 위해 아덴만에 파견된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확장하는 방식의 사실상 '독자 파병' 카드를 선택한 것은 미국·이란과의 관계는 물론 남북관계 개선까지 염두에 둔 문재인 대통령의 '다중포석'으로 해석됩니다.

정부는 오늘(21일) 청해부대의 파견 지역을 아덴만 일대에서 오만만과 아라비아만 일대까지 확대해 우리 군 지휘하에 한국 국민과 선박 보호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당장 '모든 국가가 호르무즈 해협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에 부응하면서도 이란과의 관계를 의식해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 공동방위를 위해 주도하는 '국제해양안보구상'(IMSC)에 참여하는 대신 독자적으로 활동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결정은 한미동맹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이란과의 관계를 감안함으로써 한국의 국익을 지키기 위한 결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만만과 아라비아만을 잇는 호르무즈 해협은 걸프 지역의 주요 원유 수송로로, 한국으로 수입되는 원유의 70% 이상이 이곳을 지나게 됩니다.


최근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안전 항행에 대한 우려가 커진 만큼 청해부대를 배치해 유사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입니다.

한편으로 '독자 파병' 형태로 이번 결정을 내린 것은 문 대통령의 고뇌에서 나온 결단으로 읽힙니다.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는 지역에 우리 군을 파병하는 것은 정권에게는 적잖은 부담입니다. 미국의 전쟁 행위를 규탄한다는 목소리를 키워 온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비판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특히나 정권이 느낄 부담감은 작지 않다는 게 대체적 평가입니다.

문 대통령은 저서 '문재인의 운명'에서 2003년 청와대 민정수석 재직 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 결정에 반대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 책에서 당시 파병을 '고통스러운 결정'이라고 표현하며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파병했다가 희생 장병이 생기게 되면 비난 여론을 감당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미동맹을 앞세워 파병을 지속적으로 요청하는 미국의 요구를 계속 외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동시에 원유도입 등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수십년간 쌓여온 이란과의 관계를 무너뜨릴 수 없는 만큼 미국과 이란이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절충안을 찾은 셈입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독자 파병' 결정이 미국의 요청에 부응한 것이라는 점에서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나 개별관광 등 남북협력사업에 대한 미국의 태도 등에 미칠 영향을 주목하기도 합니다.

문 대통령의 저서에는 이라크 파병 당시를 두고 "북핵 문제를 철저하게 대화로 풀어가기 위해서는 미국 정부의 협조가 필요했다"며 "그러자면 우리도 그들의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정부 당국자들은 이번 결정이 다른 한미동맹 현안과는 별개로 이뤄졌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내린 결단의 이면에는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교착된 상황을 풀려면 미국의 적극적 협조를 끌어내야 한다는 필요성이 자리 잡고 있다는 해석이 제기됩니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 등을 통해 남북관계를 진전시켜 이를 비핵화의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구상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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