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30년 흐른 `검은 1월`의 비극
입력 2020-01-14 14:49 

오는 20일은 아제르바이잔 국민들에게 큰 아픔을 안겼던 '검은 1월'이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주한 아제르바이잔 대사관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 1990년 1월 20일 옛 소련 군대가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를 습격했다. 당시 바쿠에는 아제르바이잔 영토 일부를 요구하는 아르메니아 확장주의자들에 대한 항의 시위가 있었다. 하지만 옛 소련의 탱크와 장갑차들이 평화로운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들을 향해 공격을 가했다. 그 결과 147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약 800명이 부상을 입었다. 또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체포돼 여러 형태의 고문을 받았다. 희생자 중에는 7살 소년, 16살 소녀, 80살 노인, 다른 피해자를 돕는 동안 구급차에서 총을 맞은 젊은 의사, 그리고 바쿠의 다양한 국적을 가진 많은 민간인들이 있었다. 이 학살은 아제르바이잔의 역사에 '검은 1월'로 기록됐다. 당시 옛 소련의 대중 매체 중 단 한곳도 해당 사건을 다루지 않았다고 주한 아제르바이잔 대사관은 주장했다.
이보다 앞서 1989년 가을 아제르바이잔 독립 운동은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자유·독립·주권을 요구하며 놀라운 기세를 보였다. 당시 크렘린은 군을 투입해 진압을 시도했다. 2만6000명의 옛 소련 군대가 1990년 1월 19일부터 20일까지 아제르바이잔 독립 운동의 중심지인 바쿠를 강타했다. 헬싱키에 소재한 휴먼라이츠워치는 "소련 군이 의도적으로 무장하지 않은 평화로운 민간인들을 탱크로 밀고 갔다"고 기록했다.
'검은 1월'은 아제르바이잔 역사의 전환점이 됐다. 비극이 발생한 직후 1990년 1월 21일 국민 지도자인 헤이다르 알리예프는 가족과 함께 모스크바에 있는 아제르바이잔 상설 사무소를 방문했다. 그는 자신의 국민과 연대를 표명하고 피의 비극을 저지른 소련 지도부를 철저히 비난하고 작전을 이끌었던 사람들을 폭로했다. 불행하게도 1월 20일 비극의 가해자는 처벌받지 못했다.
이듬해 아제르바이잔은 독립됐다. 아제르바이잔은 독립 기간 동안 '검은 1월' 사건은 정치적·법적으로 평가를 받았다. 범죄자의 이름도 공개됐다. 바쿠의 순교자 골목은 모든 아제르바이잔 국민들에게 신성한 장소가 됐다. 자유와 주권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아제르바이잔 국민들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1월 20일 수천명의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한다고 주한 아제르바이잔 대사관이 전했다.
[김덕식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